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부동산 규제완화를 놓고 속전속결을 내걸었다가 임기 시작 한 달도 못 돼 속도조절로 중심을 옮기고 있다.

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한 걸음 물러선 것인데 임기가 짧아 부동산 관련 공약은 '빈 공약'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오세훈 부동산정책 속전속결에서 속도조절로, 임기 짧아 '빈 공약' 되나

오세훈 서울시장.


9일 정치권 안팎의 말을 종합해보면 오 시장은 4월8일 취임한 뒤 한 달 동안 여러 정책을 추진했으나 번번히 속도조절을 이유로 물러서고 있다.

10년 전 시장 시절에 견줘 유연해진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애초 '의욕과잉'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이다.

애초 오 시장은 후보 시절 부동산정책을 사실상 '제1 공약'으로 내걸며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취임 사흘 만인 4월11일 국민의힘 지도부를 찾아가 부동산 규제완화 공약 실현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세훈발 집값 상승' 논란이 불거지면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는 “재건축과 재개발 등 규제완화가 집값을 자극하지 않도록 관련 정책을 신중히 추진하겠다”며 “신중하지만 신속하게 업무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신속'보다 ‘신중’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오 시장의 이런 변화는 부동산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한 탓이다. 그의 당선 뒤 재건축 규제완화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서울 목동, 압구정동, 여의도동 등 재건축 대상 아파트단지는 호가가 2억~3억 원씩 일제히 뛰어올랐다. 오 시장이 부동산시장에 불을 지른다는 지적이 곧바로 따라 나왔다.

오 시장은 신중에 머물지 않고 급기야 규제 강화에 나섰다. 

그는 4월21일 강남·여의도·목동 등 주요 재건축 예상 아파트단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투기적 거래나 토지 가격의 급격한 상승 우려가 있는 곳의 땅투기를 막기 위해 지정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토지거래시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사실상 실거래가 어려워진다.

그래도 부동산시장의 불안이 가시지 않자 결국 오 시장은 ‘속도조절’을 내놓았다. 오 시장은 4월29일 서울시청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재개발, 재건축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가능한 행정력을 총동원해 부동산시장 교란행위를 근절하겠다”며 “투기적 수요에는 일벌백계로 본보기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요컨대 부동산규제의 신속한 완화를 대표공약을 내세웠음에도 실제로는 규제 강화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오 시장이 취임 뒤 곧바로 내놨던 ‘상생방역’도 한풀 꺾였다.

그는 코로나19 대응에서 ‘상생방역’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꺼내 들었다. 그동안 정부의 방역대책은 자영업자 등의 희생이 불가피한 ‘규제방역’이라면서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을 비판하면서 여권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오 시장은 4월12일 코로나19 브리핑을 열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규제방역’이 아닌 민생과 방역을 모두 지키는 ‘상생방역’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며 업종별 특성에 따라 영업시간 연장을 허용하는 것을 뼈대로 한 거리두기방안을 내놨다.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를 활용해 검사 뒤 음성 판정이 나온 사람은 식당이나 노래방 등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자가진단키트의 정확도였다. 정확도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료계 비판이 뛰따랐다. 게다가 최근 한 달 동안 국내 하루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600~700명대로 치솟으면서 더욱 엄격한 방역이 요구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오 시장은 상생방역의 구체적 매뉴얼을 4월 안에 공개할 듯한 태세였지만 9일에도 감감 무소식이다.

이 밖에도 오 시장이 복지정책의 핵심으로 내걸었던 ‘안심소득’정책 실험도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예산 편성, 실험집단 구성, 보건복지부 협의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 문제도 세금 낭비 가능성을 거론하며 새로 시작할 태세였지만 최종적으로 기존 방침을 이어받기로 결론을 냈다. 

정치권에서는 오 시장의 최근 행보를 두고 임기가 1년뿐이라 원래부터 정책적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의욕만 앞세우면서 부동산 규제완화 등을 약속했다가 현실의 벽에 부닥치면서 서둘러 퇴각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더구나 오 시장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이기려면 '오세훈표 시정'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속도조절만 해서는 다음 선거에서 내세울 게 없을 수 있다. 시정의 안정을 해치지 않는 '방어'가 아니라 뒤흔들면서 성과를 쌓아가는 '공격'이 있어야 한다. 내년 선거에선 지난달 재보궐 선거와 같은 공격자가 아니라 방어자 위치에 서기 때문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최근 뉴시스 인터뷰에서 “오 시장은 급격한 변화보다 시의회 등과 협력하는 등 안정적으로 시정 운영을 하고 있다”면서도 “오 시장에게 투표한 지지층에게 호응을 받을 부동산세제 관련 혁신과 2030세대를 겨냥한 정책이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6월부터는 어떤 정책의 작은 성과라도 감지돼야 지지층 견인이 가능할 것이다”며 “그래야 오 시장의 정치적 외연을 확대하는 등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오 시장도 새로운 시정을 펼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 시장은 부동산규제의 강화를 발표한 자리에서 공정과 상생의 원칙에 맞는 재개발, 재건축지역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투기가 확인된 재건축 단지엔 불이익을, 공공기여도를 높인 단지엔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논리를 폈다.

본인의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 공약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읽힌다. 하지만 부동산시장 안정과 규제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지 구체적 방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는 3일 서울의 10년 미래 청사진인 ‘서울비전 2030’을 그리기 위해 민간 전문가를 대거 영입해 ‘서울비전 2030위원회’를 띄웠다.

서울시의 미래 10년을 그린다는 점에서 본인의 임기를 1년이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이겨 5년으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평가가 서울시 안팎에선 나온다. 여기에 ‘서울비전 2030위원회’이 대부분 교수, 연구원, 관료 등 전문가로만 구성돼 정치권의 화두인 2030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성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