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장악' 논란에 김창룡 거취 주목, ‘검수완박’ 반발 김오수 길 따르나

김창룡 경찰청장(사진 맨 앞)이 2020년 7월24일 취임식에서 경찰 간부들과 경례를 하고 있다. <경찰청>

[비즈니스포스트] 행정안전부(행안부) 산하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권고안에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경찰과 행안부 사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자문위원회의 권고안 발표에 이어 ‘경찰의 꽃’이라 불리는 치안감 인사가 2시간 만에 번복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하며 행안부의 ‘경찰장악’ 논란은 더욱 확산되는 모양새다. 

경찰 내부에서 김창룡 경찰청장도 과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항의해 사퇴한 김오수 전 검찰총장처럼 '경찰장악'에 항의하는 뜻으로 사표를 던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돼 김창룡 청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대통령실 출근길에서 "대통령에 보고도 안 하고 (인사안이) 유출돼 인사 번복처럼 기사가 나가는 자체는 중대한 '국기문란'이다"라며 "경찰이 행안부로 보낸 자체 추천 인사를 그냥 보직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치안감 인사번복 사건의 책임이 경찰에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이 나선 이상 경찰조직 수장인 김창룡 청장의 거취 부담이 더욱 가중되는 대목이다.

앞서 경찰 치안감 인사가 21일 오후 7시쯤 처음 발표됐으나 2시간이 지난 뒤 김준철 광주경찰청장과 정용근 충북경찰청장 등 인사 대상 7명의 인사 내용이 바뀌며 논란이 됐다.

경찰청은 대통령실, 행안부, 경찰청 사이에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가 행안부가 처음과 다른 인사 최종안을 다시 통보해왔다고 밝히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 치안감 인사가 단행된 날이 행안부 자문위원회의 경찰통제 권고안이 발표되고 경찰이 이에 반발했던 날과 겹쳐 정부가 인사 번복으로 ‘경찰 길들이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심 섞인 시선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경찰보다 중립성과 독립성이 더 요구되는 검사조직에도 검찰국이 있다"며 행안부와 경찰 사이 통제 논란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행안부 관점에 무게를 실었다. 

행안부 경찰제도 자문위원회가 21일 발표한 개선 권고안에는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지원조직 신설 △행정안부 장관의 소속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 제정 △경찰청장 등 고위직 인사제청 관련 후보추천위원회(제청자문위) 설치 △경찰에 대한 감찰권 및 경찰청장 등 고위직에 대한 행정안전부장관의 징계요구권 부여 등이 포함됐다. 

전국경찰공무원직장협의회 대표단은 행안부 내 경찰지원 조직을 과거 군사정권 시절 ‘경찰국’의 부활로 규정하고 윤석열 정부가 경찰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21일 자문위원회 권고안이 공개된 뒤 성명을 내고 “이번 권고안은 민주성과 중립성이라는 경찰제도 기본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며 “경찰을 둘러싼 역사적 교훈과 현행 경찰법 정신에 비춰 적잖은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장이 공개적으로 행안부의 권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윤 대통령이 행안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힘이 실리기 어렵게 됐다.

김 청장은 행안부와 갈등 해결을 위해 이상민 장관과 면담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 장관 측은 면담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김 청장은 23일 아침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최대한 빨리 면담 일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경찰 입장을 충분히 말씀드리고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김 청장과 이 장관 면담이) 아직 잡힌 일정이 없다”며 “22일 김 청장이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발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경찰 내부에서는 김창룡 청장을 비롯한 지휘부를 성토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오수 전 검찰총장은 ‘검수완박’이 진행되자 사표까지 내며 목소리를 높인 사례과 비교하면서 경찰 지휘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창룡 청장이 경찰 지도부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21일 소집한 시·도 경찰청장 회의에서도 일부 참석자들이 항의 차원에서 김 청장이 용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오수 전 검찰총장은 4월 국회에서 검찰 수사권 폐지 입법이 추진되자 사퇴의사를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면담한 뒤 사퇴의사를 거뒀으나 여야가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놓은 검찰 수사권 개혁법안 중재안에 합의하자 4월25일 두번째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앞서 김창룡 청장은 행안부 권고안이 발표되기 전인 16일 경찰 내부망에 “결코 직에 연연하지 않고 역사에 당당한 청장이 되겠다”며 “(행안부 자문위의) 구체적 안이 발표되면 14만 경찰 대표로서 우리 청의 입장을 명확히 나타내고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오수 전 검찰총장도 사퇴하기 전 검찰 수사권 폐지에 반발하면서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어떤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경찰 일각에서는 김창룡 청장의 남은 임기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만큼 사퇴하지 않고 경찰이 행안부에 대응하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청장의 임기는 7월23일까지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김 청장에게 힘을 실어주며 윤석열 정부의 '경찰장악'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21대 국회 전반기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서울 경찰청을 찾아 윤석열 정부의 경찰통제를 규탄했다. 또 김창룡 경찰청장을 만나 경찰 치안감 인사가 번복된 일에 김 청장의 입장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 의원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직무 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하거나 법을 위반하면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를 것이다”고 경고했다. 서 의원은 21대 국회 전반기 행안위 위원장이었다.
 
김 청장은 행안부 자문위 권고안에 대응하는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이날 오후 첫 회의를 열었다. 김 청장은 "정부 등에 우리 입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최대한 설득해서 반영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