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마트시티 지피지기 백전불태] UN해비타트의 2022 세계 도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인 56.2%는 도시에 살고 있다. 이 수치는 2050년 68.4%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사람 세 명 중 두 명이 도시에 살게 된다는 의미다.
도시는 이제 인구가 많은 정착지로서 여러 기능이 결합된 생활공간에 그치지 않고 구성원들에게 안전, 이동성, 효율성 등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될 뿐 아니라 기후변화와 인구감소 등 다양한 문제의 솔루션으로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도 여겨진다.
이러한 도시의 가능성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IT기술과 결합한 스마트시티로 구체화된다.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스마트시티 구축이 진행되고 있고 시민들의 삶에 그 효과가 녹아들어가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최고 수준의 IT 기술력과 도시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스마트시티 산업 경쟁력을 높이 쌓아올렸다. 최근에는 민관이 힘을 모아 K스마트시티를 해외건설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수출 상품이자 한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국내외 스마트시티 현장부터 스마트시티 도입이 예상되는 수출후보지역까지 탐사하고 스마트시티 산업의 현실 경쟁력과 잠재력을 분석 취재했다.

1부 이미 펼쳐진 미래 스마트시티, 인류의 고민을 푼다
2부 한국의 스마트시티, 어디까지 와 있나
3부 도시개발도 이제는 콘텐츠, 뻗어나가는 K도시
4부 한국의 새 경쟁력이자 도약대, K스마트시티

K스마트시티 역량은 이미 선두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도시의 본질’

▲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 < flickr >

[비즈니스포스트] “나는 자연에서 구원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는 무엇보다도 도시를 사랑한다.”

역사에서 손꼽히는 거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도시를 향해 최고의 찬사를 남겼다.

미켈란젤로가 일생의 대부분을 거닐며 구원을 느꼈던 도시는 15~16세기 이탈리아의 로마와 피렌체.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가 몰려들어 인류의 거대한 전환점인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도시들이다.

인류가 보유한 문명의 최정점은 언제나 결국 도시에서 꽃핀다.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모습과 위치를 달리할 뿐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도시의 풍경은 고대의 번화한 시장, 성과 성벽에서 시작해 산업혁명 이후 밤을 밝히는 가로등과 연기를 내뿜는 공장, 철도를 거쳐 오늘날 마천루로 가득한 콘크리트 숲까지 이어졌다.

이제 기술 혁신의 중심은 정보통신 분야다.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은 도시에도 인프라가 제공하는 정보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처리할 수 있는 ‘스마트시티’로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한국도 스마트시티로의 도시 변화 흐름에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정부, 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이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이 보유한 스마트시티 역량의 현주소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K스마트시티 역량은 이미 선두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도시의 본질’

▲ 세종시 어진동 밀마루전망대에서 바라본 정부세종청사 모습. <세종=비즈니스포스트>

◆ 이제는 ‘K-스마트시티’, 한국이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

21세기 들어 한국은 국제 무대에서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단순히 경제적 성공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영향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K-팝, K-드라마, K-영화 등 ‘K’로 표현되는 한국의 국가적 브랜드 가치는 ‘K-스마트시티’로 도시개발 분야까지 확장을 시도 중이다.

정부는 앞장서 K-스마트시티 수출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싱가포르 방문 중 ‘제47회 싱가포르 렉처’ 연설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 중심부에 위치한 아세안 국가들이 안정적 성장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디지털, 교육, 기후 대응, 스마트시티, 교통 인프라분야 공적개발원조(ODA) 지원을 더욱 확대하겠다”며 스마트시티 수출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스마트시티 분야에서 세계 속 한국의 경쟁력은 분명 상위권으로 보인다. 

한국의 수도 서울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스마트시티 평가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IMD 스마트시티 인덱스’에서 2021년 이후 지속적으로 20위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이 보유한 스마트시티 역량은 연관된 주요 산업 분야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들을 보유한 데서 나온다.

도시개발의 핵심 산업 가운데 하나인 건설 분야에서는 삼성물산, 현대건설이 있다.

삼성물산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현재 세계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를, 현대건설은 대만 타이페이에 위치한 타이페이101을 짓는 등 세계 곳곳에서 주요 랜드마크를 지으며 시공능력을 입증해 보였다.

그밖에도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는 네이버, 사물인터넷 솔루션 관련해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모빌리티 분야 경쟁력을 발판으로 스마트시티 개발에도 주도적으로 나서려 하는 현대자동차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자동차를 완성차 제조기업에서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탈바꿈을 추진하면서 스마트시티를 미래 모빌리티의 청사진을 시험할 최적의 기회로 바라본다. 현대자동차는 사우디아라비아 네옴 시티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더 라인'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몽골,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대규모 도시개발을 추진하는 국가에서 한국은 배워야 할 국가로 여겨진다.

일본과 같이 스마트시티 수출을 추진하는 국가에서는 한국을 경쟁국으로 바라본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올해 6월 내놓은 ‘인프라 시스템 해외 진출을 위한 해외 스마트시티 동향에 관한 조사 연구’ 보고서에서 “한국은 중동의 건설시장에 있어서 주요한 플레이어의 하나”라며 “스마트시티 개발 사례에 참가 실적을 가지고 실제로 일본 기업과 경합 관계에 있다고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해당 보고서는 공공부문의 지원을 한국의 스마트시티 수출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로 꼽기도 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스마트시티의 해외 진출에 공공기관이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를 담당하고 있다”며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는 2017년 개정된 ‘해외건설촉진법’에 따라 2018년에 시작돼 신흥국에 스마트시티 개발 계획 책정이나 재무 및 기술 제공 지원을 실시하는 ‘K-City Network’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스마트시티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 헬스케어 및 공공정책 등 다방면에 걸친 분야에서 신흥국에 자금지원 또는 기술지원을 실시하고 있는데 최근 스마트시티 사례에 지원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스마트시티 역량은 이미 선두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도시의 본질’

▲ 소형 아파트 및 주택이 밀집된 베트남 하노이 시내의 모습. <하노이=비즈니스포스트>

◆ 도시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K-스마트시티가 넘어야 할 과제

‘K-스마트시티’는 조금씩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한국과 비슷한 풍경의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서 동탄 신도시에 빗댄 ‘몽탄(몽골과 동탄의 합성어) 신도시’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베트남에서도 박닌성 동남신도시는 한국형 도시 수출의 첫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승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스마트도시클러스터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베트남을 비롯해 한국의 신도시가 수출된 곳에서는 이미 K-주거단지, 한국형 아파트의 명성이 자자하다”며 “한국이 아파트를 수출하면서 아파트를 고급 주택으로 여기지 않았던 나라들의 인식이 바뀌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시개발 사업의 해외 진출에서 수주 성공 사례의 단순한 양적 증가를 넘어 ‘K-스마트시티’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구체화하기까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도시는 반도체, 자동차와 같은 제품이 아니며 대중음악, 영화와 같은 문화 콘텐츠도 아니다. 게다가 소모되고 사라지는 재화가 아니라 한 번 지어지면 반영구적으로 남아 사람들이 사는 터전이 된다. ‘프랑스’하면 에펠탑, 개선문과 함께 파리의 풍경을 떠올리듯 한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도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세종으로의 행정수도 이전이나 동탄 신도시 개발 등이 성공을 거뒀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같은 모습, 같은 방식의 행정수도 이전, 신도시 개발을 그대로 재연할 수 없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람도 각각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도시도 위치한 지형과 기후가 다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적 배경과 사고방식까지 모두 다르다”며 “한국에서 정답으로 여겨지는 스마트시티 솔루션이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도 정답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도시개발은 실제 도시가 지어지는 곳의 상황을 고려해 늘 새로운 해법을 찾아 실행해야 한다. 현지의 요청 혹은 사정에 따라 맞춤형으로 변형된 결과물에 한국 기업이 만들었다는 것 외에 어디에서 굳이 ‘K’의 의미를 찾아야 할지 애매해진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전원 외국인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을 내놓자 나오기 시작한 ‘어디까지가, 무엇이 K-팝인가’ 논란이 K-스마트시티에도 그대로 겹쳐진다.

스마트시티라는 개념의 광범위함에서 오는 모호성도 K-스마트시티의 개념 정립을 방해한다.

실제로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스마트시티 관련 질문에 ‘스마트시티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 회사가 하는 사업이 스마트시티 관련 사업이었나’ 등 태도를 보인다.

어느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K-스마트시티를 수출하겠다는데 솔직히 무엇을 수출하겠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며 “스마트시티 수출이 단순한 건설 수주가 아니라면 외국에 한국 같은 도시 풍경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기술 및 도시개발 경험을 전수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도시개발 사업은 대체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사업 전체를 특정 기업 혹은 컨소시엄에 맡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도 고려해 볼 부분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어느 나라든 일정 수준 이상의 개발 사업은 한 곳에 통째로 맡기지 않고 대체로 구간이나 범위를 나누어 맡긴다”며 “도시개발 사업에 속한 수많은 하위 프로젝트 가운데 몇몇을 한국 기업이 맡았다고 해서 K-스마트시티 수출이라고 볼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스마트시티 역량은 이미 선두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도시의 본질’

▲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상징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부르즈 할리파'의 모습. <두바이=비즈니스포스트>

◆ 잊지 말아야 할 도시의 본질, ‘연결’ 그리고 ‘사람’

한국의 도시개발 역량이 세계 시장에서 ‘K-스마트시티’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꾸준한 성과를 이어가야 한다.

꾸준한 성과에는 도시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올바른 방향성이 당연히 전제돼야 한다.

도시의 본질적 역할은 ‘연결’로 볼 수 있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 밀집해 사는 지역을 뜻한다. 유엔 통계위원회가 정한 도시의 기준을 보면 행정구역과 별개로 1㎢ 크기의 격자에 상주인구가 1500명 이상, 인접 격자 그룹과의 인구 총합이 5만 명 이상이다. 인구의 밀도가 도시의 핵심 개념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살면 자연스레 사람과 사람, 물건과 물건, 기술과 기술 그리고 다른 도시 사이에 오가는 연결이 생긴다. 다양한 교류의 플랫폼 역할은 오랜 기간 이어온 도시의 본질적 역할이다.

스마트시티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따라 도시의 다양한 정보가 공공, 민간 영역에 공유돼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스마트시티가 건설을 넘어 정보와 에너지, 모빌리티, 공공행정 등 다양한 영역의 복합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한국이 보유한 산업과 산업, 기술과 기술 사이 연결을 통해 고유의 역량을 창출하는 일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시대와 기술이 바뀌어도 모든 일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인 도시에서 사람을 외면한 진보는 무의미하다.

스마트시티의 목표가 기술이 아닌 사람에 있다는 점은 한국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내놓은 '제4차 스마트시티 종합계획안'은 중장기 정책 비전을 '도시와 사람을 연결하는 상생과 도약의 스마트도시 구현'으로 설정했다.

서울시가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행사인 '서울 스마트 라이프 위크(SLW)'의 슬로건도 '사람 중심의 기술, 더 나은 삶으로 연결하다'로 정부의 정책비전과 방향을 같이 했다.

국제적으로 살펴봐도 유엔 해비타트(UN Habitat, 유엔인간정주계획) 역시 지속적으로 ‘사람 중심(People Centered)의 스마트시티’를 강조하고 있다.

스마트시티로의 진보에 사람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과거 산업혁명 등과 같은 변혁기에 나타난 빈부격차, 불평등의 확대와 같은 과오가 되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이 오히려 대다수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마이무나 모드 샤리프 유엔 해비타트 사무총장은 스마트시티가 가야 할 방향을 놓고 "디지털 기술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고착화할 수 있다"며 "도시의 디지털화(스마트시티)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실제적 요구에 기반해야 하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소외계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가 스마트시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각계 전문가들도 늘 취재 말미에 입을 모아 스마트시티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짚곤 했다. K스마트시티가 보여줘야 하는 것이 발전된 기술뿐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지속가능한 방향성이라는 점을 다시금 시사하는 대목이다.

서울대 한몽도시협력센터의 이인근 특임교수는 “스마트시티는 스마트한 기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스마트한 시민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 역시 “물질이나 정보 측면에서만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면 그건 진정한 스마트시티가 될 수 없다”며 “스마트시티가 성공하기 위해선 기술적 측면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도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스마트시티 역량은 이미 선두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도시의 본질’

▲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 라이프 위크'에서 오세훈 서울 시장(가운데)을 비롯해 행사에 참석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등 세계 각국 도시의 시장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