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나영호 롯데쇼핑 이커머스사업부장(롯데온 대표)의 집무실 앞에는 ‘홈즈책방’이라는 조그마한 책방이 있다.

나 대표의 영어이름 ‘홈즈’를 딴 이 책방에는 나 대표가 봤던 책들이 진열돼 있다. 롯데온 직원들은 이 책방에서 나 대표가 읽고 추천한 책들을 직접 보고 필요하면 빌려갈 수도 있다.
 
롯데온 직원 도서관은 사장실, 나영호 대표가 '홈즈책방' 만든 이유

나영호 롯데쇼핑 이커머스사업부장(롯데온 대표).


최고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책에서 경영과 관련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해 하는 직원들을 위해 나 대표가 직접 설치를 지시했다고 한다.

홈즈책방은 나 대표가 직원들과 소통하며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물이다. 그는 직원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조직 내에서 작지만 중요한 변화들을 여럿 만들어내고 있다.

나 대표가 소통을 강조해온 것은 다름 아닌 롯데그룹의 체질개선 때문이다. 그는 롯데그룹에 ‘디지털 DNA’를 심으려면 적극적 소통이 필요하다고 보고 자신을 ‘소통의 달인’이라 자처하며 조직 변화를 이끌었다.

롯데그룹에 디지털 DNA가 뿌리내리는 상황에서 나 대표의 앞에는 롯데온의 영향력 확대라는 근본적 과제가 남게 됐다.

28일 롯데온 안팎에 따르면 나 대표가 롯데온 수장에 취임하면서 강조해온 디지털 DNA가 롯데온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근 롯데온이 글로벌 기업용 메시징플랫폼 슬랙이 선정하는 ‘2022 글로벌 디지털 HQ 우수기업’에 선정된 것은 나 대표의 노력이 결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슬랙은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메시징플랫폼이다. 한 업무와 관련한 모든 의사소통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서버와 데이터베이스(DB) 관리, 웹개발, 앱개발 등 다양한 업무가 섞여 있는 개발자에게 인기가 높다.

우버와 넷플릭스, 익스피디아 등 글로벌 유명 IT(정보기술)기업들의 소통창구는 모두 슬랙이다.

나영호 대표가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롯데온은 롯데그룹의 사내 메신저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 메신저를 통한 업무 처리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슬랙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롯데온은 단순히 슬랙을 활용하는 IT기업에 머무르지 않았다.

롯데온은 슬랙을 쓰는 기업 중에서도 슬랙의 실시간 음성대화 기능인 '허들'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조직으로 꼽혔다. 롯데온의 허들 도입율은 60%가 넘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허들을 사용하는 기업 가운데 상위권이다.

슬랙코리아가 롯데온의 허들 활용을 눈여겨보고 직접 본사를 방문했을 정도다.

나 대표가 슬랙을 도입한 것은 그가 강조한 디지털 DNA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나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취임인사를 전하며 “우리 DNA는 디지털이어야 하고 우리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는 디지털 방식에 걸맞게 변화하고 강화돼야 한다”며 디지털 전환에 방해가 되는 오프라인 관점의 제도와 문화를 모두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실제로 나 대표는 취임 이후 개발자 중심으로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조직명을 개발자 친화적으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나 대표는 2021년 9월 말 롯데온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롯데온 조직인 검색부문과 추천부문의 이름을 각각 파인딩부문과 데이터부문 등으로 바꿨다. PD(제품개발자)실, 데이터인텔리전스실, 테크실 등 개발자가 일하는 조직도 확대했다.

나 대표가 취임 전만 하더라도 롯데온은 ‘사소한 것까지 개발 외주를 준다’는 말을 듣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그의 취임 이후 롯데온은 개발자 친화 조직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평가가 롯데그룹 안팎에서 나온다.

나 대표가 오프라인 DNA를 디지털 DNA로 바꾸기 위해 한 일은 다름 아닌 소통이다.

그는 매주 월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모든 직원에게 이메일로 ‘먼데이레터’를 보냈다. 나 대표의 개인적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며 직원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조직문화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대표가 추진해온 조직 변화 노력은 아마존 주최로 열린 ‘AWS서밋코리아2022’에서 리더십 전략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나 대표가 롯데온을 이끌어온 길을 보면 디지털 인프라가 부족했던 조직이 다방면에서 디지털 DNA를 수혈하고 본격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롯데온이 가야할 길은 멀다. 실적은 아직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투자는 늘어나지만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간신히 유지하는 상황이다. 미래가 우려스럽다는 증권가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나 대표가 적어도 이커머스 시장에서 한 판 붙을 수 있는 디지털 체력을 다졌다는 점에서 아직 롯데온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도 없지 않다.

나 대표가 지난 1년여 동안 이커머스 대전에 뛰기 위해 운동화 끈을 묶는데 시간을 보냈다면 앞으로는 롯데그룹의 역량을 총집결한 '한 방'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온 관계자는 “비즈니스적 측면에서도 롯데온은 버티컬플랫폼 강화 등 일정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성과를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