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이해진·김범수·김택진의 마지막 숙제 '아름다운 Exit'

▲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의 경영권 승계와 상속 구도가 주목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공동대표는 각각 IT(게임 포함)분야 벤처기업을 창업했고,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사업에만 집중해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각 조 단위 개인 재산도 쌓았다. 미국 포브스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이 의장 재산은 12억 달러(4월22일 환율로 환산하면 1조7천억 원), 김 센터장은 32억 달러, 김 대표는 11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갖고 있는 회사 지분 가치만 따진 것이고, 현금·부동산·유가증권 가치는 빠졌다.

이 의장은 네이버 지분 3.7% 갖고 있다. 김 센터장은 카카오 지분 23.71%와 카카오게임즈 지분 0.91%를,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 지분 11.97%를 보유 중이다.

최근 다시 현장기자로 나섰다고 알리고 업계 관심사에 대한 얘기 좀 들을 겸 `IT 업계 선수' 몇과 자리를 가졌다. 특히 언론에서 좀 다뤄주기를 기대하며 가슴에 품고 있는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득템'한 게 이해진·김범수·김택진의 경영권 승계와 상속 그림이다.

이들이 경영권을 누구에게 승계하고, 조 단위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를 궁금해하며, 이와 관련해  뭔가 새로운 역사를 남기는 것으로 이들의 벤처기업 창업 성공 신화의 마지막이 장식됐으면 하는 바램들이 쏟아졌다. 강요할 수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며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종합하면, 셋 모두 대한민국의 IT분야에서 최고로 성공한 벤처기업 창업자로 꼽히는데 손색이 없다. `벤처 신화'로 칭송되기도 한다. 이 분야에선 이들에 견줄만큼 성공한 선배 벤처기업 창업가들을 찾기 힘들어, 이들이 `1세대'로 분류된다.

셋 모두 IT분야 벤처기업 창업을 꿈꾸는 대한민국 젊은이(대학생이나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우상(성공 모델)이다. 이른바 `이해진 키즈', `김범수 키즈', `김택진 키즈'를 자처하는 후배 벤처기업 창업자들이 줄을 섰다. 그만큼 이들이 IT분야 벤처기업 창업 생태계를 확장한 공이 크다.

남중수 전 KT 사장이 퇴임 뒤 서울대 석좌교수로 있을 때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며 장래 진로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열에 아홉 꼴로 김정주 넥슨 창업자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자처럼 게임 벤처기업을 창업해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며, 서슴없이 `김정주 키즈' 내지 `김택진 키즈'라고 말하는 모습에 놀랐다는 경험담도 소환됐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 이들 모두 환갑을 한두해 앞둔 나이가 됐다. 이 의장은 1967년 생으로, 58살이다. 김 센터장은 1966년생(59살), 김 대표는 1967년생(58살)이다. 셋 모두 자녀들이 모두 장성해, 김 센터장 자녀 등 일부는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게 알려지기도 했다. 

당연히 본인들도 사람들을 만날 때 건강에 대한 안부를 먼저 챙기고, 승계 관련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한 IT업체 임원은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 건강이 나빠지거나 체력이 떨어질 때 등에 대비해 회사 경영권을 누구에게 어떻게 넘겨줄 것인지, 많게는 수 조 원대에 이르는 재산을 어떻게 쓰고, 남은 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Exit'(퇴장) 그림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라며 "투자자들과 정부 정책 담당자들에게 회사 경영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도 승계 원칙과 지향점을 정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혀야 할 때가 된 것 아니냐"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속 시원히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가장 공들여야 할 숙제가 주어진 꼴이다. 이들 셋 쪽에서 보면, 회사를 창업하고 성공시키는 과정 만큼이나 어려운 숙제일 수도 있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이해진·김범수·김택진의 마지막 숙제 '아름다운 Exit'

▲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업계 선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개인적으로는 유종의 미를 남기고, 국내 벤처기업 역사에도 큰 족적을 남기는 감동스러운 모습이어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이들의 성공 경험이 본인의 명성으로 남는 것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벤처기업 생태계 확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되게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아름답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모습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문까지 나왔다.

이들도 그동안 동일인 지정, 승계, 상속 등과 관련한 원칙과 지향점 등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굴뚝 재벌과 우리 벤처는 다르다. 굴뚝 재벌의 잣대로 벤처를 옥죄거나 판단하면 안된다"고 강조해왔다. 굴뚝 재벌에서 승계와 상속이 이뤄질 때마다 불법·편법 승계, `왕자의 난', `남매의 난' 등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고, 기부 등으로 재산의 사회 환원을 약속하는 등 나름 다른 행보를 보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 의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네이버가 내 것이라고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해왔다.

이미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공식 전담팀' 등을 꾸려 밑그림 작업을 벌이고,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엔씨소프트의 구조조정, 카카오의 계열사 매각 및 투자자 지분 정리 소문,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갑작스러운 이사회 의장 복귀 행보 등에 승계와 연결짓는 분석과 뒷얘기가 따라붙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의장은 올 초 이사회 의장으로 전격 복귀했다. 2010년대 중반께 회사 규모(시가총액)가 커져 대규모기업집단에 포함될 당시 동일인 지정을 거부하며 회사 지분을 4% 이하로 낮추고, 등기이사에서 물러나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맡아 홀가분하게 떠났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당시 그가 도망치듯 회사를 떠난 배경에는, 뉴스 편집과 댓글 등 본업과 상관 없는 문제로 정치권과 언론의 공격을 받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는 상황도 들어있다.
 
이 의장은 2000년 초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며 10년 뒤와 20년 뒤 자신의 거취를 그려본 적이 있는데, 2010년대 중반 회사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뒤로 물러나 소리소문 없이 돕겠다고 했다. 8년 전 경영에서 물러날 때도 "스트라이커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나는 라이트 윙을 맡겠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지난 달 건강 악화를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룹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 구실을 해온 CA협의체 공동의장 직도 사임했다. 수술과 회복을 이유로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혐의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고 있다.

그의 퇴진 이후 카카오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모빌리티 등 주요 계열사 매각 소문이 잇따라 도는 등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김 센터장도 2000년 초반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며 `엔터테인먼트 포털'을 꿈꾸고 있다고 했는데,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카카오모빌리티가 이 그림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최근 상황은 그에 맞지 않다.

김 센터장은 그동안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아직 기부 등 재산 사회 환원 실적은 이 약속에 크게 못미친다.

김 대표는 사모펀드 업계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로 통하는 박병무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 대표를 공동대표로 영입해 경영을 맡기고, 게임 개발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중책을 맡던 부인 윤송이 사장과 동생 김택헌 부사장도 모두 회사에서 내보냈다. 최근 윤송이 사장이 엔씨소프트재단 이사장에서도 물러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업계에선 최근 들어 갑자기 경영 보폭을 키운 이들의 행보를 두고, 자의 여부에 상관없이 할 일을 해야 할 상황을 만났다는 분석이 많다.

셋의 창업과 성공 과정을 지켜봐온 한 IT업체 임원은 "네이버는 검색 기술 한우물을 고집해 2000년대 초반 IT 버블이 꺼지는 상황을 잘 헤치고 성장 기반을 마련했던 것처럼 지금은 인공지능 기반의 신성장동력 모델을 찾지 못하면 후발 업체들에 추월당하며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고, 엔씨소프트 역시 그동안 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군살을 도려내고 새로운 지향점을 찾아 운동화 끈을 조여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며 "김 센터장은 건강 문제가 전환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다른 관계자는 "이제 다들 나이가 있고, 건강 문제도 불거졌으니, 경영권 승계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측면도 있다"며 "이제는 새로운 지향점을 찾고, 신성장동력을 마련하고 미래를 위한 구조조정을 나서는 것까지도, 경영권 승계 그림과 밑작업까지 염두에 두고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회사 쪽은 이러한 지적에 한결같이 손사래를 친다.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란다. 지금 행보는 신성장 동력 확보, 사업·인력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합리화, 미래 비전 마련 등을 강조한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이해진·김범수·김택진의 마지막 숙제 '아름다운 Exit'

▲ 김택진 엔시소프트 공동대표. <그래픽 비지니스포스트>

때맞춰 불어닥친 `김장하 신드롬'도 이들을 향한 사회·시민의 기대감을 키운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이후, 선고문을 직접 읽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국회 인사청문회 시절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장학금을 받아 공부에 전념한 사실을 밝히고 감사 인사를 전한 것에 대해 그에게 장학금을 준 김장하 선생이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네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말한 게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를 통해 감동을 주고 있는데, 같은 잣대로 이해진·김범수·김택진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는 모습이다.

이들과 같은 공통점을 가진 IT분야 성공한 벤처기업 창업자 중에서는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겸 엔엑스씨(NXC) 전 대표가 가장 먼저 경영권 승계와 상속 그림을 남겼다. 지주사와 계열사 경영은 모두 김 창업자 생전 때처럼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졌고, 부인 유정현씨가 지주사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재산은 부인과 자녀들에게 전부 상속됐다.

회사 쪽은 "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 책임 아래 이뤄지고 있고, 유 이사장은 공개 행보를 전혀 하지 않는다. 상속 역시 편법 없이 세금도 성실히 내며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산은 내 것이 아닌 사회의 것'이란 잣대로 보면 '굴뚝 재벌과 다르다'라는 평가를 받거나 감동을 준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고 김정주 창업자 재산 상속으로 부인 재산은 27억 달러, 자녀 둘의 재산은 각각 17억 달러로 늘었다. 고 김 창업자의 유지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찬진 한글과컴퓨터(한컴) 창업자,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카카오에 흡수 합병) 창업자, 안철수 안철수연구소(안랩) 창업자 등도 한 때 나름 성공한 벤처기업 창업자 평가를 받았으나, 지분을 팔고 회사를 떠났거나 정치인으로 변신해 함께 꼽기 어렵다.

이들 다음 세대 성공한 벤처기업 창업자로는 권혁빈(1973년생) 스마일게이트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와 장병규(1974년생)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 등이 반열에 올라 있다. 물론 이들 반열에 들거나 오히려 제끼기 위해 노력하는 유니콘급(매출 1조원 이상 벤처기업)과 스타트업들도 줄 서 있다.

이해진·김범수·김택진의 벤처기업 창업 성공 신화가 수많은 키즈들을 양산하며 대한민국 벤처기업 창업 생태계를 키운 것처럼, 이제는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퇴장 원칙과 새로운 지향점 설정과 실천으로 모범을 보일 때다.

이상 업계 선수들이 마음에 품고 있다고 쏟아낸 말들을 정리했다. 당사자에게 직접 얘기할 용기도 기회도 없다며, 언론에서 화두를 던져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그동안 함께 성공 신화를 만들어온 회사 동료들의 바램이라고.

1세대 성공한 벤처기업 창업자들의 마지막 숙제,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남은 시간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