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희 기자 choongbiz@businesspost.co.kr2024-11-01 15: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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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전력망이 포화단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는 가운데 지방 발전소와 수도권 수요처를 잇는 전력망 확충문제를 놓고 정부와 지역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국회에서 여야가 각각 서울과 지역 입장차이를 반영한 법안을 발의하면서 전력망과 관련한 논의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17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정치권의 말을 종합하면 경기 하남시 동서울변전소 증설문제를 놓고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경기 하남시 입장을 반영한 법안이 나오면서 한전과 하남시 사이 갈등이 여야대결로 확대되는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30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를 통해 주민이 반대하는 변전소 건립을 막을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했다.
추 의원은 변전소 500m(미터) 이내 거주 세대주 과반수의 동의를 얻는 절차와 함께 주민이 지중화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 등을 법안에 포함시켰다.
추 의원은 "전력망 구축도 중요하지만 지역주민의 삶도 중요하다"며 "주민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법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서울변전소 증설 문제를 놓고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는 하남시를 지역구로 둔 의원으로서 지역민 목소리를 반영한 법안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전력공사는 7천억 원을 들여 하남시 소재 동서울 변전소 용량을 기존 2.5GW(기가와트)에서 4.5GW로 확대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남시와 서울시의 전력수요 증가에 대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하남시 주민들은 동서울변전소 증설 문제와 관련해 △주민의견 수렴 절차 없이 증설 입지를 확정한 점 △해당 지역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존재한다는 점 △개발제한구역 지정 취지를 훼손한 점 등을 들어 증설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에 하남시는 8월 해당 증설공사에 대해 불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추 의원과 하남시의 이같은 움직임을 놓고 '님비' 현상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행보라는 시선도 나온다. 님비란 공공 이익에 부합하나 자신의 지역에 불리한 일에 반대하는 행동을 말한다.
한국전력공사 측은 8월 기자회견을 열고 "동서울변전소 사업이 좌초될 경우 연간 3천억 원 이상의 전력구입비 증가가 불가피하며 이미 국내 전력수요의 40%가 집중된 수도권 지역의 전기요금 부담과 함께 반도체 국가첨단산단과 3기 신도시 등 향후 전력 수요 증가에 대한 대응도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국민의힘에서도 점점 심각해지는 전력망 인프라 부족문제를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바라본다.
국민의힘은 국가전략망 문제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한국전력공사 대신 정부가 협상의 주체로 나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이에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을 발의해 신설, 인허가 특례, 보상확대 등의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김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수도권 대규모 전력공급 특단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속도감 있는 사업추진을 위해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개선하고 차별화된 보상지원 제도를 통해 국민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썼다.
현재 하남시를 포함해 전남 장성군, 전남 보성군, 전남 영암군, 전남 영광군, 강원 횡성군, 강원 홍천군, 충남 당진시, 경기 시흥시 등 8곳 지방자치단체가 변전소 증설과 송전선로 설치문제를 놓고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10월17일 울산광역시 중구 한국석유공사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국석유공사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같은 갈등은 지방과 수도권 사이 에너지 편중문제에서 기인한다. 2023년 기준으로 수도권은 전체 전력의 40.2%를 쓰지만 생산은 27.4%에 불과하다.
대부분 전력은 호남과 영남, 강원지역에서 생산돼 고압전력망을 통해 서울에 공급된다. 하지만 고압송전선과 변전소는 혐오시설로 여겨져 기피되며 도입을 반대하거나 지중화를 바라는 주민여론이 높아 한국전력공사가 인프라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회가 2014년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송주법)을 제정해 토지보상 뿐만 아니라 전기료 할인·지역사회 지원금(가구당 매월 1만 원 상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기피현상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 클라우드, 반도체산업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하는 과제까지 고려하면 이같은 전력생산의 지역편중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는 2030년 국내 전력수요가 2023년의 2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가 내놓은 '코리아 데이터센터 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2027년까지 데이터센터 30개가 추가 건립될 예정이며 이들 대부분은 수도권에 건립된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가 완공되는 2031년 이후에는 수도권 전력수요가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클러스터에 입주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전력수요는 최대 16GW(기가와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6GW는 원전 16기 분량이다. 이를 감당할 새로운 전력망 인프라가 2030년 이전에 갖춰져야 한다.
또 수출경제지속을 위한 RE100과 신재생 에너지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호남 및 서해안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전력망의 필요성이 커지는 만큼 관련 논의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RE100이란 2050년까지 기업의 사용전력을 풍력과 태양력, 원자력 등 탄소를 발생하지 않는 전력원으로 교체하려는 움직임이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RE100 인증을 받지 않고 생산된 외국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에서 신재생에너지 생산 잠재력이 가장 뛰어난 곳은 전남 서남부를 중심으로 한 서해안이 손꼽힌다. 수심이 얕고 풍속이 일정한 환경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결국 호남에서 만들어진 대규모 풍력전기를 수도권으로 끌고 올 대규모 전력망인프라가 필요한 셈이다.
정부가 전남 해남에서 서해안을 따라 새만금, 태안, 영흥, 서인천에 이르는 대규모 전력망인프라를 2026년까지 짓기로 한 만큼 이에 대한 보상문제도 새롭게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