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정국이 마비되면서 공공기관과 공기업들도 얼어붙고 있다.

행정부의 국정 운영이 사실상 올스톱되며 정부의 손발인 공기업,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사업 동력 상실이 불가피한데다 기관장 공석도 장기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엄 쇼크, 그 후] 정책 동력 상실에 사장 인선 중단까지, 혼돈의 정국 얼어붙는 공기업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4일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소식이 전해진 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4일 계획된 외부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산하 공기업 및 공공기관에 유사시를 대비해 비상 근무체계에 돌입할 것을 지시했다.

안 장관의 지시에 따라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장들은 외부 일정을 취소하고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대표적인 공기업 가운데 하나인 한국전력공사는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의 주재 아래 경영진 비상 회의를 개최했다.

공공기관들은 평소 하던 업무체계를 가능한 유지하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고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에 따른 국정 변화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 준비태세에 들어갔다.

다만 이번 계엄령 사태에 따라 공공기관에 불어 닥칠 후폭풍은 현재 알려진 대응 수준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셀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국무회의에 참여한 책임을 묻기 위해 국무위원의 총사퇴 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굉장히 많은 의원들의 난상 토론이 있었는데 내각총사퇴와 국방장관 해임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위헌, 위법성이 명백한 비상계엄 선포의 중대성 등을 고려하면 국무위원들이 자리를 지킨다 해도 정상적 업무수행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국무위원 전원은 이날 오전 중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정부 부처 장관이 공석 혹은 공석에 준하는 상황이 되면 해당 부처 산하의 공공기관의 업무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부 부처가 머리라면 공기업, 공공기관은 손발로 비유가 될 정도로 공공기관의 업무 수행에서 주무부처의 지휘, 감독은 절대적 비중이 크다.

당장 공공기관 기관장 등 선임 절차부터 기약 없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업무가 정지되는 탄핵, 퇴진, 하야 등의 사태가 일어나면 권한 대행자가 적극적으로 인사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기 떄문이다.

한국관광공사, 한국공항공사 등 주요 공기업의 기관장 공백은 1년을 넘기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심지어 강원랜드는 이삼걸 전 강원랜드 대표이사 사장이 2023년 11월30일 사임한 만큼 기관장 공백이 이미 1년을 넘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의 통계분석에 따르면 4일 기준으로 부설 기관을 포함한 전체 339개 공공기관 가운데 기관장이 자리를 비운 곳이 53곳에 이른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2004년 진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 때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애초에 예정됐던 공기업 인사 물갈이를 미룬 바 있다.
 
[계엄 쇼크, 그 후] 정책 동력 상실에 사장 인선 중단까지, 혼돈의 정국 얼어붙는 공기업

▲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이 2005년 1월4일 이기준 신임 교육부총리 등 6개 부처와 관련한 중폭 규모의 개각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은 2004년 3월14일 기자들과 만나 ‘대행 체제에 따라 인사권이 소극적으로 행사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특이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라며 “임기가 도래한 곳은 당연히 교체를 검토하고 아울러 임기 중이라도 현저하게 문제가 되는 곳은 교체해야 하지만 대대적 물갈이 인사는 어렵지 않겠느냐”라는 입장을 내놨다.

노무현 정부에서 예정했던 공기업 인사는 탄핵이 기각된 이후에서나 제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다만 공공기관장의 인선이 대통령 권력 공백 상황 속에서도 계속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권한대행을 맡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등은 최순실 게이트의 두각이 드러나던 2016년 10월부터 탄핵이 소추된 2016년 11월을 거쳐 최종적으로 구속된 2017년 4월까지 6개월 동안 공기업 대표이사와 공공기관 기관장으로 모두 합쳐 62명을 임명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중을 살펴보면 관료 출신이 31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시기에 임명된 관료 출신 기관장으로는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이관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이양호 한국마사회 사장 등이 꼽힌다.

이 시기에 관료 출신 임명이 잦았던 것을 놓고는 탄핵 정국 혼란 속에서 정치권이 부재한 틈을 타 관피아(관료+마피아)가 대거 공공기관장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한성대 교수를 맡고 있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와 관련해 “청와대가 사실상 기능이 정지되면서 ‘정피아’(정치권 인사+마피아)가 움직일 수 없는 공백을 틈타 관피아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 따른 후폭풍은 인사 뿐만 아니라 대왕고래, 체코 원전 등 공기업에서 추진하고 있는 핵심 사업의 진행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석유공사가 진행하는 '대왕고래'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주도하는 체코 신규 원전 수출 등 주요 국정과제를 추진 중인 산업부에서는 안덕근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의 영향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 등을 집주 적으로 점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놓고는 예산안 확보를 놓고 국회의 동의가 필수적인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정국 흐름으로 사업 진행이 더욱 불투명해 진 것으로 평가된다.

대외신인도 악화가 우려되면서 점점 발행 규모를 늘려가고 있던 공기업 해외채권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최근에는 금융공기업에만 국한됐던 해외채권 발행 주체가 다른 공기업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를 보였던 만큼 그 영향도 막대할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23년 모두 합쳐 7억8천만 달러의 해외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2024년 4월 2700억 원 규모의 2년 만기 브라질헤알화 표시채권, 2024년 6월 3800억 원 규모의 2년 만기 브라질헤알화 표시채권을 냈다. 10월22일에는 3년 만기 달러화 공모채권 6800억 원의 공모채권을 발행했다.

국제금융센터에서 발표한 ‘2024년 한국계 외화채권 발행시장 전망’에 따르면 공기업이 발행 주체인 외화채권의 규모가 2023년 117억 달러로 2022년보다 23% 상승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