한진해운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주요자산을 잇따라 매각하면서 생존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상실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올해 들어 4170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미국과 EU(유럽연합)지역의 상표권을 한진칼에 매각했고 중국 자회사 지분도 처분했다. 영국 런던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사옥도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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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태수 한진해운 사장. |
한진해운이 유동성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꾸준한 수익을 내던 알짜 사업부나 해운사 운영에 필요한 터미널도 매각하면서 한진해운의 장기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해운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한진해운은 최근 동남아항로 일부 운영권을 계열사 한진에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가격은 600억 원 수준이다.
동남아항로 운영권 매각은 당초 한진해운이 제출한 자구안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한진해운 채권단이 최근 운영자금을 마련하라며 압박강도를 높이자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진해운은 미국 롱비치터미널과 국내 광양터미널 매각도 추진한다.
롱비치터미널은 한진해운이 보유한 터미널 10여 곳 가운데 가장 핵심으로 꼽힌다. 이 터미널은 미국 서부항만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이상을 담당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롱비치항만에서 1만TEU급 이상의 초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터미널은 롱비치터미널을 포함해 두 곳뿐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터미널은 단순 자산이 아니라 해운사 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인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채권단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터미널을 매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상선도 최근 보유하고 있던 부산신항만터미널 지분 50% 가운데 40%가량을 싱가포르항만공사에 매각했다.
이를 놓고 해운업 구조조정이 단기적 유동성 확보에만 치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해운업계에서 나온다.
업계의 또다른 관계자는 “정부와 채권단이 부채 줄이기만 강조하고 있다”며 “2~3년 뒤 해운업 업황이 좋아진다 하더라도 지금의 구조로는 영업활동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년 동안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현대상선은 액화천연가스(LNG)사업부, 벌크전용선사업부를 매각했다. 한진해운도 벌크전용선사업부를 매각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벌크전용선사업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에이치라인해운은 국내 해운업계 최대의 영업이익을 내며 순항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22.6%에 이른다.
에이치라인해운은 고정적 물량을 운송하기 때문에 해운업 경기와 상관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해운업계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발목을 잡았던 고가의 용선료 역시 정부의 잘못된 구조조정이 빚은 결과라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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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훈 현대상선 사장. |
1998년 3월 은행감독원은 국내 대기업에 400% 수준이던 부채비율을 1999년 말까지 200% 이하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해운업은 고가의 선박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빌리기 때문에 부채비율이 다른 업종에 비해 높은 편이다.
당시 국내 해운사들은 정부가 제시한 부채비율 200%를 맞추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선박과 자산을 일제히 팔았다. 그 뒤 2000년대 초반 해운업이 호황을 맞자 선박이 없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해외 선주들과 고가의 용선계약을 맺었다.
당시 맺은 용선계약은 해운업 불황이 찾아오자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왔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해 용선료만으로 각각 1조1469억 원, 9758억 원을 썼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