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구영배의 꿈' 큐텐그룹,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 모두 각자도생

▲ 큐텐그룹 산하 이커머스 플랫폼인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이 모두 지분 매각과 투자 유치 등을 통해 제 살 길을 찾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큐텐그룹이 사실상 와해하고 있다.

구영배 큐텐 대표이사는 티몬과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 등을 연달아 인수하며 이른바 ‘티메파크’ 연합을 만들었지만 정산대금 미지급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각 플랫폼으로부터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다.

구 대표는 큐텐그룹 산하 플랫폼의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입장만 보이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여전히 뚜렷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4일 이커머스업계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 큐텐그룹 소속 이커머스 플랫폼 모두 각자 살 길을 찾기 위해 지분 매각과 투자 유치, 독립경영 논의 등을 시작했다.

인터파크커머스는 최근 큐텐그룹 측에 잔여 채무 상환과 관련한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파크커머스는 큐텐에 빌려준 280억 원을 포함해 큐텐그룹 계열사로부터 모두 600억 원 이상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내용증명은 통상 법적 분쟁을 대비한 절차로 인식된다. 발송인이 수취인에게 ‘이런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를 우체국이 증명하는 것으로 분쟁 상황에서 유리한 정황을 이해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는 절차다.

인터파크커머스는 큐텐의 100% 자회사다. 자회사가 모회사를 향해 내용증명을 보낸 것은 인터파크커머스가 앞으로 큐텐에서 독립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커머스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김동식 인터파크커머스 대표는 이미 독립 경영과 관련해 구영배 대표와 논의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표는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티몬과 인터파크에서 구매자와 판매자의 이탈이 본격화하자 구 대표에게 먼저 (독자 생존을) 제안해 동의를 얻었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정산대금 미지급 사태의 핵심 플랫폼인 티몬과 위메프 역시 큐텐그룹에서 독립해 각자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무너지는 '구영배의 꿈' 큐텐그룹,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 모두 각자도생

▲ 사진은 구영배 큐텐 대표이사가 1일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협조를 위해 검찰 관계자들과 함께 자택으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류광진 티몬 대표이사는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의 심문에 출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제부터 티몬은 큐텐그룹 차원의 지원을 기다리기보다 그룹과 별개로 정상화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독자 경영 체계를 구축하고 피해복구를 빠르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2000년대 구 대표와 함께 G마켓을 키운 인물이다. 류 대표는 2000년 초반 인터파크에 입사해 2001년 사내벤처인 인터파크구스닥(G마켓의 전신)에 창립멤버로 합류했다.

구 대표와 함께 G마켓 사업 초기부터 기획뿐 아니라 영업까지 직접 뛰면서 동고동락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티몬이 큐텐그룹에 인수된 뒤 류 대표가 새 수장에 선임된 것도 구 대표와의 끈끈한 인연 덕분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류 대표가 큐텐그룹과 별개의 티몬을 꾸리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사실상 20년 넘게 인연을 쌓아온 구 대표와 결별 수순을 밟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메프도 마찬가지다.

류화현 위메프 대표이사는 이른바 ‘티메프 사태’ 초기부터 지분 매각과 외부 투자 유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에는 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 위메프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구체적 말까지 흘러나왔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위메프 측과 접촉한 사실조차 없다며 위메프 인수설을 적극 부인했다. 하지만 위메프가 독립 경영을 위해 방법을 찾고 있다는 점은 사실로 여겨진다.

구 대표가 큐텐그룹을 통해 연합군으로 엮었던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가 각자 살 길을 찾아 나선 데에는 구 대표 스스로 원인을 제공했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구 대표는 티메프의 정산대금 미지급 이후 사태가 일파만파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잠행했다.
 
무너지는 '구영배의 꿈' 큐텐그룹,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 모두 각자도생

▲ 7월30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정산 및 환불 지연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구영배 큐텐 대표이사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준석 전자지급결제협회 회장, 류화현 위메프 대표이사, 류광진 티몬 대표이사, 구영배 큐텐 대표이사. <연합뉴스>

위메프에서 돈을 떼일 위기에 놓인 구매자들이 위메프 본사에 찾아갔을 때 류화현 대표는 “구 대표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 대표는 7월29일 의견문을 통해 “저는 제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인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이번 사태 수습에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티메프 사태 이후 처음으로 국내 언론에 모습을 비췄지만 구체적 실행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했을 때도 “비즈니스가 중단된다면 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저를 조금만 도와주시면 피해를 완전히 복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여전히 현실가능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구 대표는 이미 내부적으로도 신뢰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구 대표는 7월31일 저녁 온라인으로 티몬 임직원 화상회의를 열어 “나를 믿고 따라 달라”는 취지로 얘기했지만 구체적인 법인 회생 계획과 자금 조달 계획은 언급하지 못했다.

화상회의에 참석한 임직원 일부는 구 대표의 말에 알맹이가 없다고 반발하며 즉각 사직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큐텐그룹의 해외 계열사도 구 대표와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 감지된다.

큐텐의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는 7월26일 이사회를 열고 구 대표를 대신해 마크 리 최고재무책임자를 최고경영자(CEO)에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일각에서는 큐텐그룹이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증시 상장을 강행하기 위해 구 대표의 책임을 덜어내려는 모습을 보인 것 아니냐고 해석했지만 실제로는 큐익스프레스 재무적 투자자들이 나서 구 대표의 사임을 강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큐익스프레스 역시 최고경영자 교체와 관련해 “회사는 인터파크커머스와 위메프, 티몬글로벌, 티몬 등 다른 회사들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티메프 사태가 큐익스프레스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