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중심 실효성 의문, “중소기업엔 처벌 대신 지원해야”

▲ 국회 의원회관에서 11일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규제와 처벌만이 해법인가 토론회 참석자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한 처벌만이 해법인가라는 지적에 대해서 대단히 크게 공감합니다.”

리튬전지를 생산업체의 공정을 관리하고 있는 이정도 비츠로셀 공장장(전무)은 11일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제고방안을 모색하는 국회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들의 안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처벌’이 아니라 전문인력과 자금을 지원해 안전에 투자할 기본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올해 1월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됐다. 이번 토론회에선 애초 법 제정 목적인 ‘안전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공장장을 비롯해 이번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자들의 처벌과 규제 위주로 적용되는 상황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바라봤다.

발제를 맡은 함병도 한국교통대학교 화학물질특성화 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의도했던 대로 적용된다면 사고가 예방이 돼야하지만 현실에서 사고예방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함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뒤로 경영자들은 사고가 났을 때 면책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예전에는 안전 관리 요소 100가지 가운데 99가지를 잘 관리하면 칭찬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1건을 관리 못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처벌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규정의 모호성도 문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특정 사건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다는 이유만으로 불기소 처분이 나왔는데 실제 중대재해와 관련해 더욱 중요한 부분인 안전보건관리체계 이행에 관한 깊은 고려가 없다는 것이다.

함 교수는 “특정 물질에 의한 급성중독(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했으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한 사실이 인정돼 불기소 처분이 나온 사례도 나왔다”며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은 ‘이행’에 대한 해법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방향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가이드라인 제시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될 안전보건관리 구축 및 이행 항목의 별도 규정 △안전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 및 지원기구 설치 근거규정 신설 등을 제시했다.

김대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도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성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실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문제된 사건들 대다수가 재해와 안전조치 위반의 관련성을 확인하지 못하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수사가 이뤄지지 못한다”며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형벌권을 동원해 안전 예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중대재해처벌법은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형사처벌만으로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초기단계를 넘어 주도적이고 선제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을 담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전제적 안전보건 수준의 증진을 위해서는 제재적 조치에만 의존하기보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지도를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중소기업들의 산업안전 조치 강화를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에 관한 조언도 나왔다.

서용윤 동국대학교 산업시스템 공학과 교수는 “(중소기업들이) 안전 역량을 향상시키고 우수사례로 인정됐을 때 재정적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주면 중소기업 사업주들 사이의 네트워크와 정보공유가 활발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업주들이 안전에 관한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정부가 검토할 수 있는 안전관리 인센티브 제도로 사업주가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하거나 위험성평가를 받은 사업장의 산재보험료 감면율 상향, 조세특례제한법의 통합투자세액 공제에서 안전설비투자에 따른 공제비율 확대 등을 제안했다.
 
[현장]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중심 실효성 의문, “중소기업엔 처벌 대신 지원해야”

▲ 리튬전지 생산기업 비츠로셀의 안전관리 방안을 설명하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리튬전지 생산 기업으로 2017년 4월 아리셀 화재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근로자들이 모두 대피에 성공해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비츠로셀의 사례가 기업의 자율적 안전예방 조치 우수사례로 소개됐다.

현장안전 책임자인 이정도 비츠로셀 전무는 “2017년 화재로 공장을 잃은 뒤 안전이 없으면 효율도 없다는 인식 아래 ‘스마트캠퍼스’라는 공장을 다시 짓게 됐다”며 “제품군별, 공정별 건물을 분리하고 건물 사이에 안전거리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인명피해 방지를 위해 피난이 쉽도록 위험요소가 있는 작업장들은 단층에 위치시키고 블랙아웃 상황에서도 대피로를 확실하게 보이도록 형광물질로 표시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무는 다만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현실을 고려할 때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처벌과 규제 강화보다는 안전관리 분야의 지원과 안내가 더욱 필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이 전무이사는 “발표를 마치면서 꼭 좀 전해드리고 싶은 건 비츠로셀은 20년 동안 연속으로 흑자를 내면서 나름대로 유보된 현금을 가지고 안전에 관련된 부분들에 투자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대부분의 중소기업들 같은 경우 실질적으로 안정에 투자를 할 만한 자원이 없으니까 하고 싶어도 못하고 실제로 어떤 조치를 해야하는지 몰라서도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도 산업 안전이라는 목적을 처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달성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중심 실효성 의문, “중소기업엔 처벌 대신 지원해야”

▲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이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우 의원은 “산업재해가 없어져야 한다는 건 모두 같은 마음이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실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있다”며 “정책을 개발할 때 언제나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근로자들. 현장에 있는 분들이 안전예방 조치를 더 잘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토론회를 준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국민의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김형동 의원,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 강대식 의원 등이 참석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