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초격차’를 꿈꾸는 강소 스타트업이 있다. 바이오, 헬스케어, 모빌리티, 반도체, AI, 로봇까지 시대와 미래를 바꿀 혁신을 재정의하며, 누구도 쉽게 따라오지 못할 ‘딥테크’ 혁신을 만든다. 창간 12년, 기업의 전략과 CEO의 의사결정을 심층 취재해 온 비즈니스포스트가 서울 성수동 시대를 맞아 우리 산업의 미래를 이끌 [초격차 스타트업] 30곳을 발굴했다. 연중 기획으로 초격차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지속 가능한 기술적 혁신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한다. |
![[초격차 스타트업] 세나클 대표 위의석 클라우드 EMR 플랫폼 이끈다,"의료계 데이터 선순환 시킬 것"](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5/20250522151047_179301.jpg)
▲ 위의석 세나클 공동대표이사. <비즈니스포스트>
하지만 정작 병원 문턱을 넘으면 시간은 멈춘다.
병의원도 디지털화되고, PC로 의사의 처방이 나오지만 정작 약국에 들고 가는 것은 종이로 받은 처방전이다. 실손보험도 대부분 서류를 직접 종이로 받아 보험회사에 청구해야 한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국내 1세대 개발자로 불리는 위의석 세나클 대표가 이 멈춰 선 의료의 시계를 다시 돌리려 하고 있다.
“이제는 흐름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위 대표는 인터뷰 내내 ‘흐름’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데이터의 흐름, 정보의 흐름,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흐름. 세나클이 꿈꾸는 의료의 미래는 연결이었다. “이게 왜 안 되지?” 그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이다. 의료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이고, 환자 동의 없이는 어떤 것도 흘러갈 수 없다. 이는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합당한 일이다. 하지만 그 장벽이 너무 높아져, 정작 환자 본인조차도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손에 쥐기 어렵다.
“환자가 진료기록을 떼려면 직접 병원에 가야 하고, 또한 업무시간 안에만 가능합니다. 그 서류를 들고 다른 병원에 다시 제출해야 진료가 이어집니다. 이게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그는 단호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날카롭게 국내 의료 IT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를 짚었다.
“처음 사업을 고민할 때는 의료계가 보수적이라서 안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시장에 들어와 보니,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요. 기존 전자의무기록(EMR) 업체들, 특히 시장을 선점한 회사들이 기술에 재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게 본질적인 문제였습니다.”
그의 말은 조심스럽지만 평가만큼은 냉정했다. 기존 업체들이 자리를 지키며 시장을 독점한 탓에 혁신은 멈췄고 환자와 병원이 불편을 떠안았다는 지적이다.
“EMR은 한 단계 발전이 필요하고 가능했지만 공급자 기술의 낙후, 시장 선도 기업의 태만, 과거 규제 등의 이유로 더딘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클라우드는 모든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기본 인프라이지만 의료계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죠.”
그가 걸어온 길은 의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개발자로서는 전설 같은 커리어를 쌓아왔다. 서강대 전산학과, KAIST 석사, 새롬기술 공동창업, 국내 첫 민간 인터넷 기업 아이네트를 통해 1세대 개발자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물론 창업 실패도 겪었지만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네이버 검색광고 시스템 내재화, 그리고 SK텔레콤의 T전화 개발까지 굵직한 성과물을 연이어 만들어냈다.
기업으로 돌아갔을 때 그는 다시는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2018년 세나클을 창업해 다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어요. 지병을 확인하려고 병원 자료를 떼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가족관계증명서 들고 다니고, CD로 자료 주고…. ‘왜 이게 안 될까’ 싶었어요. 그게 출발이 됐죠. 이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기하려던 순간도 있었지만, 아이템이 너무 좋았어요.”
세나클은 처음부터 모든 병원, 모든 과목을 노리지 않았고 내과에 집중했다. 그의 초반 내과 중심의 전략은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건강 걱정하는 사람들, 특히 가족 걱정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과부터 갑니다. 또 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자료를 제출할 때 쓰는 EMR 기능도 상당한데, 그걸 감당하려면 무작정 넓게 가는 건 무리였죠.”
그는 현재 의료 데이터를 ‘흐르지 못하는 데이터’라고 표현한다.
“데이터는 흐르면 발전합니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 사람들이 쓰고 거기서 나오는 데이터를 모아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그게 선순환이죠. 그런데 의료는 지금, 그 순환이 안 되고 있어요.”
단편적인 예로 실손보험 청구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요즘 병원 앱에서 보험 서류를 요청하면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전제가 있어요. 병원 PC가 켜져 있어야 해요. EMR 데이터가 PC 안에만 있기 때문이죠. PC가 꺼지면 전송도 안 됩니다.”
이런 구조는 비효율의 극치라고 강조했다. “한 개인병원 원장님은 예전 EMR 쓰던 시절, 퇴근할 때도 병원 PC를 꺼놓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초격차 스타트업] 세나클 대표 위의석 클라우드 EMR 플랫폼 이끈다,"의료계 데이터 선순환 시킬 것"](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5/20250522151100_172486.jpg)
▲ 위의석 세나클 공동대표이사. <비즈니스포스트>
“아직은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세나클은 EMR에 AI를 접목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기술적으로 검토해왔습니다. 특히 ‘차팅’ 과정의 효율성 향상과 실수 방지, 차팅 방식 자체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UX 혁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니라, 진료라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AI가 녹아들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사의 클라우드 기반 전자의무기록(EMR) 솔루션 ‘오름차트’의 진료기록 검색 기능을 전면 개편했다. 의료진의 검색 효율성과 사용자 경험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설계했다.
“곧 실제 데이터를 활용한 합법적인 검증에 착수할 예정이며, 가입 원장님들께 저희 방향성과 협력 요청도 드릴 계획입니다. EMR이 진료의 필수 도구가 된 만큼, AI가 이를 어떻게 ‘더 나은 도구’로 만들어줄 수 있을지 직접 증명해보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이 의사들에게도 통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피드백이 뭐냐는 질문에 위 대표는 “저희 직원에게 한 원장님이 카카오톡으로 '개원하면서 첫 차트로 오름차트를 사용하는 의사들은 잘 모를 것이지만, 수년간 기존 차트를 사용하다가 오름차트로 옮겨온 나는 절대로 과거로 못 돌아간다. 그러니 이 서비스가 오래도록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메세지를 받아 전달 받은 적이 있다. 이 메시지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서 오래도록 잊지 못 할 것 같다.”
세나클은 시장점유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1등이 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중요한 건 대한민국 국민 몇 명이 우리 EMR 안에 들어와 있는가입니다. 물론 의료법상 개인을 식별하진 않지만, 총 숫자는 알 수 있거든요. 그게 지표입니다.”
이는 그가 IT 전문가로서 국내 헬스케어 업계에서 맡고자 하는 역할과 상통한다.
“헬스케어 생태계에 정보가 흐르게 하고 정보의 흐름의 한 축에 환자가 있게 하는 역할을 맡고 싶어요. 정보 소비자의 역할 뿐만 아니라 정보 생산자의 역할까지요. 그리고 생태계 절차를 구성하는 단계를 디지털화하면서 그 절차에서 환자가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석 대표는 올해 61세다. 하지만 개발자이자 창업자로서 그의 시계는 멈춰 있지 않다.
그에게 “10년 뒷면 70세가 넘는데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냐”고 묻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전히 기술 기반 사업을 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그때는 자본에서 좀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 하고 있을 것같습니다.”
그는 나이든 개발자 이야기를 꺼내며 사회적 기업을 말했다.
“IT는 계속 바뀌잖아요. 나이든 개발자들은 새로운 툴엔 약하지만, 기존 기술은 여전히 갖고 있어요. 그런 분들과 함께 소상공인을 위한 소프트웨어 같은 실용적인 것들을 만들고 싶어요.”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