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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삼성전자가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를 놓고 현대자동차그룹과 벌인 입찰경쟁에서 패배했다.
삼성전자가 내보인 ‘히든카드’ 액수는 4조 원대 중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10조 원대를 써내며 전력투구한 현대차그룹에 비해 턱없이 소심했다. 삼성전자는 현금성 자산만 60조 원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한전부지 쟁탈전에 과감하게 나서지 못한 것은 스마트폰사업 부진으로 인력감축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투자에 대한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패배로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이 훼손됐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그룹 안팎에서 과연 그가 이건희 회장처럼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에게 이번 패배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 삼성전자 4조5천억 입찰, 현대차그룹의 절반 수준
한전부지 입찰에서 삼성전자는 4조5천억 원대의 낙찰가를 써낸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감정가액 3조3346억 원을 1조 원 이상 웃도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10조5500억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한전부지 승자가 현대차그룹으로 결론나자 당혹감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입찰 참여는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으로 내린 초특급 규모의 결단이었다.
삼성전자는 한전부지 인수에 성공할 경우 최근 실적둔화로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삼성전자는 낙찰자로 결정되면 18일 부지개발계획 등을 내놓으려고 했다.
삼성전자는 삼성동 일대를 첨단 ICT산업 인프라와 대규모 상업문화시설이 총망라된 'ICT 허브'로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계획들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낙찰에 실패한 이상 정확한 입찰가격이나 개발계획 등에 관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면서 “현대차그룹이 10조 원대까지 가격을 써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애초 한전부지 인수전에서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현대차그룹은 부지 매각이 결정되자마자 인수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개발 청사진을 내놓았으나 삼성그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이재용 리더십에 상처날까
삼성전자는 입찰마감 당일인 17일 오전 권오현 부회장,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 등 사내 이사들이 참여한 경영위원회를 열어 삼성전자의 단독입찰 안건을 통과시켰다.
부지활용 계획도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애초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계열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컨소시엄으로 입찰에 참여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으나 이런 예상을 깨고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삼성전자의 이번 입찰 참여는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인 상황에서 내린 초대형 투자결단이었던 만큼 이 부회장이 입찰에 성공할 경우 경영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의 이번 입찰 실패로 이 부회장이 리더십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초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입찰에 참가하기로 한 이상 승부를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의 결단력에 의문을 품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이 부회장 체제에서 삼성전자가 과연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해 이건희 회장 때처럼 신속하고 과감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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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미래전략실 부회장 |
◆ '승자의 저주' 트라우마 작용했을까
삼성전자가 한전부지 입찰에 참여하자 과연 얼마만큼의 가격을 제시할 지에 관심이 쏠렸다. 삼성전자는 현금성 자산규모로 볼 때 국내 최대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은 사업추진에서 만전을 기하는 꼼꼼하고 신중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한번 정한 목표에 대해서는 승부사다운 과단성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가 써낸 4조 원대 중반의 액수는 한전부지에 인수의지가 그만큼 약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스마트폰 사업부진에 따른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2분기 영업이익이 7조 원대로 내려앉은 데다 3분기에도 5조 원대의 영업이익이 전망되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한전부지 입찰에 과감하게 뛰어들지 못한 것도 이런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벌이면서 한전부지를 반드시 손에 넣기 위해 수조 원을 써내기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한 배경도 새삼 주목된다. 삼성전자가 비상경영 상황인 점을 감안할 때 삼성물산이나 삼성생명 등 계열사와 함께 자금을 분담할 경우 심리적 부담을 낮출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단독 참여를 결정한 데 삼성물산 주도의 2007년 용산 역세권개발사업 실패가 트라우마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시 삼성물산은 현대건설과 과열된 경쟁을 벌이느라 예상가액 5조 원대를 크게 웃도는 8조 원으로 용산 땅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사업이 좌초되면서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대표적 선례로 남았다.
게다가 삼성물산의 자금상황도 결코 좋은 편이 아니다. 1조9천억 원에 이르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나 채권발행 잔액이 2조 원이 넘는 등 삼성전자를 지원사격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분석된다.
◆ 삼성전자 오히려 전화위복 전망도
삼성전자는 현대차그룹과 자존심을 건 이번 대결에서 지고 말았으나 그 결과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실적하락은 물론이고 외국인 주주들의 배당압력, 정부의 사내 유보금 축소 압력 등 대내외 악재가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이번 입찰실패가 삼성전자에게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종 낙찰가가 10조 원대까지 치솟은 상황을 고려하면 불필요한 과열경쟁에 삼성전자가 뛰어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수 있다”며 “자금을 비축해 신사업 확대 등에 매진하는 편이 더 실리적일 수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전사적으로 비용절감 노력을 하고 있고 주주 등의 배당압력도 높은데 부동산 투자에 수조 원씩 투자하는 게 직원들이나 주주들에게 납득이 되겠느냐”며 “실탄을 비축해 인수합병 등 신성장 동력을 찾는 데 주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