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궁 올림픽 첫 5종목 '금메달 석권', 정의선 스포츠 후원의 정석 보여주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4일(현지시각)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을 마친 뒤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양궁이 프랑스 파리 올림픽 양궁에서 처음 5개 금메달 획득하며 모든 종목을 석권했다. 

양궁에서 한국이 이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현대자동차그룹과 대한양궁협회의 지속적이고 체계적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한국의 김우진 선수가 미국의 브래디 엘리슨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양궁 국가 대표팀은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처음 4개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낸 지 8년 만에 양궁 전 종목 석권을 달성했다.

특히 2020년 도쿄 올림픽부터 추가된 혼성 단체전 금메달까지 추가했다. 앞서 양궁 국가 대표팀은 지난달 28일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남자 단체전, 혼성 단체전, 여자 개인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여자 대표팀은 올림픽 단체전 10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또 남자 단체전은 3연패, 혼성 단체전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도쿄 대회부터 2연패했다. 김우진 선수는 남자 양궁 사상 첫 3관왕에 올랐고, 금메달 5개로 한국 최다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이같은 놀라운 성과 뒤에는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대차그룹의 체계적 지원이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40년 동안 한국 양궁을 전폭 지원해왔다. 국내 단일 종목 스포츠단체 후원 가운데 최장 기간 후원이다.

1985년 정의선 회장의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해 양궁의 저변확대와 인재발굴, 장비 국산화 등 최고를 향한 기반을 다졌다. 2005년부터는 정의선 회장이 양궁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대한양궁협회장을 연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도쿄 올림픽 종료 직후인 3년 전부터 일찌감치 파리 올림픽 준비에 돌입했다. 

정 회장은 이번 파리대회를 위해 개막 이전부터 직접 준비과정을 챙겨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파리대회 개막식 전에 현지에 미리 도착해 우리 선수들의 전용 훈련장과 휴게공간, 식사, 컨디션 등 준비 상황을 점검했고, 양궁 경기 기간 내내 현지에 체류하며 선수들의 컨디션까지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궁협회 측은 "정 회장은 평소에도 선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친근하게 스킨십을 한다"며 "특히 선수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정신적 멘토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양궁 여자단체전 10연패 달성 뒤 현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은 뒤에서 다하겠다"며 선수들에 담대하게 경기에 임해달라고 말했다.
 
한국양궁 올림픽 첫 5종목 '금메달 석권', 정의선 스포츠 후원의 정석 보여주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 첫번째)이 2일(현지시각) 양궁 혼성전 시상식 직후 금메달리스트인 임시현(가운데), 김우진(오른쪽) 선수를 격려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현대차그룹은 이번 올림픽 대회에 앞서 양궁협회와 함께 선수들의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맞춤형 지원을 제공했다.

먼저 파리 양궁경기장인 앵발리드 경기장과 똑같은 시설을 진천 선수촌에 건설했다. 이곳에서 국가 대표팀은 파리대회에서 예상되는 음향과 방송 환경 등을 적용한 모의대회를 치르며 경기장 특성을 몸에 익혔다.

전북현대모터스와 협의해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소음 적응 훈련도 진행했다. 지난 6월29일 전북현대와 FC서울의 경기를 앞두고 대규모 관중 앞에서 약 40분가량 남자선수들과 여자선수들이 각각 팀을 이뤄 실전과 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펼쳤다.

파리 올림픽 양궁 경기가 열리는 앵발리드 경기장이 파리의 센강에 인접해 있어 강바람이라는 변수를 만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경기 여주 남한강변에서 환경적응 훈련도 실시했다. 

파리에는 앵발리드 경기장에서 약 10여 km 떨어진 곳의 스포츠클럽을 통째로 빌려 양궁 국가대표팀만을 위한 전용 연습장을 마련했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통상적인 출국 날짜보다 4일 정도 빠른 지난달 16일 출국해 전용 연습장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했다. 이는 시차 적응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연구개발(R&D) 역량을 활용한 양궁 훈련장비와 훈련기법을 개발·지원해 눈길을 끌었다. 

현대차그룹은 도쿄대회 직후부터 프로젝트에 착수해 선수들이 가장 필요로 하고, 그룹 기술력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았다.

이를 통해 선수와 1대1 대결을 펼치며 경기 감각을 향상시키는 '개인 훈련용 슈팅로봇', 슈팅 자세를 정밀 분석해 완벽한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돕는 '야외 훈련용 다중카메라', 어디에서든 활 장비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활 검증 장비', 직사광선을 반사하고 복사에너지 방출을 극대화하는 신소재를 개발해 적용한 '복사냉각 모자'를 지원했다.

이밖에도 3차원(3D) 프린터로 선수의 손에 최적화해 제작한 '선수 맞춤형 그립', 비접촉 방식으로 선수들의 생체정보를 측정해 선수들의 긴장도를 파악하는 '비전 기반 심박수 측정 장치', 최상 품질의 화살을 선별하는 '고정밀 슈팅머신' 등을 파리대회 준비 과정과 실전 경기에서 제공해 양궁 대표팀과 코치진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한국 양궁 대표팀이 최고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양궁협회의 투명성과 공정성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한국양궁 올림픽 첫 5종목 '금메달 석권', 정의선 스포츠 후원의 정석 보여주다

▲ 현대차그룹이 개발한 개인 훈련용 슈팅로봇. <현대차그룹>

지난 2일 양궁 혼성 단체전 결승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일본 기자는 한국의 양궁 3번째 금메달을 따낸 김우진-임시현 팀에게 "조선시대나 고구려 때부터 활을 잘 쐈다는 얘기도 있다"며 한국 양궁이 이토록 강한 비결을 물었다.

이에 김우진 선수는 "한국 양궁은 체계가 잡혀있다. 또 공정한 대한양궁협회가 있기에 모든 선수가 부정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한다"며 "양궁협회장이 양궁에 많은 관심을 주고 있고, 어떻게 하면 한국 양궁이 정상을 지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계속해서 지원한다. 그래서 한국 양궁이 지속적으로 강한 것 같다"고 답했다.

한국 양궁의 뛰어난 성과 배경에는 다른 국가가 따라할 수 없는 유전적 특성이나 특별한 '비기'가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대한양궁협회는 지연이나 학연 등 파벌로 인한 불합리한 관행이나 불공정한 선수 발탁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대표는 명성이나 이전 성적보다는 현재의 실력으로 철저한 경쟁을 통해서만 선발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대한축구협회와 사뭇 대조된다.
 
한국양궁 올림픽 첫 5종목 '금메달 석권', 정의선 스포츠 후원의 정석 보여주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양궁 남자 개인전을 앞둔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또 현대차그룹 지원을 바탕으로 양궁협회는 유소년부터 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체계를 구축했다. 특별지원으로 일선 초등학교 양궁장비와 중학교 장비 일부를, 2013년부턴 초등부에 해당하는 유소년 대표 선수단을 신설해 장비·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유소년대표(초)-청소년대표(U16)-후보선수(U19)-대표상비군(U21)-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이번 올림픽 양궁에서 개인전 은메달과 혼성 단체전 동메달을 따낸 미국 양궁 국가대표 브레이디 앨리슨 선수는 "미국에선 내가 활쏘기로 밥벌이를 하는 유일한 궁수"라며 "한국과 미국의 양궁 시스템은 뿌리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한국 양궁이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선 국제 대회의 성과를 넘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협회는 학교 체육 수업에 양궁을 포함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22년부터 일부 지역 중학교를 시작으로 올해부터는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이나 체육 수업에서 양궁을 가르치는 등 점차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또 양궁 클럽 등에서 양궁을 배우는 일반인들이 보다 양궁을 박진감 있게 즐길 수 있도록 생활체육대회를 더욱 활성화할 계획을 세웠다. 그룹은 현재 매년 두차례 일반인 양궁 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정 회장은 대한양궁협회에 이미 2028년 LA 올림픽 준비를 위한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