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자민당과 연립 정당인 공명당이 중의원 의석 과반을 차지하는 데 실패하며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입지와 정책 추진 동력도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총선(중의원선거)에서 집권여당인 자민당이 약 15년만에 과반수 의석 획득에 실패하며 취임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이시바 시게루 신임 총리가 물러날 수도 있는 정치적 위기 상황에 놓였다.
이시바 총리는 불평등 해소와 물가 안정을 위해 저금리와 엔화 약세를 이끈 ‘아베노믹스’ 정책에서 탈피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해 왔는데 이와 상반되는 정책 기조가 나타날 공산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닛케이아시아는 28일 미즈호증권 분석을 인용해 “이시바 총리가 목표로 한 일본 통화정책 정상화 계획에 지지를 얻는 일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 정부가 이어온 저금리와 엔화 약세를 뼈대로 하는 아베노믹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앞세웠으나 총선 패배로 이런 기조를 유지할 동력을 잃어버리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2년 이후 국채 매입으로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고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이어가 엔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이를 통해 일본의 수출은 크게 늘어났으나 엔화 약세로 수입물가가 오르고 서민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시바 총리는 아베노믹스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해 금융 정책의 변화를 꾀했으나 정권을 내줄 위기에 처한 셈이다.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총리는 국회 중의원을 해산하고 곧바로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소속 정당인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국민 지지가 낮아진 데 따라 변화를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27일 진행된 선거에서 자민당 및 연립 정당인 공명당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중의원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며 일본 국민에게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
일본 총리는 의원내각제에 따라 집권당의 수장이 맡게 된다. 이시바 총리는 9월 말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됐다. 총선 결과에 따라 자민당이 과반수 의석을 잃으며 이시바 총리도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일본 중의원에서 홀로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은 없지만 이들이 연합해 새 총리 후보를 앞세운다면 투표를 거쳐 일본 총리가 교체될 수도 있다. 더구나 이시바 총리가 총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민당 내 여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스스로 사임할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고 다른 정당과 자민당의 연합으로 과반수 의석에 해당하는 세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두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정당들이 현재 자민당과 연합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10월27일 일본 도쿄에서 중의원 선거 개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
닛케이아시아는 “이시바 총리가 자리를 유지할 수도, 새 총리가 선출될 수도 있다”며 “누가 총리를 맡게 되더라도 과반을 차지한 여당이 없어 새로운 금융정책의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의 정치 상황이 새 총리 취임 직후부터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접어들며 자연히 앞으로 이뤄지는 정책 변화가 일본 및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도 주목받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저금리와 엔화 약세로 대표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통화정책인 ‘아베노믹스’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강조해 왔다.
자민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지켜냈다면 이시바 총리가 여당 지지를 받아 적극적 금리 인상과 같은 긴축 통화정책으로 물가 안정화와 엔화 강세를 추진했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가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불확실해지며 정책 전환이 불확실해진 상황이 벌어졌다.
닛케이아시아는 “일본 야당이 자민당에 맞서 연합을 추진하는 움직임은 엔화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보수 성향의 야당은 완화적 통화정책과 기존의 아베노믹스를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설사 자민당이 야당과 연합에 성공해 이시바 총리가 자리를 지키게 되더라도 그가 앞세우던 통화정책 기조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닛케이아시아는 결국 앞으로도 경기 부양 정책과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른 엔화 약세 기조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내년 1월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이후에는 추가 인상을 검토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노무라증권은 “일본 정치 상황이 불확실할 때는 서구의 기관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 다소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 증시의 상승세가 지속되지 않을 공산도 크다고 바라봤다.
정치적 상황이 불확실해지면서 그동안 상승세를 이어오던 일본 증시 역시 안갯속에 놓이게 된 상황이 벌어졌다는 분석으로 풀이된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