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값 인하압박, 삼성전자 진퇴양난  
▲ 이돈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담당 사장이 지난달 3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4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갤럭시노트4'를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삼성전자가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시행 초기 이동통신사들의 낮은 보조금에 집중됐던 소비자들의 불만이 점차 국내 최대 휴대전화 제조사인 삼성전자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보다 국내에서 더 비싸게 판다는 역차별 논란에 가격 부풀리기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안티 삼성전자’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게가다 정부까지 나서 스마트폰 가격 인하를 요구하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가격인하를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가격을 내릴 경우 해외에서도 똑같이 가격인하 압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 이상훈 “중요한 것은 실제 구입가”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은 17일 서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단통법 관련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최근 불거진 출고가 논란에 대한 삼성전자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 사장은 “전체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개인이 단말기를 얼마에 살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출고가가 얼마인지 회사들이 중간에 얼마의 마진을 붙이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사장의 발언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가 출고가를 일부러 부풀렸다는 의혹에 대한 반박이다.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3일 열린 미래창조과학부 국감에서 삼성전자가 단말기 가격에 제조사 장려금과 통신사 보조금을 포함시켜 출고가를 높였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관련 자료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즉각적으로 해명했다.

이 사장은 스마트폰 출고가격이 높고 외국에 비해 국내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이 사장은 “국내 출고가격이 해외 출고가보다 높다는 비판이 있는데 실제로 차이가 없다”며 “스마트폰의 경우 관세가 없어 제품 특성상 나라별로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정부에 이러한 입장을 이야기했다”며 “삼성전자의 의견을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계속 이해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의 출고가 인하요구에 우회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분석된다.

◆ 통신사의 낮은 보조금이 문제라는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 가격이 크게 오른 원인이 제조사가 아닌 통신사에 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소비자들이 미국 소비자들보다 같은 제품을 더 비싸게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통신사 보조금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갤럭시노트4의 국내 출고가와 미국 출고가는 각각 95만7천원과 95만4천원으로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통신사를 통해 사게 되면 실제 구입비용은 국내가 최소 83만 원대, 미국은 약 32만원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 격차가 제조사가 아닌 통신사의 보조금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사장이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출고가격이 아닌 실제 구입가격을 언급한 것도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 구입 부담이 높아진 데 대한 책임을 통신사에 돌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스마트폰값 인하압박, 삼성전자 진퇴양난  
▲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 <뉴시스>
이 사장은 보조금 분리공시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여전히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 사장은 “간담회에서 분리공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분리공시가 시행된다고 해서 현재 직면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분리공시제도는 소비자에게 지원되는 보조금을 제조사 장려금과 통신사 지원금으로 나눠 발표하는 제도다. 정부는 단통법 시행과 함께 이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 누설된다며 반대해 도입이 무산됐다.

이 사장은 중저가 단말기가 적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지금도 중저가 단말기가 충분한 상황”이라며 “그런데 사람들이 이를 잘 못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 사장은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해 각 회사가 알아서 발표하기로 했다”며 “단통법 문제가 원만히 해결돼 앞으로 이런 회의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정부와 국민들의 압박 거세져

삼성전자가 고가 단말기 논란에 대해 계속 해명하고 있지만 여전히 단말기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은 강하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국내에서 판매중인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해외에서 직접 구매할 경우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글이 확산되면서 이른바 ‘역차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S5 공기계의 국내와 해외 가격은 큰 차이를 보인다. 삼성전자 스토어를 통해 국내에서 이 제품을 구매할 경우 최소 95만 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제품을 살 경우 66만 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국내 출고가 부풀리기를 지적하며 행동에 나선 시민단체도 등장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13일 삼성전자 등 국내 제조사와 이동통신3사가 단말기 가격을 부풀려 폭리를 취했다며 이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소비자들의 단말기 인하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도 이에 맞춰 통신사보다 제조사를 압박하고 있다. 이는 단통법이 보조금 상한선만 정했을 뿐 하한선이 없는 탓에 정부가 통신사에 보조금 인상을 요구할 수 없는 부분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스마트폰 출고가를 내리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단말기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 제조사들만 이익을 얻고 있다는 차가운 시선도 있다”고 말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외국에 비해 휴대폰 가격이 높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제조사들도 이를 알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폰값 인하압박, 삼성전자 진퇴양난  
▲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간담회를 열고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와 이동통신 3사 사장단에게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관련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뉴시스>

◆ 가격 쉽게 내리지 못하는 삼성전자의 고민


단말기 가격 논란이 삼성전자에만 집중되는 것은 삼성전자가 사실상 국내 스마트폰시장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삼성전자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59%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단말기 가격을 내려야 2위 사업자인 LG전자도 가격인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고 정부는 판단한 듯 보인다.

출고가 인하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단말기 가격을 쉽게 내릴 수 없는 처지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단말기 가격을 내릴 경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 삼성전자를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해외에서도 단말기 가격을 내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매출 구조를 보면 삼성전자가 왜 국내에서 단말기 가격 인하를 쉽게 단행하지 못하는 지 알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 전체 스마트폰 매출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5% 미만이다. 나머지 95%의 매출을 해외시장에서 거둔다.

결국 비중이 5% 밖에 안 되는 시장을 위해 모험을 강행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와 소비자의 요구를 무시하자니 ‘안방시장’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어 난처한 상황이다.

가격을 내릴 경우 어느 선까지 인하해야 할지도 삼성전자를 고민하게 만든다.

가격을 큰 폭으로 내릴 경우 현재 얼어붙은 국내 스마트폰시장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유지해 온 프리미엄 이미지가 무너질 수 있고 판매량이 늘더라도 줄어든 마진을 채우지 못할 경우 그 손해는 온전히 삼성전자가 떠안게 된다.

그렇다고 가격을 조금만 내릴 경우 정부와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생색만 낸다는 비판에 또다시 직면하게 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