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마음] 슬픔·무기력의 시간을 통과하는 법

▲ 2024년 12월3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부근.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어느 시대의 어느 누구의 삶이든 역사 아닌 것이 없겠지만, 지금 우리는 특히 더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다.

놀람과 긴장이 있었고, 그 뒤에는 분노가 이어졌다. 분노는 우리 삶에 벌어진 일 자체에 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서로 생각이 달라도 최소한의 상식은 모두가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는 데서 나오는 감정이기도 했다.

자신이 믿고 있던 기본적인 전제가 깨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분노는 때로 무기력이 되었다. 거기에 이제는 슬픔의 시간이 더해졌다. 

감히 어떤 말을 얹을 수 있을까? 슬픔과 무기력의 시간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그렇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차피 견딜 수 밖에 없는 시간이라면, 너무 많이 파괴되지는 않아야 한다. 

하루하루가 더해지면서, 그리고 새로운 충격을 받으면서 지금 많은 이들은 심리적으로 상당히 소진되어 있을 수 있다. 마치 번아웃(burnout)과 같은 상태에 처해있을 수 있는 것이다. 번아웃은 정서적 탈진과 냉소주의, 그리고 성취감 저하라는 현상으로 대표된다. 정서적 탈진은 심리적인 여유를 잃고 피로와 부담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하며, 냉소주의는 주변 상황에 대해 무관심해지거나 연민을 잘 느끼지 못하는 태도를 말한다. 성취감 저하는 자신이 하는 일이 그다지 가치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불확실성과 비극이 함께 존재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조금씩은 번아웃과 유사한 감정을 경험하지 않기가 어렵다. 불확실성은 지속적인 긴장 상태에 우리를 놓이게 함으로써 결국은 지치게 만들며, 비극은 깊은 슬픔과 더불어 우리 삶의 취약성을 직면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건, 이러한 감정이 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일이다. 사회적 사건으로 인해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같다고 말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자신이 영향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도 모르게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아무렇지 않다고 느낄수록 자신 안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간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로 인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작업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그렇기에 먼저 어떤 식으로든 지금 나의 마음이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런 뒤에, 너무 잘 지내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최소한의 루틴을 사수하려 노력하자. 모든 루틴은 의식주에서 시작한다. 자고 일어나는 것, 식사를 규칙적으로 챙기고 집안의 환경과 위생을 관리하는 것. 거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적당한 연결과 적당한 고립을 선택하자. 현재의 상황과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가까운 이들과 대화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일은 많은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때로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전염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럴 때는 잠시 물러나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혼자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혹시라도 부채의식으로 인해 관련된 소식이나 뉴스를 의무적으로 다 소화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적당히 숨을 돌려야 더 주변과, 그리고 세상과 더 오래 연결되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자기 에너지의 한계를 반드시 고려하자.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현재의 불확실성과 비극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자. 목소리를 내는 일도 좋고 작은 금액을 기부하는 일도 좋고, 곁에 있는 이를 위로하는 작은 한 마디도 괜찮다.

스스로가 완전히 무기력한 개인은 결코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때로는 잊기 쉬운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그 어떤 행위라도 괜찮다. 

모두에게 힘든 이 시기를 부디 각자의 자리에서 잘 통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가족 및 이웃께 깊은 위로와 애도를 전합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