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유석 일양약품 대표이사 사장이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12년 가까이 성과를 내지 못한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 기술수출 계약을 정리하고, 중국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한 자양강장음료 ‘원비디’를 앞세워 사업 기반을 단단히 구축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하면서다.
 
일양약품 오너3세 정유석 해외사업 재정비, 러시아 백혈병 약 기술수출 접고 중국 자양강장음료 '원비디' 집중

▲ 일양악품이 러시아 제약사와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 기술수출 계약을 정리했다. 사진은 정유석 일양약품 대표이사 사장 생성형 AI를 활용해 편집한 이미지. <챗GPT>


9일 일양약품에 따르면 러시아 제약사 알팜과 체결한 145억2880만 원 규모의 슈펙트 기술수출 및 원료·완제품 공급계약 기간이 7일 종료됐다.

두 회사는 2014년 12월8일 계약을 맺었다. 알팜이 러시아에서 슈펙트의 품목허가와 상업화를 맡고 일양약품은 기술을 이전한 뒤 원료와 필요시 완제품을 공급하는 구조였다.

총계약금액은 계약금 300만 달러와 단계별 기술료 1천만 달러를 합쳐 1300만 달러였다. 계약금 300만 달러 가운데 일양약품이 실제로 받은 금액은 100만 달러에 그쳤다. 나머지 계약금 200만 달러와 품목허가·상업화에 연계된 단계별 기술료 1천만 달러는 지급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받지 못했다.

러시아 규제당국은 현지 백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임상시험을 요구했지만 알팜은 임상을 진행하지 않았다. 품목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슈펙트 원료와 완제품 공급도 이뤄지지 않았다.

일양약품은 제품 공급 실적이 없어 계약 종료가 매출이나 재무상태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설명했다. 재무적 손실이 새로 발생하지는 않지만 계약금 일부를 제외하면 약 12년 동안 러시아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셈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슈펙트가 본격적인 상업화 성과를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양약품은 2014년 튀르키예 제약사 압디 이브라힘과 튀르키예 등 7개 나라를 대상으로 2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지만 올해 상반기까지 받은 금액이 없다. 2016년 콜롬비아 바이오파스와 맺은 중남미 9개 나라 대상 계약도 총계약금액 2200만 달러 가운데 수취액은 계약금 10만 달러에 그쳤다.

중국 사업이 상대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 일양약품은 2013년 양주일양제약유한공사와 300만 달러 규모의 슈펙트 기술수출 계약을 맺고 계약금 100만 달러를 받았다. 현지 임상 3상을 마치고 시판허가신청 자료도 제출했지만 아직 품목허가와 제품 출시는 이뤄지지 않았다.

러시아 계약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데는 2년 넘게 걸렸다.

알팜 담당자는 2024년 6월 이메일로 슈펙트 프로젝트를 종료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계약서상 요구되는 회사 명의의 공식 통지는 보내지 않았다. 이후 일양약품은 알팜의 의사를 확인하고 계약을 정리하기 위해 올해 6월까지 실무진 사이 협의를 이어갔고 결국 7일에서야 계약이 만료됐다. 

알팜 담당자가 이메일로 프로젝트 종료 의사를 전달한 뒤 계약이 공식적으로 끝나기까지 2년3개월이 걸린 셈이다.

이 같은 계약 정리는 정유석 사장이 경영권과 최대주주 지위를 잇달아 확보한 시점과 맞물린다.

정 사장은 일양약품 창업주인 정형식 명예회장의 장손이자 정도언 전 회장의 장남이다. 2006년 일양약품에 입사해 해외사업과 마케팅 업무를 맡았으며 2023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2025년부터 단독대표를 맡았고 올해 7월에는 부친에게 보통주 170만 주를 증여받아 최대주주가 됐다.

단독대표와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한 정 사장 체제에서 장기간 성과가 없었던 러시아 계약을 정리하고 중국 원비디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일양약품은 1996년 중국 측 파트너와 통화일양보건품유한공사를 설립해 원비디를 현지에서 생산·판매했다. 그러나 배당하지 않고 쌓아둔 이익인 미분배이익 지급과 경영권, 원비디 상표권 등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자 2023년 통화일양 청산을 결정했다.

올해 3월25일 주주 사이 합의를 거쳐 미분배이익 배당금과 손해배상금 등을 회수했으며 4월에는 통화일양의 잔여 순자산과 원비디 관련 지식재산권을 넘겨받았다. 이후 보유 지분을 중국 측 주주에게 양도하면서 약 30년 동안 이어진 합작관계를 정리했다.

새로운 중국 사업 거점은 2025년 3월 지린성 창춘에 설립한 일양약품길림유한공사다. 일양약품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정 사장이 길림법인의 대표도 맡고 있다.

중국 측 주주와 의사결정을 나눠야 했던 통화일양과 비교해 본사의 경영 의사결정과 자금 관리 통제력을 높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일양약품 오너3세 정유석 해외사업 재정비, 러시아 백혈병 약 기술수출 접고 중국 자양강장음료 '원비디' 집중

▲ 일양약품이 중국법인을 설립하고 원비디를 직접 판매한다. 사진은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일양약품 본사. <일양약품>


길림법인은 올해 상반기 매출 12억497만 원, 영업이익 1억7214만 원, 순이익 1억5449만 원을 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매출이 없었다.

일양약품은 길림법인에 모두 8천만 위안(176억2240만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전체 투자금은 2025년 말 연결 자기자본의 7.3%에 해당한다.

1차 투자금 4500만 위안은 공장 임대와 생산설비 구매·설치, 제품 등록 등 생산 기반 구축에 사용한다. 2차 투자금 3500만 위안은 연구개발과 마케팅, 생산라인 확충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2차 투자에는 길림법인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우선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176억 원을 모두 집행한 것은 아니다. 이번 8천만 위안 투자계획 가운데 6월30일 집행된 금액은 150만 달러(1018만5천 위안)로 전체 계획의 12.7% 수준이다. 나머지 투자금은 현지 사업 일정에 따라 나눠 출자하며 투자 완료 시점도 정해지지 않았다.

중국 사업의 중심 제품은 원비디다.

일양약품은 6월 한국에서 생산한 원비디 완제품을 길림법인을 통해 중국에 수출했다. 우선 일반식품 형태로 판매하며 유통망을 확보한 뒤 중장기적으로 현지 생산시설 구축과 제품 등록을 추진한다.

길림법인이 매출을 내기 시작했지만 과거 사업 규모와는 아직 차이가 있다. 통화일양의 원비디 매출은 2023년 2억1997만 위안(약 405억 원)이었다. 길림법인이 과거 합작법인의 매출 기반과 유통망을 얼마나 빠르게 회복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본업의 수익성 회복 여부는 중국 투자 속도를 좌우할 변수다. 일양약품의 올해 상반기 연결 매출은 1302억 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4% 증가했지만 영업손실 141억 원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원비디 사업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슈펙트는 국내 판매 확대를 목표로 적응증 추가를 위한 임상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