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에 선출된 김기현 의원이 두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김기현 원내대표 취임으로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과 관계설정에 다소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가 뛰어난 정무감각을 갖추고 있지만 '반문재인' 강경투쟁 의지도 밝히고 있어 협상과 투쟁을 동시에 진행하는 원내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원내대표는 3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원내대표 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된 뒤 당선소감을 통해 “먼저 헌신하고 목숨 걸고 앞장서서 싸울 것은 싸우고 지킬 것은 지키겠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가 당면한 시험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원구성 협상이다. 민주당은 원내대표가 된 뒤 법사위원장에서 물러난 윤호중 의원의 후임 법사위원장으로 박광온 의원을 이미 내정했다.
민주당은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 의원의 법사위원장 선출안건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박병석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안건 처리는 5월 본회의로 늦췄다.
김 원내대표는 선출 직후 기자들을 만나 “원구성과 관련해 민주당은 법사위원장 등 상임위원장을 돌려주고 말고 할 권리가 없다”며 “돌려줘야 할 의무만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범법자 지위에 있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김 원내대표의 원내 협상 상대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원구성 재협상은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제 21대 국회의 여야 2기 원내 사령탑도 초반부터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의석 101석으로 174석의 민주당과 협상하고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김 원내대표의 임무는 간단치 않다. 민주당이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별다른 도리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김 원내대표가 주호영 전임 원내대표 시절보다 더욱 강경한 투쟁노선으로 나아갈 것이란 시선도 나온다. 원내대표 당선된 뒤 내놓은 일성도 "목숨 걸고 싸우겠다"였다.
더구나 김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 선거공작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누구보다 ‘반문재인’을 강조해 왔다.
다만 김 원내대표가 당내에서 전략에 밝고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는 만큼 명분에 치우쳐 대여투쟁에 골몰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협상을 통해 실리를 챙길 것이란 시선도 나온다.
김 원내대표는 지략을 강조하며 스스로를 삼국지의 지략가 제갈량에 빗대기도 했다.
그는 앞서 18일 원내대표 출마를 공식화한 기자회견에서 “싸울 때는 단호하게, 우회할 때는 슬기롭고 지혜롭게 우회할 줄 아는 제갈량의 ‘지략형 야전사령관’으로 원내투쟁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다음 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문제도 김 원내대표의 중요한 과제다.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체제가 끝난 뒤 지도부 공백상태에서 원내대표가 당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가 취임과 동시에 당대표 권한대행까지 자동으로 맡게 된 만큼 전당대회 규칙이나 지도체제의 형태를 결정하는 문제에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는 ‘자강’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지 말고 자체적으로 대통령선거 주자를 키우고 수권능력을 갖추자는 쪽이다.
이런 성향을 고려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영입이나 국민의당과 통합은 당 지도부가 정식으로 출범한 뒤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도 김 원내대표의 자강기조가 반영될 공산이 크다.
김 원내대표의 선출로
홍준표 무소속 의원의 복당 전망이 한층 밝아졌다는 시선도 나온다. 당초 김 원내대표는 홍 의원의 복당에 긍정적 태도를 보여왔다. 김 원내대표는 홍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였을 때 당 대변인을 지내는 등 인연이 있어 한 때 ‘친
홍준표계’로 분류된 적도 있다.
다만 일부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홍 의원의 복당을 부정적 기류도 적지 않아 이 역시 간단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영남출신인 김 원내대표가 원내사령탑을 맡으며 국민의힘이 '영남당' 이미지가 더 굳어졌다고 본다.
다만 당내에서는 다음 당대표 선거까지 고려한다면 이번 김 원내대표의 당선이 오히려 ‘탈영남’의 전조라는 시선도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원내대표와 당대표가 둘 다 영남 인물이 되긴 어려운 현실 때문에 당내 영남 의원 사이에서 권성동 의원을 원내대표로 만들고 주호영 의원을 당대표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실제로 있었다"며 "권 의원 표는 20표 뿐이었던 것을 보면 영남이 제대로 결집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친박근혜계’가 결집해 김태흠 의원에게 1차 30표, 2차 34표를 몰아줬다고 보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이날 원내대표 선거의 1차 투표에서 101명이 투표에 참여해 김태흠 의원이 30표, 유의동 의원이 17표, 김기현 의원이 34표, 권성동 의원이 20표를 득표했다(기호순). 2차 투표에서는 김기현 의원이 66표를 얻어 김태흠 의원(34표)을 꺾고 최종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판사 출신으로 2004년 제 17대 총선에서 울산 남구을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변인과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거쳐 2014년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에 당선됐다.
2018년 지방선거 울산시장 재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김 원내대표는 당시 선거기간에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제보한 비위 혐의로 수사를 받은 탓에 낙선했다며 문재인 정권의 하명수사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김 원내대표는 2020년 제 21대 총선에서 울산 남구을에 입후보해 당선되며 4선 의원이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