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는 모두 부동산정책에서 ‘서민의 주거안정’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모두 달랐다. 전두환·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은 부동산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고 노태우·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은 투기를 잡는데 주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통계를 살펴보면 어느 정부에서나 부동산 가격은 오름세를 보였다.

◆ 전두환, 부동산 투기판으로 전락

전두환정부는 출범 초기에 지역개발을 위한 규제완화를 부동산 정책기조로 삼는다.

전두환정부는 1980년 12월31일 부동산시장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도시의 주택난을 해소하겠다는 명분으로 ‘택지개발촉진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신도시 개발의 근간이 된 법이다.

  역대 정권의 부동산정책에 시장은 어떻게 반응했나  
▲ 전두환 전 대통령.
택지개발촉진법은 도시개발방식을 소위 공영개발방식으로 전환해 개인들이 개발이익을 사유화하는 문제를 줄이려는 목적이 있었다.

1981년에도 주택건설용 양도소득세를 면제하고 주택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부동산 부양책을 계속 실시한 결과 1982년부터 부동산시장은 투기가 과열될 조짐을 보였다.

전두환정부는 부랴부랴 정책기조를 수정해 △분양가 규제 △채권입찰제·불법전매금지 △종합토지세 신설 등의 규제방안을 계속 내놨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은 국내경제 호황과 올림픽 특수 영향을 받아 날뛰게 된다.

그 뒤 전두환정부는 투기가 심해지면 세율을 높이고 경기가 침체되면 세율을 낮추는 식으로 단기적이며 뒷북치기식 정책을 내놓게 된다.

결과적으로 전 전 대통령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정책을 쏟아낸 결과 부동산시장을 안정화하는데 실패했다.

◆ 노태우 김영삼, 부동산 광풍 잠재우기 주력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1988년은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경기활성화와 증시 호황 등으로 시중의 유통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려 땅값이 폭등하고 토지투기가 성행하는 시기였다.

노태우정부는 투기판으로 전락한 부동산시장을 바로세우기 위해 극약처방을 내린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투기억제지역 확대 △종합토지세 조기실시 △1가구 1주택 비과세요건 강화 등이 포함된 부동산종합대책을 꺼내놓는다.

  역대 정권의 부동산정책에 시장은 어떻게 반응했나  
▲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 김영삼 전 대통령.
특히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토지초과이득세를 부과하는 등 토지의 투기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시중에 유통되는 자금을 주택시장으로 끌어드리는 역효과를 불러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가격이 5년 동안 5배 가까이 오르기도 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3년 동안의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평균 24%에 이른다.

노태우정부는 토지 관련 제반부담금을 산정하는데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제도도 1989년 도입했으나 부동산시장 과열을 잡기에 역부족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상반기에도 연달아 3번이나 규제방안을 발표한다. 이 규제방안 가운데 하나가 분당과 일산 등에 214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공급을 확 늘리자 시장은 즉각 반응하기 시작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 동안 전국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모두 9.2%가량 내렸다. 정권 초기 3년 동안 집값이 폭등했던 점을 감안할 때 주목할만한 성과였다.

김영삼정부도 부동산시장을 규제하는 방안에 힘을 실었다. 김영삼정부는 1995년에 금융·부동산실명제를 도입했는데 이 영향으로 부동산거래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긴 했으나 부동산시장의 거래과정을 투명하게 밝혀 부동산시장이 안정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1994년 준농림지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 수도권의 난개발을 조성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김영삼정부는 1997년 국가부도사태 이후 건설과 부동산경기의 활성화방안으로 토지시장의 개방, 자산담보부증권(ABS)제도 등을 시행했다.

◆ 김대중 노무현, 부동산 보는 관점에 따라 정책 갈려

김대중정부는 부동산시장을 투기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외환위기로 추락한 부동산시장을 일으켜야 하는 특수성이 있었던 만큼 불가피했던 선택이다.

김대중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토지거래신고구역 및 허가구역 등 토지공개념제도를 완화했으며 부동산경기 활성화대책으로 25.7평 이하의 주택 경우 양도소득세를 면제했다.

  역대 정권의 부동산정책에 시장은 어떻게 반응했나  
▲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 노무현 전 대통령.
가장 눈에 띄는 정책은 아파트분양가의 전면 자율화다. 전두환정부 시절 단 한 번 등장해 1년반 동안 시행된 이 정책은 노무현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하기 직전인 2007년까지 이어진다.

아파트분양가의 전면자율화는 집값상승으로 이어졌다.

서울의 아파트분양가는 1997년에서 2006년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18.5%씩 올랐다. 전매제한 폐지와 청약요건 완화, 양도소득세와 취·등록세 감면, 대출확대 등 부양책이 끊이지 않고 등장한 결과다.

김대중정부는 경기부양책을 통해 국가부도사태를 일찍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긴 했으나 부동산시장의 과열을 막지 못했다.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로부터 넘겨받은 부동산시장의 과열을 막는데 주력한다. 노태우정부가 전두환정부의 유산을 물려받아 뒷수습을 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노무현정부는 서울 강남의 재건축시장을 중심으로 과열된 집값을 잡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를 도입했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는 40%까지 낮췄다. 분양가자율화도 폐지, 버블세븐 지정과 2기 신도시 조성, 보유세와 종합부동산세 신설, 양도소득세 강화, 분양가 전매제한 확대 등의 규제방안을 쏟아냈다.

노무현정부는 시장의 질서를 거스르는 정책을 쏟아낸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으나 2007년에 시장 안정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2006년만 해도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의 상승률은 24%에 이르렀는데 2007년에3.6%까지 확 떨어졌다.

◆ 이명박, 금융위기 변수에 부양책 무력화

이명박정부는 노무현정부의 규제대책이 부동산시장의 위축을 불러왔다고 보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권 출범초기부터 연달아 부양책을 쏟아냈다.

이명박정부는 임기 첫 해인 2008년 일 년 동안 모두 6번 부동산시장 부양책을 냈다. 이듬해인 2009년에도 6개의 부양책을 더 내놨다.

  역대 정권의 부동산정책에 시장은 어떻게 반응했나  
▲ 이명박 전 대통령.
하지만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터지자 이명박정부의 부양책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KB국민은행 부동산통계에 따르면 이명박정부에서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2009년까지 연평균 3% 안팎의 상승률을 보였으나 이후 2010~2013년까지 하락세를 보였다.

이명박정부 5년 동안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0.27% 하락한 것으로 집계된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평균 상승률인 3.16%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