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탈원전 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전력공급을 뒷받침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탈원전 정책을 고수해온 민주당 내부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14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미세공정에 투입되는 전력량은 해마다 평균적으로 10% 이상씩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인공지능 반도체를 제조하는 데에도 기간전력망이 단단히 받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연간 전력 사용량이 2019년 9.2테라와트시(TWh)에서 2023년 연평균 7%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사업(DS부문)에서 사용한 전력사용량이 2020년 24.5테라와트시에서 해마다 평균 10%가량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반도체산업에서 전력사용량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고도의 연산작업을 위해 공정이 미세화되는 것과 관련이 깊다.
반도체 웨이퍼에 미세회로를 새기는 극자외선(EUV) 식각장비는 이전 세대 제품인 심자외선(DUV) 장비보다 10배 많은 전력을 쓰는 것이 대표적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기업들은 원활한 전력공급이 기업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되고 있다.
▲ 풍력발전과 같은 에너지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내내 안정적 전력수급의 기초가 되지는 못하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과 같은 보완적 에너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픽사베이>
정부와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첨단반도체 공장을 10여개 짓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약 10기가와트(GW) 규모의 전력공급이 필요하다고 추산하고 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전체 발전용량이 약 110기가와트인데 약 10%가량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홀로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도체 생산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적 전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이다.
풍력발전이나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간헐성으로 인해 안정적 전력공급이 어려울 수 있고 지역 편중성으로 인해 장거리 송전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반도체 산업에는 24시간 365일 가동할 수 있는 기저 전원이 꼭 필요하다.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주최한 '원자력계 조찬강연회'에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에서는 다량의 에너지가 소비되며 이에 전력확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실패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재생에너지는 에너지믹스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원이지만 재생에너지 기반의 에너지 공급시스템만으로는 안정적 전력 반도체 클러스터를 운영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런 에너지 수급 상황을 인식해 그동안 강조해왔던 탈원전 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16일 '안정적 에너지 수급을 위한 에너지 믹스 대책 간담회'을 개최한다.
민주당은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 등 발전원 별로 균형잡힌 에너지 믹스를 모색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책 방향의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간담회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직접 참석해 정부의 전력수급 기본계획 조정안에 대한 설명을 들을 것으로 예상돼 민주당의 에너지 정책 흐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간담회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등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발전원별로 전력수급상황과 발전원가를 분석해 실용적 에너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마련됐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해온 유럽연합(EU)에서는 최근 '2040년 재생에너지 목표 계획'을 두고 회원국 사이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와 스웨덴 등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나라는 원전을 탄소배출이 없는 무탄소 에너지로 간주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캠프도 지난 대선 공약에서 원자력 규제위원회(NRC)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원자력 이용 확대를 위해 기존 원전의 지속적 운영 및 선진 원자로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효율적 전력공급을 위해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 정책을 병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남효온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동이 중단된 원자로의 재가동과 소형모듈원전을 비롯한 선진 원자력 발전원에 투자해 장기적 관점에서 안정적 전력수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원자력 발전은 대규모로 안정적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