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한 호오와 그 각각의 스펙트럼은 물론이요 그 작품에서 흥미를 느끼는 대목도 사람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마라토너인 나는 달리기 얘기가 나오면 솔깃해한다. 초등학생 때 본 '일리어드'를 다시 읽으면서(실은 오디오북으로 들으면서) 흥미를 느낀 대목이 달리기 경주였다.

  무지에 대한 무지,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의 어려움  
▲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국 편집위원.
아킬레우스가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장례를 치른 뒤 그를 기리고 그리스군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행사를 개최하는데, 전차경주와 권투, 레슬링, 활쏘기 등과 함께 달리기 시합도 연다.

며칠 전엔 '만약'(If)이라는 영시에 달리기가 언급된 구절을 접하고 눈이 번쩍 뜨였다. 가치투자의 대가 존 템플턴도 ‘만일 네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고개를 똑바로 들 수만 있다면...’으로 시작하는 이 시를 좋아했다는 내용을 보고 나는 인터넷에서 이 시의 전문을 찾았다.

이 시는 '정글북'을 쓴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1865~1936) 작품이다. 키플링은 12세가 된 아들을 위해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이 시는 여러 버전으로 번역됐다.

다음은 한 일간지에 2015년 4월 실린 번역이다.

만약에...
- 러디어드 키플링

모든 이들이 너를 의심할 때 스스로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기다릴 수 있고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을 당해도 거짓과 거래하지 않고
미움을 당해도 미움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꿈을 꾸되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네 일생을 바쳐 이룩한 것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
허리 굽혀 낡은 연장을 들어 다시 세울 수 있다면...
네가 성취한 모든 걸 한 번의 승부에 걸 수 있다면,

그래서 패배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군중과 함께 말하면서도 너의 미덕을 지키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민중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의 시간을
60초만큼의 장거리 달리기로 채울 수 있다면

이 세상,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게 다 네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아, 너는 드디어 한 남자가 되는 것이다!

세계의 런너 중 일인으로서 나는 밑줄 그은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키플링은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앞서 장거리 달리기를 즐긴 문인인가? ‘1분 동안 60초의 장거리 달리기’란 무슨 말일까. 나는 1분 동안 전속력으로 달리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더라? 일정 거리 이상 주파하는 게 아니라면 누구나 1분은 뛸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구절의 조언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1분 동안을 달리기로 채워보라, 그렇게 하면 마음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인가. 시의 전체 흐름에서 달리기가 들어간 것이 어울리나? 내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서 원문을 찾아봤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If you can fill the unforgiving minute
With sixty seconds' worth of distance run,

원문도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구글에게 물어봤다.

단어 unforgiving은 ‘용서할 수 없는’이 아니라 ‘가차없는’임을 알게 됐다. 일정한 시간은 단 한 순간도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으며 항상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또 distance run은 장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 달리기를 가리키는 데 쓰이는 명사구다.

예를 들어 five minutes distance run은 ‘5분 달리기’를 뜻한다. 그래서 sixty seconds' worth of distance rum은 직역하면 ‘60초 동안 달리기’가 된다. 그러나 이 문구는 비유이고, ‘60초 동안의 최선’을 가리킨다.

결국 이 대목의 뜻은 ‘가차없는 1분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60초로 채울 수 있다면’이다.

이 오역이 빚어진 것은 영어를 잘 몰라서도 아니요, 우리글을 구사하는 능력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글의 내용을 문맥과 현실 속에서 파악하는 훈련을 덜 거쳐 그런 습관이 머리에 배지 않은 데에서 비롯됐다. 이런 실수는 문장이 쉬운 단어로 이뤄져 있을 때 더 자주 발생한다.

논의를 확장하면, 전문 지식인은 자신이 아는 부분과 그 너머의 모르는 영역의 경계를 정확히 인식한다.

전문 지식인이 되는 과정은 미지의 영역을 밟아가서 지식의 최전선에 이른 뒤 그 최전선을 확장하는 작업이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지식의 경계에 대한 인식을 날카롭게 가다듬게 된다. 그런 인식은 전문 지식인과 일반인을 가르는 강력한 기준이다.

국내에서는 자신의 앎의 경계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지 않은 지식인이 자주 보인다. 자신의 영역 밖으로 넘어가 자신 있게 주장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지식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밟아가지 않은 결과 빚어지는 현상으로 보인다.

(시 원문)
If

If you can keep your head when all about you
Are losing theirs and blaming it on you,
If you can trust yourself when all men doubt you,
But make allowance for their doubting too;
If you can wait and not be tired by waiting,
Or being lied about, don’t deal in lies,
Or being hated, don’t give way to hating,
And yet don’t look too good, nor talk too wise:

If you can dream—and not make dreams your master;
If you can think—and not make thoughts your aim;
If you can meet with Triumph and Disaster
And treat those two impostors just the same;
If you can bear to hear the truth you’ve spoken
Twisted by knaves to make a trap for fools,
Or watch the things you gave your life to, broken,
And stoop and build ’em up with worn-out tools:

If you can make one heap of all your winnings
And risk it on one turn of pitch-and-toss,
And lose, and start again at your beginnings
And never breathe a word about your loss;
If you can force your heart and nerve and sinew
To serve your turn long after they are gone,
And so hold on when there is nothing in you
Except the Will which says to them: ‘Hold on!’

If you can talk with crowds and keep your virtue,
Or walk with Kings—nor lose the common touch,
If neither foes nor loving friends can hurt you,
If all men count with you, but none too much;
If you can fill the unforgiving minute
With sixty seconds’ worth of distance run,
Yours is the Earth and everything that’s in it,
And—which is more—you’ll be a Man, my son!

 

백우진은 호기심이 많다. 사물과 현상을 종횡으로 관련지어 궁리하곤 한다. 책읽기를 좋아한다. 글쓰기도 즐긴다. 책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글은 논리다』『안티이코노믹스』『한국경제실패학』『나는 달린다, 맨발로』를 썼다.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포브스코리아, 아시아경제 등 활자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다. 마라톤에 2004년 입문했고 풀코스 개인기록은 3시간37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