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직후부터 가계부채 대응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서 대출한도 축소 등 추가 대출규제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정 원장은 과거에도 금융위원회 소속으로 가계부채 증가율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17일 “은행들에 신용대출 한도 축소를 권고한 것은 최근 늘어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에 대응하는 데 협조해달라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감독국 관계자들은 13일 주요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들과 만나 마이너스통장 등 개인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과 비슷한 수준까지 낮춰달라고 권고했다.
7월 가계대출 증가율이 지난해 7월 대비 10%를 보이는 등 가계대출 증가세가 갈수록 가팔라지는 현상이 나타나자 금융당국 차원에서 은행들이 대출한도를 축소해야 한다며 제동을 건 것이다.
정은보 금감원장이 취임 뒤 가계부채 대응을 처음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5~6%대로 안정화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지만 1~7월 월별 가계대출 증가율은 이미 8.5%~10% 사이를 오가고 있어 목표치를 맞추기 쉽지 않다.
정부가 이런 상황에서 정 원장을 금감원장에 임명한 것은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두고 금감원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 원장이 이전 정부에서도 가계대출 급증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금융위 소속으로 가계부채 대응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아 긍정적 성과를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 원장이 이제 금융감독원장으로서 더 강력한 권한을 확보하게 된 만큼 가계대출 증가를 방지하기 위해 대출규제 강화와 영업현장 점검 등을 훨씬 공격적으로 추진할 공산이 크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도 가계부채 축소를 통한 경제 정상화를 우선과제로 내걸고 있는 만큼 정식으로 임명 뒤 정 원장과 손발을 맞춰 가계부채 대응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
정 원장은 6일 열린 금감원장 취임식에서 “가계부채 대책 추진 과정에서 효과를 더 높일 방안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겠다”며 적극적 대책 마련을 예고했다.
최근 가계부채 급증을 이끈 배경이 과거 정부에서 발생했던 가계대출 증가원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정 원장이 효과적으로 경험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 원장은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을 맡아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내놓은 가계부채 종합대책 수립과 실행에 실무를 담당하며 가계부채 증가율을 낮추는 데 힘썼다.
당시 정부에서 추진했던 부동산거래 활성화정책으로 빚을 내 주택을 구매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물가상승 대비 가계소득 증가율은 부진한 수준을 보이면서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정 원장이 2017년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초반 금융위 부위원장으로 일할 때는 부동산투기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빨라지고 있었다.
금융당국과 정부는 주택담보대출비율 등 부동산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계대출을 조이기 시작했다.
가계대출 증가율은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8.7%에 이르다가 2012년에 5.2%로 낮아졌고 2016년 11.6%와 2017년 8.1%로 높아졌다가 2018년 들어 5.9%까지 떨어졌다.
가계대출 증가율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요인이 많기 때문에 정 원장이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금융당국 차원의 가계부채 대응 정책이 효과를 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가계부채가 늘고 있는 상황은 과거 가계대출 증가율이 높아졌을 때 발생했던 문제점을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 침체와 소득 감소, 주택가격 상승으로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동시에 은행 대출규제가 강화되자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대출이 느는 풍선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 원장이 금융당국 차원에서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경험을 쌓았던 만큼 금감원에서 대출규제 도입과 관리감독 강화를 추진한다면 긍정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세운 올해 가계대출 목표치에 충족하려면 7월 10%에 이르던 가계대출 증가율이 하반기는 월평균 4% 수준까지 낮아져야 한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대출이자 이외에 새 수익원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규제를 밀어붙이는 일은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 원장이 이전부터 금융당국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던 관료출신 금감원장이라는 이력을 고려하면 금융위와 원활한 시너지를 내 효과적으로 가계대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고승범 위원장이 정식으로 임명되면 금융위와 금감원을 중심으로 대출한도 축소 등 금융권 대출규제 도입에 본격적으로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사퇴를 앞둔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최근 국내 5대 금융지주사 회장들과 만나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는 데 협조해달라고 주문하는 등 가계부채 증가를 막는 데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