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메리 바라 GM CEO가 캐딜락 리릭 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GM >
GM은 다른 미국 완성차 업체들과 달리 전기차 투자 의지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관세를 비롯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 기조에 따른 시장 위축에 ‘백기’를 든 모양새다.
4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GM은 미국 캔자스주 페어팩스 공장에서 쉐보레 볼트 전기차 제조에 투입할 인력을 12월부터 1교대로 돌리며 생산을 줄인다는 방침을 내놨다.
당초 GM은 2교대 근무를 바탕으로 주력 전기차인 볼트를 대량 생산하려 했다.
하지만 전기차 수요 축소로 노동 시간을 단축해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GM은 또한 12월 미국 테네시주 스프링힐에 위치한 공장에서 캐딜락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두 종의 생산을 일시 중단할 예정이다. 10월과 11월에도 1주일 동안 해당 공장의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연방정부가 전기차 구매자에게 최대 7500달러(약 1044만 원)를 제공하던 세액공제를 9월30일 종료해 GM이 이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GM은 신차 출시를 늦추거나 일부 모델 개발을 철회한 포드 등 경쟁사와 달리 전기차 투자를 이어가고 있었다.
GM은 전기차 강화 전략에 따라 배터리 협력사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차세대 각형 리튬망간(LMR) 배터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볼트와 캐딜락 등 생산을 줄이기로 하면서 GM마저 트럼프 정부 정책으로 전기차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이와 별도로 GM은 한국에서도 전기차 개발을 축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엠기술연구소(GMTCK)에서 진행하던 소형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를 최근 중단했다.
한국GM은 생산 차량의 90% 이상을 미국으로 수출한다.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누려왔던 ‘무관세’ 혜택이 트럼프 정부 들어 사라질 형편이라 관련 투자를 줄이는 것으로 보인다.

▲ 인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에서 4월1일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다. <연합뉴스>
바라 CEO는 월스트리트저널이 5월28일에 열었던 콘퍼런스에 참석해 “트럼프 관세는 행정부가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도록 사용하는 한 가지 도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한국GM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때문에 전기차 개발을 축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고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8월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이달 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그러나 GM이 본산인 미국에서마저 전기차 생산을 조정하려는 모습을 보면 한국GM 또한 모기업 기조에 따른다는 분석이 고개를 든다.
다만 GM과 현대차, 기아 등 미국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는 기업은 8월에 ‘반짝 호황’을 누렸다.
이는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고려한 미국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 일정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자연히 9월 이후엔 전기차 판매가 내리막을 걸을 공산이 크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미국에서 GM과 협업하는 한국 배터리 기업에까지 여파를 미칠 가능성이 있다.
두 기업 모두 GM과 전기차 합작법인을 미국에 설립하고 배터리를 공급하는데 GM이 생산을 줄이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은 유럽이나 중국 등 다른 지역과 비교해 전기차 시장 성장이 한풀 꺾였는데 완성차 기업이 생산마저 줄이면 ‘빙하기’가 올 수 있다.
대만 디지타임는 올해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집계했다. 반면 중국과 유럽은 각각 35.5%와 23.6%나 증가했다.
요컨대 그동안 전기차 의지를 보였던 GM마저 세액공제 축소와 관세 ‘이중고’ 앞에 무릎을 꿇어 미국 전기차 시장 축소는 물론 한국 배터리 협업사에도 여파가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던컨 알드레드 GM 북미 사업부 사장은 블룸버그를 통해 “세액공제 종료로 판매량이 감소하겠지만 몇 달 뒤에는 정상화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시각을 전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