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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사이언스 '식물 이사회' 현실화, 국민연금 '중립'에 경영권 갈등 길어진다

장은파 기자 jep@businesspost.co.kr 2024-11-27 11: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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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가 사실상 '식물 이사회'로 구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국민연금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주요 안건과 관련해 의결권을 중립으로 행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미사이언스 '식물 이사회' 현실화, 국민연금 '중립'에 경영권 갈등 길어진다
▲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중립으로 결정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사진은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관련 이미지. (왼쪽부터)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임주현 부회장,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비즈니스포스트> 

국민연금이 앞으로도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어느쪽 편도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 상황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28일 열리는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주요 안건에 의결권을 중립으로 행사하기로 결정하면서 한미사이언스의 이사회 운영이 사실상 마비될 것이라는 시선이 힘을 얻고 있다.

중립은 ‘쉐도우 보팅’을 뜻하는 말로 나머지 주주들의 의결권에 맞춰 국민연금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말한다.

국민연금은 한미약품그룹의 첫 경영권 분쟁으로 여겨지는 올해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당시 모녀(송영숙·임주현)측 손을 들어줬다. 이번에도 모녀가 포함된 이른바 3인연합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례적으로 중립을 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터 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받았던 국민연금의 선택이 사실상 없는 셈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를 놓고 경영권 싸움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생겨나고 있다.

당장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운영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의문인 상황이다.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의 핵심 안건은 이사회 정원 확대다. 현재 3인연합측 4명, 형제측 5명 등 9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총 11명으로 확대하고 3인연합측 인물 2명을 새 등기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올라가 있다.

보유 지분을 살펴보면 3인연합이 앞서고 있다. 국민연금과 소액주주의 지지가 더해진다면 3인연합측은 이사회 정원 확대를 노릴 수 있었지만 국민연금의 중립 선택에 따라 사실상 이 안건 통과가 불가능해진 것으로 파악된다.

3분기 말 기준으로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형제(한미사이언스 임종윤 사내이사·임종훈 대표이사)측 25.6%, 3자연합측(우호지분 포함) 44.97%, 국민연금 6.04%, 소액주주 23.25%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임종훈 대표가 최근 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한미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매각했지만 주주명부가 폐쇄된 이후에 이뤄져 이번 임시 주주총회 의결권에는 영향이 없다.

이사회 정원 확대 안건은 상법상 특별결의 안건으로 참석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 및 발행주식수 과반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100% 의결권이 참석한다고 가정하면 66.7%의 동의를 얻어야한다는 뜻이다.

모든 주주의 참석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경영권 분쟁 상황을 감안할 때 소액주주들의 관심이 높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결권을 확보해야만 이 안건을 가결할 수 있다.

실제 앞서 1차 경영권 분쟁으로 여겨지던 3월 정기 주총에 참석한 의결권은 88%였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중립을 선언하면서 이사회 확대 안건을 처리하기 위한 3인연합측 시도는 좌절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국민연금이 보유한 약 6%의 지분이 찬반으로 분산될 경우 3인연합 측의 신규 이사 1명(신동국)의 진입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만약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이사회에 합류하게 된다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은 3인연합과 형제측이 5대 5인 상황으로 재편된다. 이런 상황은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사실상 마비되는 ‘식물 이사회’로 전락할 가능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사들이 독립적 의사결정을 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현재 양쪽이 첨예하게 경영권을 다투는 상황인 만큼 자신의 진영에 맞게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사회 마비 사태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3인연합 측 인물로 분류되는 사외이사 3명의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되는 만큼 서로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시도가 계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도 국민연금은 어느쪽 편도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지분싸움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한미사이언스 '식물 이사회' 현실화, 국민연금 '중립'에 경영권 갈등 길어진다
▲ 한미사이언스(사진)가 28일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교통회관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연다.

한미사이언스뿐 아니라 한미약품의 분쟁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미약품 임시 주주총회가 12월19일로 예정돼 있다.

한미약품 주총에서는 박재현 사내이사 해임과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 등 이사 2명의 해임 안건, 박준석 한미사이언스 부사장과 장영길 한미정밀화학 대표이사 등 이사 2명의 선임 안건이 올라가 있다.

사실상 형제측이 3인연합측 인물들을 모두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몰아내고 자신들 인물로 채우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민연금은 한미약품 지분 10.6%가량을 들고 있지만 해당 주총에서도 의결권을 중립으로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의 선택 포기에 따라 한미약품 역시 당분간 상당한 혼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추진해왔다.

국민연금이 발표한 2023년 수탁자책임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국민연금은 전체 3180개 안건에 대해 중립 및 기권을 한 안건은 7건으로 0.2%에 그친다.

2022년에 중립 및 기권 비중이 0.3%(11건)였던 것과 비교하면 0.1%포인트 줄었다.

이런 상황을 살펴볼 때 국민연금이 한미사이언스 의결권 행사를 중립으로 결정한 것은 사실상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누구 편도 들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사이언스에 이어 한미약품 임시 주총도 조만간 열리는 만큼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내부적으로는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은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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