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을 세 차례 연속 동결하면서 가격 통제 장기화 국면에 들어섰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가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2%포인트 낮추는 등 단기적으로 물가 안정 효과를 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유사 손실 보전 규모가 불어나고 시장 가격 기능 왜곡 우려도 커지면서 이제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유 최고가격 3연속 동결 커지는 부담, 물가는 잡았지만 난감해지는 '출구전략'

▲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이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5차 석유 최고가격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8일 0시부터 5차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도매가격을 리터당 1934원, 경유는 1923원, 등유는 1530원으로 각각 유지했다. 3월27일 3차 최고가격부터 3차례 연속 동결한 것이다.

정부는 이란전쟁 이후 국제유가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물가와 민생 안정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 “최고가격제는 국제유가 충격에서 민생을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가격제는 실제 물가 안정 효과를 내고 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 수준까지 높아졌을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상승률은 2.6%로 최고가격제가 물가 상승폭을 1.2%포인트 낮춘 셈이다.

또 휘발유 공급 가격은 리터당 2200원, 경유는 2500원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전국 휘발유 및 경유 가격은 2천 원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정책 효과가 커질수록 오히려 정상화 전략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제 원유 도입 가격은 계속 변동하는데 판매 가격만 인위적으로 억누를 경우 비용 부담은 결국 재정이나 업계 손실 형태로 누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가 반영 시차와 정유사 손실 보전 등을 고려해 2주 단위로 최고가격을 재설정하고 있다. 다만 잇따른 동결 조치로 재정 부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손실 보전을 위해 4조2천억 원 규모의 예비비를 추가경정예산(추경)에 편성한 상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주유소 공급가격 산정 기준이되는 싱가포르 국제석유제품가격(MOPS)을 적용할 경우 최고가격제 시행 2달 동안 누적 손실 규모가 이미 3조 원을 넘겼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와 업계 사이 손실 보전 기준에 관한 시각차도 크다. 정부는 생산 원가 기반 보전을 원칙으로 제시했지만 정유업계는 MOPS 등 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보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원유를 정제하면 휘발유·경유·등유 등이 동시에 생산되는 ‘연산품’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어 특정 제품 원가를 분리해 산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기업들이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만큼 원가 산정 역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5월 중 법률·회계·정유 전문가로 구성된 정산위원회를 출범해 정유사와 본격적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석유 최고가격 3연속 동결 커지는 부담, 물가는 잡았지만 난감해지는 '출구전략'

▲ 7일 서울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가 주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별도로 시장에서는 가격 통제 장기화에 따른 왜곡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실제 에너지 비용 상승 신호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면서 소비 절감 유인이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억눌린 가격이 제도 종료 시점에 한꺼번에 반영될 경우 소비자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2022년 파키스탄에서는 3개월 동안의 석유 가격을 동결 조치를 종료한 직후 휘발유 가격이 66% 급등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종료 기준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정상화와 국제유가 안정성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국제유가가 어느 수준에서 안정돼야 하는지, 얼마나 안정세가 지속돼야 하는지 등에 관한 구체적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최고가격제를 일시에 종료하기보다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식의 ‘연착륙 전략’을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억제하고 있는 가격 인상분을 단계적으로 반영하거나 휘발유·경유·등유를 구분해 유종별로 차등 정상화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정부도 그동안 경유와 등유는 민생 안정, 휘발유는 물가 관리 측면에서 접근해왔다. 특히 시장 가격과의 괴리가 큰 경유의 경우 일시에 가격 통제를 해제하면 물류비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어 단계적 정상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가격 통제를 유지하기보다 화물차 운전자와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 지원 방식으로 정책 중심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격 기능은 정상화하되 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편이 재정 부담과 시장 왜곡을 줄이는 데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가격제가 단기적으로는 유가 충격을 흡수하며 물가 상승세를 완화하는 효과를 냈지만 정책이 장기화할수록 시장 기능 왜곡과 재정 부담 등 부작용 역시 깊어지는 양상이다. 국제유가 안정 등 대외 여건 변화에 맞춰 즉시 적용할 수 있는 단계별 정상화 시나리오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