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철 기자 esdolsoi@businesspost.co.kr2017-01-30 1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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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일호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취임 이래 노동, 교육, 공공, 금융 등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빚어진 국정혼란기에 경제팀의 수장으로서 경제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의 외아들로 1955년 3월3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 초빙교수,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조세연구원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등을 지냈다.
새누리당에서 정책통으로 인정받아 당 대변인과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등 주요 당직을 거쳤다.
총선에서 아버지 지역구인 경기도 평택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조세 전문가 입성을 원한 한나라당이 송파을에 전략공천해 당선됐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새누리당 원내 부대표, 대변인, 정책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분야 중에서 조세와 재정분야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함께 일했다.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열세지역으로 분류됐던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아 승리에 힘을 보탰다. 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에 기용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장관을 거쳐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맡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내정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 사실상 무산되면서 경제팀 수장을 유지하고 있다.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 유연한 리더십을 지녔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박근혜의 측근으로 활약하는 대표적 '2세 정치인들' 가운데 하나다.
박근혜 게이트로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전망됐지만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경제팀 수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고집이 세거나 의견이 강하지 않은 만큼 혼란한 상황에서 경제팀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재선 의원(새누리당·서울 송파을)으로 여당에서도 대표적 경제전문가로 꼽힌다. 경제분야 중에서 조세와 재정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비교적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에 합리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조세연구원장 시절 2년 연속 경영평가 1위를 차지하는 등 조직관리 능력과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2012년 총선 당시 강남 3구 국회의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재공천을 받았을 만큼 당내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등과 함께 복지공약 등 민생정책을 만드는데 핵심브레인 역할을 수행했다.
KDI 대학원 교수 시절 '공공임대주택제도의 개선방향연구'라는 주제의 연구보고서를 쓰기도 했다.
대표적 민영화론자로 친기업적 발언을 주도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관해서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회에서 보건복지위나 기획재정위, 정무위에서 활동해 건설이나 교통분야의 정책을 놓고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 정책과 관련해 저술한 논문은 1991년 '2000년까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재원조달 전망', 2002년 '재정건전성 제약하의 SOC 투자' 등 단 2건이다.
비록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는 않았지만 추경 편성과 재정 조기집행 등으로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는 사태를 막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7년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냈다.
1989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1996년 한국조세연구원 부원장, 1997년 한국계량경제학회 평의원, 1998년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1999년 한국금융학회 이사, 2000년 한국경제학회 이사 등을 거쳤다.
200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2006년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5년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2016년 1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 학력
경복초등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 가족관계
아버지는 6, 9, 10, 11, 12대 국회의원(경기도 평택), 민주한국당 총재, 12대 대통령 후보를 역임한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다.
유치송 전 총재는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하야권고 건의를 검토했던 야당 6인 가운데 하나였으나 1994년 박 전 대통령 서거 15주년 추모위원회 고문에 이름을 올리는 등 ‘박정희 재평가’ 작업에 동참하기도 했다.
부인 함경호씨와 사이에 1남을 두고 있다.
◆ 상훈
2013년 NGO 모니터단 선정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2013년 법률소비자연맹 대한민국 헌정대상을 받았다.
저서로 2012년 '강한 복지를 꿈꾼다', 2011년 '국회의원 유일호의 경제 이야기 정치 이야기', 2002년 '재정건전성 제약하의 SOC 투자' 등이 있다.
◆ 상훈
2013년 NGO 모니터단 선정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2013년 법률소비자연맹 대한민국 헌정대상을 받았다.
저서로 2012년 '강한 복지를 꿈꾼다', 2011년 '국회의원 유일호의 경제 이야기 정치 이야기', 2002년 '재정건전성 제약하의 SOC 투자' 등이 있다.
어록
“우리 경제의 성장과 발전은 불확실성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우리 경제는 충분한 대외건전성과 재정여력 등 위기를 극복할 힘을 갖추고 있다.” (2017/01/25, 재정경제금융관 회의에서)
“중국정부가 공식적으로 사드와 연관이 있다고 확인해주지 않은 만큼 사드배치와 중국의 무역조치가 연관됐다고 지레짐작할 수 없다. 중국정부가 경제와 무관한 것 때문에 무역조치를 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나오면 따질 수 있지만 현재로선 그런 연결고리가 없다.” (2017/01/19,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 겸 경제현안점검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탄핵정국 등 불확실한 정국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최근 한국에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있지만 한국경제는 이를 헤쳐나갈 능력이 있다. 탄핵소추 등 불확실한 정국에 대처하기 위해 정책적인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정치적 파장은 최소한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을 것이고 그래야 한다.” (2017/01/12, 뉴욕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해외투자자 170여 명을 상대로 한 한국경제설명회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미국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 보호무역주의의 확대, 소비 및 건설 위축에 따른 내수 악화,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과 경기위축 등에 불안정성이 높은 한 해가 될 것이다.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확실한 올해다.”(2017/01/03, 2017년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마부작침의 자세로 신발끈을 동여매자. 다시 한 번 우리 역량을 하나로 묶어 나아가면 2017년이 새로운 대한민국 경제의 밝은 모습을 확인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2016/12/30, 신년사에서)
“생산성과 포용성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4대 분야 구조개혁과 일자리 확보가 중요하다.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구조개혁이 필요하다.”(2016/06/02,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각료이사회에서)
“삶의 경험을 통해 한국 경제의 저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직면하고 있는 경제상황이 만만치 않지만 국민 모두의 지혜와 힘을 모은다면 지금 눈앞의 어려움은 훗날 우리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기억될 것이다.”(2016/01/11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표결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의 국가관이 의심스럽다. 민주주의의 본질인 다수결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2015/02/12,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갈등을 빚은 상황에서)
“무상복지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전면 무상은 재정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지만, 지금은 복지가 정말 필요한 분들한테 가는 방향으로 복지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2015/02/04, KBS1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서)
“당내에서도 대부분 소통의 문제를 인정한다”면서도 “길거리에서 비판하는 세력들은 과연 깨끗한 세력들이냐. 당시 (촛불집회) 나온 얘기들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분명 허위보도에 의한 것 아니냐.” (2009/06/18,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의 사회분야 정책기조 토론회에서 정부와 여당 사이에 소통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솔직히 전철련은 사기꾼 집단이다. 그 사람들은 죽음을 갖고도 장사해먹을 사람들이다.”(2009/06/18,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의 사회분야 정책기조 토론회에서)
"법인세 인하를 1년 연기한다고 하는데 법인세 인하가 마치 기업 소유주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다." (2008/08/25, 한나라당내에서 법인세 논란에 대해)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가 대통령이 되니까 기업들이 일부러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면해줬는데 왜 투자를 안 하냐는 건 노 전 대통령과 똑같은 발상이다." (2008/08/25, 기업인 사면을 계기로 한나라당 내에서 기업들에게 투자를 압박하자)
“공급확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의 유일한 방법이다.”(2008/04/25,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전문성을 가진 경제인 출신이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2008년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하면서)
◆ 평가
박근혜의 측근으로 활약하는 대표적 '2세 정치인들' 가운데 하나다.
박근혜 게이트로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전망됐지만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경제팀 수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고집이 세거나 의견이 강하지 않은 만큼 혼란한 상황에서 경제팀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재선 의원(새누리당·서울 송파을)으로 여당에서도 대표적 경제전문가로 꼽힌다. 경제분야 중에서 조세와 재정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비교적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에 합리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조세연구원장 시절 2년 연속 경영평가 1위를 차지하는 등 조직관리 능력과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2012년 총선 당시 강남 3구 국회의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재공천을 받았을 만큼 당내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등과 함께 복지공약 등 민생정책을 만드는데 핵심브레인 역할을 수행했다.
KDI 대학원 교수 시절 '공공임대주택제도의 개선방향연구'라는 주제의 연구보고서를 쓰기도 했다.
대표적 민영화론자로 친기업적 발언을 주도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관해서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회에서 보건복지위나 기획재정위, 정무위에서 활동해 건설이나 교통분야의 정책을 놓고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 정책과 관련해 저술한 논문은 1991년 '2000년까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재원조달 전망', 2002년 '재정건전성 제약하의 SOC 투자' 등 단 2건이다.
비록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는 않았지만 추경 편성과 재정 조기집행 등으로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는 사태를 막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 기타
그의 부친 유치송씨는 2006년 6월 2일 타계했다. 67년 신민당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81년 5공 출범 당시 민한당 총재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12대 대선에서 겨뤘다. 이 과정에서 ‘어용 야당’ ‘민정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8년 공직자재산신고 때부터 세 점의 동양화를 재산목록으로 신고했다. 김은호의 '미인도'(시가 500만 원), 이상범의 '설촌'(시가 700만 원), 김기창의 '미인도'(시가 1천만 원) 등이다.
2015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시절 서울 중구 소재 8억1600만 원 상당의 아파트를 비롯해 경기도 일대 4억6184만 원 상당의 토지, 임차권 2억2천만 원, 예금 2억2417만 원, 동양화 3점 2200만 원, 채무 7억4813만 원 등 본인 명의로 9억9588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