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산업 인수전, 정용진은 박삼구의 적군인가 우군인가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왼쪽)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적군인가 우군인가?

금호산업 인수전이 불붙었다. 신세계그룹을 비롯해 호반건설, IBK투자증권-케이스톤파트너스 사모펀드(IBK펀드), 자베즈파트너스, MBK파트너스, IMM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정용진 부회장은 “항공업과 유통업의 시너지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가 전격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증권 전문가들은 신세계그룹이 금호산업을 인수할 경우 가장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는 정 부회장이 박 회장과 대결을 펼칠 정도로 항공업이 신세계그룹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항공업은 무엇보다 리스크가 큰 사업으로 꼽힌다. 특히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호남에 뿌리를 둔 기업이라는 점에서 지역정서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인수전 참여를 통해 박 회장과 손을 잡고 실리를 챙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 회장이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권을 되찾는데 백기사 역할을 하면서 기내 면세점이나 기내식 등 사업을 확보하는 실리를 얻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특히 박 회장이 금호산업 인수를 놓고 부족한 현금동원력에도 불구하고 “순리대로 될 것”이라고 평온한 모습을 보이는 점은 이미 백기사를 확보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뒷받침한다. 그 백기사가 정 부회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신세계, 금호산업 인수 시너지 긍정적 평가

신세계그룹 계열사 주가는 26일 오름세를 보였다.

정용진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광주신세계 주가는 전날보다 6.19%(1만9천 원) 올라 32만6천 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장 초반에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쓰기도 했다.

광주신세계의 주가 상승은 신세계그룹의 금호산업 인수전 참여가 호재로 작용한 덕분이다. 증권가는 신세계그룹이 금호산업을 품에 안을 경우 기존 유통사업과 시너지를 낼 것으로 전망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신세계그룹이 금호산업 인수전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차재현 동부증권 연구원은 “신세계는 금호산업 인수에 따른 시너지가 다른 인수전 참여자들보다 높고 자금력 측면에서도 배팅할만한 충분한 여력을 보유하고 있어 인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 같다”고 전망했다.

차 연구원은 “신세계가 금호산업을 인수할 경우 현재 운영중인 웨스틴조선호텔, 면세점, 백화점 등과 확산 효과를 볼 수 있고 금호산업이 100% 지분을 보유한 금호터미널과도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김태현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도 “신세계의 참여는 아시아나항공 인프라를 활용한 면세점, HMR, 핀테크 등 내수기업의 사업시너지 가능성을 기업 입장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세계그룹은 재계 순위 13위다.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호텔(웨스틴조선)과 면세점, 백화점 등 기존 유통 중심 사업영토를 크게 확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재계 순위에도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된다.

  금호산업 인수전, 정용진은 박삼구의 적군인가 우군인가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 금호산업은 재계 불문율 깰 정도로 매력적인가


신세계그룹은 금호산업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대기업으로 일찍이 거명됐다. 그러나 이는 재계의 불문율을 깰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 가능성이 낮게 점쳐진 것도 사실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다른 그룹의 주력회사를 넘보지 않는 것은 재계의 불문율”이라며 “섣불리 나서 인수가격이 높아지면 박 회장이 궁지에 몰릴 수 있는 상황인데 대기업들이 대놓고 참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용진 부회장이 금호산업 인수전에 참여한 점을 놓고 뜻밖이라는 반응도 재계에서 나온다.

이번 매각대상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금호산업 지분 57.5%다.

금호산업은 아시나항공 지분 30.08%를 지닌 최대주주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 지분 46.00%, 금호터미널 지분 100%, 금호사옥 지분 79.90%, 아시아나개발 지분 100%, 아시아나IDT 지분 100% 등도 보유하고 있다.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통째로 얻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국적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신세계그룹이 금호산업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외견상 박삼구 회장에게 강력한 경쟁자가 생겼다는 뜻이다. 신세계그룹의 참여로 금호산업의 몸값은 뛸 가능성이 높고 박 회장으로서 그만큼 금호산업을 되찾는데 부담을 안게 된다.

박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 ‘50%+1’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다.

◆ 박삼구의 여유만만, 믿는 구석 있나


금호산업의 몸값은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1조 원 안팎으로 평가된다. 인수전이 치열해지면 2조 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박삼구 회장은 이런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박 회장이 끌어모을 수 있는 자금은 2천억 원 안팎으로 평가받는다. 박 회장은 아들과 함께 금호산업 지분 10.1%와 금호타이어 지분 9.15%를 보유하고 있다.

금호터미널이 2013년 신세계에 건물과 부지를 장기임대하며 받은 5천억 원 가운데 일부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이는 회사 재산인 만큼 박 회장이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신세계그룹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베팅에 나설 경우 박 회장은 벼랑끝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회장은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순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임원회의에서도 “우리가 인수의지를 갖고 있으니 인수전에 대해 조급하게 생각할 게 없다”며 “의연하게 대처하자”고 주문했다.

박 회장의 이런 태도를 놓고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는 데 어느 정도 준비를 끝낸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박 회장이 대상그룹이나 재향군인회 등과 손잡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이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박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할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용진 부회장이 박삼구 회장과 손을 잡을 경우 항공업 경영이라는 위험은 피하면서 실리를 얻을 수 있는 영역이 많기 때문이다.

  금호산업 인수전, 정용진은 박삼구의 적군인가 우군인가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해 5월 아시아나항공 A380 1호기의 비즈니스 스마티움 좌석에 앉아 시연해보고 있다. <뉴시스>

◆ 정용진의 이해득실

금호산업의 가치는 금호산업을 인수할 경우 국적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경영권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신세계그룹이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을 손에 넣으면 삼성그룹 계열 법인 수요가 아시아나항공으로 몰리고 삼성그룹이 보유한 항공기를 관리하는 등 삼성그룹의 지원을 받아 업계 1위인 대한항공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항공업은 위험이 큰 사업이다. 항공사고는 발생했다 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더욱이 정치 리스크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토부가 항공 노선편성과 운항시간 배분권을 쥔 상황에서 관계 당국과 원활한 관계가 필수적이다.

박삼구 회장은 정재계 ‘마당발’로 통하면서 이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을 경영해 왔다. 박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중우호협회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 한국프로골프협회장, 한국메세나협회장, 연세대 재단 이사 등을 지냈거나 맡고 있다.

박 회장의 인맥은 재계는 물론이고 외교계, 법조계, 스포츠계, 문화예술계, 학계 등으로 뻗쳐 있다.

특히 정 부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외손자로 신세계그룹은 거슬러 올라가면 영남에 뿌리를 둔 기업이다. 호남지역 정서상 신세계그룹의 금호산업 인수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게 되면 주력인 유통업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용진 부회장이 과연 이런 위험을 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금호산업을 직접 인수하기보다 박삼구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하면서 항공사업에서 신세계그룹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을 차지해 실리를 챙기는 것이 훨씬 실속있는 판단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세계그룹 입장에서 기내식 사업권을 받아 신세계푸드를 키우고 기내 면세점을 확보해 면세점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세계그룹은 백화점, 이마트, 면세점 등 유통업이 주력이면서도 조선호텔, 신세계푸드 등을 거느리고 있다.

◆ 주사위 던진 정용진, 손해 볼 게 없는 게임

정용진 부회장이 박삼구 회장의 아군인지 적군인지 향후 인수일정이 진행되면 드러날 것이다.

정 부회장이 아군이라면 재무적 투자자로 박 회장을 지원하면서 신세계그룹 경영에 필요한 부분의 사업권을 얻어내는 물밑작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이 적군이라면 박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정도의 거금을 베팅해 박 회장을 자진포기하도록 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 부회장은 인수후보로 나선 호반건설이나 4개의 사모펀드와 정면대결을 벌여야 한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정 부회장에게 손해 볼 게 없는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등 금호산업 채권단은 25일 인수의향서 접수가 마무리됨에 따라 이달 안으로 입찰일정을 확정해 다음달 초 인수의향서 제출자들에게 통보하기로 했다.

예비입찰을 거쳐 본입찰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절차가 이어진다. 이르면 오는 5월쯤 우선협상대상자가 가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단은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시한 금액을 박 회장에게 알려주고 박 회장이 이 금액을 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박 회장이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시하는 금액 이상을 내게 되면 금호산업 지분을 인수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금호산업은 새 주인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