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차량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생산량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유치에 나섰다.

이에 대만 TSMC와 미국 인텔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회사들도 유럽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다.
 
차량반도체 블루오션으로 유럽 떠올라, 삼성전자 인수합병 나설까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삼성전자는 유럽 차량용 반도체회사 인수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유럽연합의 투자유치를 계기로 차량용 반도체기업 인수를 본격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2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유럽 주요 공동이익 프로젝트(Important Project of Common European Interest, IPCEI)’를 통해 배터리, 수소와 함께 반도체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생산량 가운데 유럽의 비중은 10% 미만으로 추산된다. 유럽 주요 공동이익 프로젝트의 반도체산업 육성 목표는 이 비중을 2030년 2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 목표의 달성을 촉진하기 위해 2024년까지 반도체산업에 1450억 유로(196조 원가량)의 투자지원을 집행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반도체 육성계획을 내놨다.

이에 글로벌 반도체회사들이 유럽을 주시하고 있다.

웨이저자 TSMC CEO는 16일 진행한 TSMC 실적발표회에서 독일에 28~16나노미터 공정을 적용한 파운드리공장을 짓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공정은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이나 전력관리반도체(PMIC)를 생산하는 데 쓰인다.

5월에는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직접 유럽을 방문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들과 만나 현지 파운드리 투자를 논의했다. 인텔은 현재 200억 달러(23조 원가량) 규모의 투자에 8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유럽연합에 요청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인텔이 전체 예상 투자규모의 40%에 이르는 막대한 지원을 요구했다는 점을 들어 유럽 파운드리공장에 차량용 반도체 생산라인을 포함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8인치 웨이퍼 전용 생산장비는 반도체장비회사들도 더 이상 대량 생산하지 않아 가격이 비싸다. 인텔이 보조금을 통해 장비 확보에 드는 비용을 보전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글로벌 파운드리회사들이 유럽에서 잇따른 투자를 추진하자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사업 본격화 가능성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이 최근 차량용 반도체 투자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반도체기업들의 투자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파운드리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데 유럽에서 차량용 반도체사업을 본격화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선택지다”고 말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이전부터 삼성전자가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회사 NXP세미컨덕터(NXP)를 인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확산과 자율주행기술의 발달로 자동차의 전장화가 빨라지면서 차량용 반도체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수요가 글로벌 공급능력을 넘어서면서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럽은 폴크스바겐이나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톱티어 완성차회사들이 있는 지역이다. 때문에 유럽은 차량용 반도체의 조달 현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에게 차량용 반도체는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고 있는 자회사 하만의 디지털 콕핏사업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디지털 콕핏은 다중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차량 조종석을 말한다.

다만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에 파운드리 생산능력의 매우 적은 부분만을 할애해 왔다.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주력하는 중앙처리장치(CPU)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시스템반도체와 비교하면 수익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시장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산업적 특성도 삼성전자가 자체적으로 차량용 반도체사업을 진행하는 데 장애물로 여겨진다.

차량용 반도체는 자동차의 작동을 제어하는 데 쓰이는 만큼 사고 위험과도 맞닿아 있다. 때문에 글로벌 완성차회사들은 이미 안전성을 검증한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해 조달처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이에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사업을 본격화한다면 기업을 인수해 사업 노하우와 고객사를 흡수하고 단번에 시장의 상위권 회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초대형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시선이 많다.

NXP가 바로 그런 회사다.

시장 조사기관 디인포메이션네트워크에 따르면 NXP는 2019년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시장에서 매출기준 점유율 12%로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시장 입지가 탄탄하다. 지난해는 독일 인피니언이 미국 사이프러스를 인수하면서 1위 자리를 내준 것으로 추정된다.

인피니언뿐만 아니라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일본 르네사스 등 차량용 반도체시장의 다른 강자들은 인수합병시장에 매물로 나온 과거가 없다.

반면 NXP는 인수합병시장에 여러 차례 매물로 나왔다. 2016년에는 미국 퀄컴이 NXP를 인수하는 계약까지 체결됐으나 중국 경쟁당국이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아 거래가 무산됐다.

삼성전자로서는 NXP를 인수한 뒤 유럽에서 추가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차량용 반도체사업 본격화를 위한 최선의 선택지라고 볼 수 있다.
 
차량반도체 블루오션으로 유럽 떠올라, 삼성전자 인수합병 나설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NXP가 시가총액만 520억 달러(59조8천억 원가량)에 이를 만큼 비싸다는 점은 인수에서 부담요인이다. 게다가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고려하면 기업가치가 더 뛸 공산이 크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1분기 말 기준으로 보유한 현금,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상품 등 현금 동원능력이 128조2천억 원가량에 이른다.

회사채 발행 등으로 일부 자금을 외부에서 수혈하고 주식교환을 포함하는 방식 등 순수 현금의 유출을 줄이는 방식도 얼마든지 있다.

삼성전자도 대형 인수합병의 가능성을 꾸준히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은 1월 열린 삼성전자 실적발표회에서 “대내외 불확실성 때문에 실행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동안 준비해 온 것을 토대로 이번 주주정책기간(3년) 안에 의미 있는 규모의 인수합병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에서 투자 결단을 내릴 오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가석방으로 풀려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8월이 되면 법무부의 가석방 심사대상 기준인 형기의 60%를 채우는 만큼 가석방은 사면과 달리 특혜 논란이 불거질 일도 적다.

이 부회장이 복귀한다면 인수합병이나 공장 증설 등 삼성전자의 투자 검토에 더욱 속도가 붙을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