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분사 논란에도 끝까지 지켜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가 최근 연달아 빅테크 고객사 수주에 성공하며 TSMC의 유일한 경쟁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인텔과 일본 라피더스가 첨단 공정 수율(완성품 비율)과 최고경영자(CEO) 교체 등 ‘내우외환’을 겪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TSMC의 유일한 경쟁사로 떠오르고 있다.
11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5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며 ‘아픈 손가락’으로 꼽혔던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오랜 침체를 극복하고 경쟁력 있는 파운드리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최근 테슬라의 ‘A16’ 반도체와 애플의 이미지센서(CIS) 수주에 성공했다. 테슬라 수주는 연간 2조7천억 원으로 추정되며 애플 수주는 3조 원 규모로 예상돼, 매년 5조7천억 원에 달하는 수익이 기대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전문가들과 증권가에서는 적자가 지속되는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려는 열망이 크며, 분사에 관심 없다”고 말하며 믿음을 나타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이번 수주로 빅테크 두 곳을 고객사로 확보하며 TSMC에 이은 2위 자리를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테슬라 A16 반도체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2나노 공정으로 생산된다.
반면 경쟁사로 주목받던 인텔과 라피더스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두 기업 모두 2나노 공정 생산을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내외부 문제가 복합적으로 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인텔은 올해 말부터 18A(2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수율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반도체 관계자는 “18A 공정 수율이 기대보다 올라오지 않고 있다”며 “2025년 말 대량 생산 계획에서 2026년 초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인텔은 18A 공정에서 외부 수주를 받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18A 기술이 인텔 내부 제품에만 사용되더라도 합리적인 투자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인텔은 차세대 14A 공정에서 빅테크 고객 유치에 실패한다면, 파운드리 사업부 자체를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증권신고서에서 “14A 공정에서 주요 외부 고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파운드리 사업을 철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2025년 4월19일 대만 르 메르디앙 타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인텔 대만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텔은 기술적 문제 외에 외부적 압박도 받고 있다.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은 “탄 CEO는 다수 중국 반도체 기업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부는 중국 인민해방군과 연계됐다”고 주장하며 그가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 파운드리의 분사를 원했지만, 탄 CEO가 이를 거부하자 ‘중국계’ 명분을 들고 그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AMD에서 근무했던 오메르 치마 박사는 인텔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인텔은 최근 몇 달 동안 파운드리 분사 계획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을 확인했다”며 “USFS(국가주도형 파운드리)는 향후 12개월 이내에 설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텔 내부 사정에 익숙한 관계자는 “탄 CEO가 선임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CEO가 다시 한번 교체된다면 현재 개발 중인 18A, 14A 공정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답답함을 내비쳤다.
일본 라피더스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아였다.
2022년 설립된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가 10조 엔(약 94조 원)을 투자하는 정부 주도 파운드리 기업이다. 라피더스는 2027년 2나노 공정 양산을 목표로 잡고 개발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레거시 공정을 운영하지 않고 바로 2나노 공정으로 돌입한 라피더스가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가질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히데키 와카바야시 일본 경제산업성 반도체·디지털 산업 전략 위원 및 구마모토 대학 교수는 “라피더스가 2027년 2나노 양산에 실패할 경우 일본의 반도체와 소재 기업들은 실적을 위해 해외로 이전할 것이며, 일본의 반도체 우위는 약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라피더스는 TSMC 2나노 기술 유출의 배후라는 의혹도 일각에서 받고 있다.
최근 대만 검찰은 TSMC의 2나노 공정 비밀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유출하려 했던 용의자를 붙잡았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의 직원이었으며, 대만 언론은 도쿄일렉트론과 라피더스의 가까운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대만 경제일보는 지난 6일 “도쿄일렉트론은 TSMC의 주요 공급업체이고 2나노 기술을 개발 중인 일본의 ‘국가 반도체 팀’ 라피더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세 명의 소식통은 사건에 연류된 기업이 일본 기업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