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CC그룹 오너일가가 상호 지분교환에 나서면서 평화로운 계열분리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KCC그룹의 평화로운 지분 교통정리는 재계의 모범사례로 평가받는다.
◆ KCC그룹 오너일가의 지분 맞교환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은 2025년 5월 정몽진 KCC 회장의 자녀인 정재림 KCC 상무에게 KCC 주식 3만5729주를, 정명선씨에게는 3만5728주를 증여했다.
정몽익 회장이 정몽진 회장 자녀에게 지분을 증여한 것은 2020년 6월 뒤 5년 만의 일이다.
이는 정몽진 KCC 회장이 2024년 11월 KCC글라스 지분 44만4170주를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의 배우자인 곽지은씨와 정제선·정한선·정연선씨 등 자녀들에게 증여한 것에 대응하는 성격으로 읽힌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정몽익 회장과 정몽진 회장 사이 지분 맞교환이 이뤄진 것은 계열분리를 목표로 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 사례는 또 있다.
KCC글라스는 올해 들어 주식 대량보유 상황보고의 대표자를 정몽진 KCC 회장에서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으로 바꿨다.
정몽익 회장이 이미 최대 주주였지만 대표보고자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계열분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자본시장법은 본인과 특별관계자 중에서 보유 주식이 가장 많은 자를 주식 대량보유 상황 보고에서 대표보고자로 지정해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표보고자의 보유 주식이 특별관계자보다 작다고 해서 반드시 대표보고자를 변경할 필요는 없다. 기업집단의 대표성 여부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도록 할 뿐이다.
KCC글라스는 2020년 12월2일자로 정몽익 회장이 단일 최대 주주였다. KCC글라스가 코리아오토글라스를 흡수합병하면서 합병 신주를 받은 정몽익 회장이 정몽진 회장을 제치고 1대 주주로 올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4년 넘게 정몽진 회장이 KCC글라스의 대표보고자 지위를 유지해왔다.
이번에 KCC글라스의 주식 대량보유 상황보고의 대표자가 바뀌면서 KCC그룹의 계열 사이 관계가 더욱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구도는 아버지 고 정상영 명예회장이 형제 사이 다툼을 막기 위해 구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 정상영 명예회장은 2016년 KCC건설 지분 전량을 막내 정몽열 KCC건설 회장에게 증여하면서 별도 경영의 틀을 마련한 바 있다.
범현대가에서 형제 사이의 경영권 분쟁인 '형제의 난'을 비롯한 다툼을 경험했던 것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녹아든 것으로 읽힌다.
KCC그룹은 2020년 1월에는 유리와 인테리어·바닥재 사업을 인적 분할해 KCC글라스를 출범했고 같은 해 10월 분할된 KCC글라스가 코리아오토글라스와 합병하면서 차남 정몽익 회장의 단독 지배력이 강화됐다.
재계에서는 '한 지붕 세 가족'으로 불리는 KCC그룹 형제 사이 지분정리에 더욱 속도가 붙으면 계열분리도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 KCC 돈독한 형제관계, LG그룹의 아름다운 이별 생각나게 해
KCC그룹의 돈독한 형제 관계는 LG그룹의 아름다운 계열분리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LG그룹은 1969년 구인회 창업회장 타계 뒤 동생 구철회 회장이 장조카 구자경을 LG그룹 회장으로 추대하고 스스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시작됐다. 그 뒤 세대교체마다 합의에 의한 분가가 진행됐다.
2003년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3형제가 전선 및 금속 부문으로 LS그룹을 출범했고, 2007년에는 LF그룹, 2021년 LX그룹의 계열 분리까지 모두 소송 없이 평화롭게 진행됐다.
계열분리 뒤에도 상호 협력이 이뤄지면서 '범LG 네트워크'가 유지돼 재계 모범사례로 꼽힌다.
물론 재계에서 이런 모범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진그룹의 경우 선대의 '형제의 난'에 이어 '남매의 난'으로 곤욕을 치뤘다.
2002년 조중훈 창업회장 타계 뒤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정호 4형제는 유산분배를 두고 갈등하면서 '유언장 조작 의혹'까지 제기되는 법정 공방을 벌였다.
2019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 뒤에는 조원태-조현아-조현민 남매가 한진칼 지분을 놓고 충돌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경영복귀 지연에 불만을 품고 2020년 사모펀드 KCGI 및 반도건설과 이른바 '3자 연합'을 결성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해임을 추진했다. 조원태 회장은 델타항공을 비롯한 우호세력을 확보해 이에 맞섰다.
결과적으로 2020년 3월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이 연임에 성공했지만 2021년 조현아 전 부사장의 '3자 연합'이 해체될 때까지 2년간 한진그룹이 경영 불확실성은 지속됐다.
KCC그룹이 LG그룹처럼 형제 사이에 아름다운 이별에 마침표를 찍을지, 아니면 한진그룹처럼 분쟁을 겪을지 재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