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선택을 했다. 호랑이는 대통령 후보 자리이고, 호랑이 굴은 민주당이다. 혈혈단신으로 호랑이 굴에 들어간 기세를 몰아 대권을 잡을 수도 있지만, 호랑이 굴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입고 오히려 먹힐 수도 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은 2일 긴급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통합신당을 창당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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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김한길(오른쪽)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함께 이동하고 있다. |
두 사람은 “정부와 여당은 대선 때의 거짓말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며 “엄중한 상황 앞에서 새 정치를 위한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새 정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신뢰의 자산을 만들어 나가는데서 출발한다. 새 정치는 약속의 실천"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신당 창당을 목표로 모두 다섯 가지를 합의했다. 우선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새정치를 위한 신당 창당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정권교체를 실현”하기로 했다. 또 “신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폐지 약속을 이행하고,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타파하기 위해 정치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이와 함께 “(지난)대선 시의 불법 선거 개입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여러 경제주체들이 동반성장하고 상생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실현이라는 민생중심주의 노선을 견지하며,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고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했다.
안 위원장과 김 대표는 통합을 위한 신당 창당의 명분으로 '새정치와 정치개혁'을 통한 ‘2017년 정권교체 실현’을 들었다. 안 위원장에게는 특히 '2017년 정권교체 실현'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일 수도 있다.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 통합 신당 창당인 것이다.
안 위원장은 야권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이후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하고 새정치연합이라는 정치세력을 만드는 이유는 다름 아닌 대선 때문이다.
그러나 안 위원장은 현실 정치에서 힘의 한계를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해 새정치연합이라는 신당을 창당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정치에서 사람이 곧 힘인데,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현실은 안 위원장은 맥빠지게 했을 것이다. 또 혼자서 정당 운영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위원장이 경기지사 후보로 영입을 공을 들인 김상곤 교육감이 민주당과 연대한 시민후보로 나서도록 해줄 것을 요구한 뒤 몹시 힘들어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부산에서 무소속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오거돈 후보의 영입도 좀체 진척되고 있지 않았다.
안 의원이 아무리 ‘새정치’라는 명분을 내건다고 해도 지방선거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안게 될 경우 새정치연합은 초라해지고 안 위원장은 유력 대선 후보라는 지위마저 흔들리게 된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야권이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으로 분열될 경우 승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예측이 나오는 것도 안 위원장을 고민에 빠뜨리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하다가는 야권 분열로 여당에 어부지리를 줬다는 비난을 온몸으로 감당하게 될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따라서 안 위원장은 그동안의 궤도를 수정해 민주당과 통합을 통해 강력한 야당을 구축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민주당과 당대당 통합 등이 아니라 제3지대 신당 창당이라는 절차를 통해 새정치라는 명분은 최대한 유지하고 민주당의 색깔은 최소화하면서 통합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송호창 새정치연합 소통위원장이 "정말 우리들은 맨손으로 호랑이굴에 자기 발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그런 각오로 새정치를 추구하고자 했던 의지와 목표를 한 치도 어긋남 없이 끝까지 관철시키겠다"고 말한 것도 안 위원장이 새정치연합 창당을 추진하다 방향을 선회한 고민을 읽게 만든 대목이다.
안 위원장은 일단 신당 창당을 통한 통합으로 ‘현실적인 힘’을 얻었다. 유력 차기 대선주자라는 상징과 함께 통합신당이라는 강력한 정치무대를 얻었다. 이번 통합을 통해 안 위원장은 신당창당준비단과 창당발기인대회 구성 비율로 '50대50'을 관철하면서 신당의 지분을 상당부분 확보했다.
그러나 잃은 것도 적지 않다. 우선은 ‘2017년 정권교체’와 ‘2016년 총선 승리’ 그리고 가깝게는 ‘2014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통합을 선택했지만, 그동안 안 위원장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새정치를 위한 100년 정당’이라는 기치는 퇴색되고 말았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당장 "새정치로 포장한 것이 국민을 현혹시키고 정치적 거래에 유리하기 때문에 새정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을 뿐"이라며 "그래서 결국 오늘과 같은 전무후무한 최악의 뒷거래가 이뤄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안철수 의원은 계산 빠른 정치공학의 아이콘, 양치기 정치인의 아이콘이 돼버렸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도 현안 논평에서 "안 위원장이 2석짜리 신생세력으로 126석짜리 제1야당과 야합해 5대5의 지분을 얻게 된다면 일면 정치벤처도 대박을 얻어내는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면서 "안 위원장은 남는 장사를 했다고 계산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그토록 외치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잃고 구태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길에 들어 선 것이 아닌지 자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은 야권에서도 나왔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원래부터 원칙도 내용도 없었던 안철수식 새정치의 종언을 고한 날"이라며 "결국 안 의원 본인은 그동안 혁파하겠다던 정치 기득권에 스스로 편승해 자신의 정치적 꿈을 이루겠다고 헌 정치에 투항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런 의문은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나온다. 김성식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꿈을 마음에 묻는다’는 제목의 글에서 "새로운 대안정당을 만들어 우리 정치 구조 자체를 바꿔보려는 저의 꿈이 간절했기에 그 꿈을 나누는 과정에서 쌓은 업보는 제가 안고 가야 하기에 나는 고개부터 숙이고 오랜 기간 홀로 근신하고자 한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또 기자회견 직전 내부에서 추인을 받는 과정에서도 윤여준 의장 역시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안 위원장은 이를 의식한 듯 트위터를 통해 "앞으로 실무단 회의 등을 통해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될 예정이며 제3지대 신당이 창당되더라도 우리는 새정치, 그리고 정치 혁신을 멈추지 않고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안 위원장을 강력히 지지했던 계층들은 새누리당도 싫어하지만 민주당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과연 이들이 민주당과 통합한 안 위원장을 어떻게 평가할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안 운영위원장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정치역량을 실험대에 올리게 됐다. 당장은 ‘제3지대 신당 창당을 통한 통합’을 잘 이끌어 내야 한다. 민주당도 여러 정파로 나뉘어져 있는데다 새정치연합의 일부 이탈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신당 창당을 통한 통합이 자칫 비끗할 경우 오히려 통합을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안 운영위원장이 기업 CEO 출신이다 보니 생산성과 효율성을 의사결정의 민주성보다 더욱 높이 평가하는 데 젖어 있다. 그래서 다소 독단적인 결정으로 안 운영위원장을 따르는 세력들을 더욱 실망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탈이 다 늘 수도 있다. 지난 대선 때 단일화 결정에도 안 위원장은 그런 모습을 보였다.
또 안 위원장은 향후 신당의 대주주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민주당도 매우 다양한 이념과 배경을 지닌 집단들이 모여 여러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에 새정치연합까지 결합하고 신당 창당 과정에서 더 다양한 세력이 모일 수 있다.
이렇게 모인 거대 야당을 ‘대주주’ 안 위원장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묶어내고 그 힘을 기반으로 지방선거와 총선 등을 향해 갈 수 있을지도 현재로서는 매우 불투명하다. 안 위원장한테로 힘 쏠림이 강하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견제도 훨씬 더 강하게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들을 안 위원장이 정치인으로 극복하면서 당을 장악해 갈 수 있느냐 혹은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실험대에 안 위원장 스스로를 올려놓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