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노란봉투법 시행령 국회 토론회, '창구단일화' 문제에 노동·재계·학계 의견 제각각

▲ 국회노동포럼이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노란봉투법 후속조치 입법예고안(노조법 시행령) 의견청취 전문가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2·3조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을 두고 노동계와 재계가 동시에 비판적 견해를 내놨다. 노동계는 '원·하청 교섭 구조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지적했고, 경영계는 '교섭단위 분리 결정 기준의 모호성'을 문제로 삼았다. 학계와 법조계에선 근본적 보완입법을 주문했다. 

국회노동포럼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란봉투법 후속조치 입법예고안(노조법 시행령) 의견청취 전문가 심포지엄'을 열고 3월10일부터 시행될 2·3조 게장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를 둘러싼 노동계·재계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지난 8월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원청의 사용자 책임 범위를 넓히고 노사 분쟁 과정에서 과도한 민사 책임을 제한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다만 쟁점이 됐던 '교섭창구 단일화' 관련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11월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법의 후속 조치로 교섭창구 단일화를 원칙으로 하되 하청노조가 원청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를 원하지 않을 경우 별도 교섭단위 분리를 폭넓게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원청노조와 하청노조를 서로 다른 교섭단위로 분리하고 하청노조 간에도 직무와 이해관계, 노조 특성에 따라 교섭단위를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노동위원회가 특정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원청에 사용자로서의 교섭 의무를 부여하고 정당한 사유 없는 교섭 거부에는 부당노동행위 제재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는 교섭창구 단일화에서 노동계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노동계의 비판이 오히려 컸다.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노조법 시행령 입법예고안은 원하청 교섭에서도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적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청별 직무와 이해관계, 노조 특성 등에 따라 교섭단위를 하청 간에도 분리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과 교섭하기 위해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성덕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은 "개정된 시행령대로 한다면 하청노조는 원청과 교섭하기 위해 교섭요구, 교섭단위 분리 신청, 분리 결정 이후 다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최소 두 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기존 교섭대표노조와의 교섭마저 지연되거나 거부될 수 있어 시행령이 오히려 원청 교섭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시행령이 교섭창구 단일화의 한계를 보완하기는커녕 원·하청 교섭에서 단일화를 전제로 한 뒤 예외적으로 분리를 허용하는 구조를 고착화해 교섭 절차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경영계는 시행령안의 교섭단위 분리 결정 기준의 불확실성을 문제 삼았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시행령 개정안의 교섭단위 분리 결정기준은 기존의 노조법에 규정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등을 구체화하는 수준을 넘어서 노사관계 왜곡 가능성, 당사자의 의사까지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고 짚었다.

학계는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행령 보완을 넘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자체를 아예 재설계하는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을 내놨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노조법 제2조 제2호 후단 신설의 취지를 살리려면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폐지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최소한 실질 지배적 사용자와의 교섭에는 교섭창구단일화가 적용되지 않도록 법률 차원의 특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으로 원청과의 교섭 길을 열어놓고도 시행령을 통해 교섭창구단일화로 다시 묶어버리면 사실상 교섭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준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도 "총칙인 사용자 개념만 바꾸고 각칙은 그대로 둔 것은 입법의 정합성을 해치는 것"이라며 "현행 시행령 개정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고 노조법 전반에 대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으로 사용자를 넓게 정의해 놓고도 실제 교섭·쟁의 규칙을 손대지 않아 현장에서 누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노란봉투법을 대표발의했던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시행령이 교섭창구 단일화를 명시하고 있는 것을 두고 "법 개정 이전에도 현대제철, 한화오션, CJ대한통운 사건 등에서 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가 하청노조의 원청 상대 교섭권을 인정해왔다"며 "구법 하에서도 긴 투쟁과 법적 다툼을 통해 어렵게 획득한 교섭권이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만든 신법 시행 이후 오히려 제약받으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