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저널] 박현주의 새로운 미래에셋, 물러나는 창업 공신과 등장하는 전문경영인들

박현주 당시 미래에셋증권 회장이 2015년 12월2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씨저널]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자서전인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해야만 하는 위치에 선 자의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영업으로 출발해서 그런지 나는 정이 많은 편에 속한다”며 “나도 한 사람의 인간인지라 ‘이런 것까지 고려하며 살아야 하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고문의 용퇴를 결정하며 박 회장이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30년이 가까운 세월을 함께한 개국공신과의 이별을 선택하면서 드는 감정은 아무리 냉정한 사람일지라도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벤 제갈량의 심정과 비견될 정도일 것이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창업 군주와 공신의 관계일지라도 사석에서만큼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면 그를 물러나게 하면서 드는 인간적인 번민과 아쉬움이 더 컸을 수밖에 없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고문의 경영일선 용퇴를 바라보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또한 “퇴임하는 창업 멤버들과의 깊은 인간적인 신뢰가 함께 했던 시절을 간직하고 그들의 그룹에 대한 헌신에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는 말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최현만 실적 부진에 칼 꺼내든 박현주

2023년 10월, 최 고문이 미래에셋증권 회장에 오른 지 2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금융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는 최 고문이 박 회장의 대표적인 오른팔이자 미래에셋의 창업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박 회장 또한 미래에셋의 단 둘뿐인 회장에 최 고문의 이름을 올릴 정도로 두터운 신뢰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 고문의 회장 취임 또한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전문경영인이 회장을 맡게 된 것은 최 고문이 처음이다. 

박 회장은 2021년 12월6일 미래에셋증권 수석부회장을 지내던 최 고문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당시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며 박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이면 족하다는 최 고문을 박 회장이 직접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박 회장은 “많은 후배가 나도 회장이 될 수 있겠다는 꿈을 꾸기 바란다”며 “비전이 조직이 성장시킨다. 제2의 최현만이 더 많이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 고문은 회장 취임 이래 그룹 주력 회사인 미래에셋증권의 경영을 총괄했다. 박 회장은 경영 전반에서 벗어나 해외시장 진출, 인수·합병(M&A) 등 그룹 차원의 전략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았다.

미래에셋그룹에서 최 고문의 위상은 회장 취임 이전에도 높았다. 최 고문은 ‘박현주 사단’의 핵심 멤버로 박 회장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샐러리맨 신화의 끝판왕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다만 개인적인 인연에 더해 기업 및 업계 내의 위상 또한 막강하던 최 고문의 용퇴는 박 회장 개인적인 번민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전략적인 결정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미래에셋증권은 2021년 1조4855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뒤 2년 연속 영업이익 감소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2022년 8356억 원, 2023년 5210억 원이었다.

박현주 곁을 떠난 창업 공신들

박 회장이 1997년 미래창업투자를 설립했을 때 그의 곁에는 8명의 '동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고문을 포함해 구재상 케이클라비스 대표이사 회장, 최경주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강길환 미래에셋증권 사장, 선경래 전 지앤지인베스트 대표, 송상종 전 피데스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 이병익 전 오크우드투자자문 대표이사 사장 등이다.

선 대표, 송 사장, 이 사장 등은 2000년대 초반 독립하며 홀로서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초창기 박현주 사단 가운데 미래에셋그룹에 남은 것은 최현만 고문, 구재상 회장, 최경주 고문, 강길환 사장 정도다. 이 가운데 지금도 미래에셋그룹 경영일선에 남아있는 사람은 1965년생으로 박현주 회장보다 7살이나 어린 강길환 사장뿐이다.

8명 가운데서도 핵심은 박 회장과 도원결의를 맺은 것으로 알려진 구 회장과 최 고문이다. 구 회장과 최 고문은 각각 초한지에 등장하는 인물인 한신, 소하로 비견되는 행보를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구재상 회장은 2012년 돌연 미래에셋그룹의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내던지고 야인이 됐다. 

구재상 회장은 당시만 해도 미래에셋의 핵심이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을 맡아 전적으로 사업을 책임졌다.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펀드를 포함해 미래에셋의 이름을 알린 유명 펀드들이 모두 구재상의 손에서 나왔다.

구 회장이 야인의 길을 선택한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투자를 놓고 박 회장과 의견 충돌을 빚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구 회장을 사냥이 끝나자 삶아 먹히는 운명에 놓인 개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을 떠나겠다는 구 회장을 잡기 위해 몇 개월에 걸쳐 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 회장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이후 구 회장은 투자자문사인 케이클라비스를 창업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현재 구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을 맡은 케이클라비스는 직원이 서른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2023년 기준으로 100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는 회사로 자리 잡았다.

소하의 운명을 택했던 최현만 고문은 이후로도 미래에셋그룹에 남았다. 박 회장은 자신의 곁에 남은 최 고문에게 회장의 자리를 내줬다.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두둑한 퇴직금을 안겨주며 나름의 의리를 보이기도 했다.
 
[씨저널] 박현주의 새로운 미래에셋, 물러나는 창업 공신과 등장하는 전문경영인들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왼쪽)과 허선호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오른쪽). <미래에셋증권>

◆ 새롭게 박현주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

옛말에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고 세상사에는 새 사람이 옛사람을 대신하네’라는 말이 있다.

미래에셋그룹에서도 상징적 존재였던 최현만 고문 등 창업 공신들이 물러나자 박 회장이 선택한 새로운 전문경영인들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2023년 정기 임원인사로 미래에셋증권에서 김미섭 부회장, 허선호 부회장, 이정호 부회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는 이준용 부회장과 스와럽 모한티 인도법인 대표이사 부회장이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래에셋생명에서는 김재식 부회장이 승진했다.

이 가운데 김미섭 부회장, 이준용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 스와럽 모한티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 대표이사 부회장은 미래에셋이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해 마련한 글로벌 AMP(Advanced Management Program)에 참석했던 인물들이다.

‘글로벌 AMP’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진행되는 해외 연수로 미래에셋그룹 최고경영진에서 대상자를 선발한다.

위의 3명 외에도 최창훈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 부회장, 김응석 미래에셋벤처투자 부회장, 김영환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 토마스 박 미래에셋자산운용 미국법인 대표이사 최고경영자(CEO), 닐리쉬 수라나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 최고정보책임자(CIO) 등 5명이 프로그램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래에셋그룹이 육성한 전문경영인 1세대들의 경영 아래 미래에셋그룹은 호실적을 거두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2024년 영업이익 1조 원을 넘기며 3년 만에 ‘1조 클럽’에 복귀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24년 기준으로 영업이익 1412억 원, 순이익 4664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운용사 가운데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거둔 것이다.

현재 미래에셋 전문경영인 1세대 가운데 ‘포스트 최현만’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김미섭 부회장을 제외하면 허선호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허 부회장은 미래에셋증권의 자산관리(WM) 부문의 수익성을 개선하면서 미래에셋증권의 3년 만의 영업이익 1조 클럽 복귀를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허 부회장은 1969년생으로 조선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입사하며 커리어를 시작한 김 회장과 달리 조흥증권, 대우증권 출신으로 합병을 통해 미래에셋금융에 합류했다. 

현재 허 부회장은 김 부회장과 함께 각자대표이사 체제로 미래에셋증권을 이끌고 있다. 해외 전문가인 김 회장이 해외시장과 기업금융(IB)을 맡고 허 부회장은 소매금융(리테일), 자산관리(WM) 분야를 책임지는 식이다. 

김 부회장과 허 부회장의 각자대표이사 체제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에셋증권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2025년 2월20일 두 부회장을 최고경영자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최종 연임 여부는 2025년 3월27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임추위는 “김 부회장은 글로벌 금융투자 및 경영 전문가로서 해외 사업 확대를 주도했고 허 부회장은 안정적 수익구조 마련과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를 통해 비즈니스 혁신을 이끌었다”며 “두 부회장이 향후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