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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녕의 한세실업 32년 흑자 비결

이계원 기자 gwlee@businesspost.co.kr 2014-08-08 0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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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녕의 한세실업 32년 흑자 비결  
▲ 김동녕 한세실업 회장

한세실업은 ‘미국인 3명 중 1명이 입는다’고 광고를 내보낸다. 한세실업은 이런 광고를 오래 전부터 하고 있다.

한세실업은 2006년까지만 해도 ‘미국인 9명 중 1명’이라고 표현했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거래처와 생산물량이 늘어 3명 중 2명으로 바꿔도 된다”고 말했다.

한세실업이 만든 옷은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시간당 3만 장, 매일 72만 장씩 팔려나간다.

한세실업은 32년째 흑자경영하고 있다. 중견기업이지만 대기업 못지않고 급여가 높아 의류업계에서 여느 대기업보다 유명하다.

한세실업은 창업 이래로 의류OEM(주문자상표부착 생산방식)이라는 한우물만 팠다. 세계적 속옷 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을 비롯해 미국 최대 의류브랜드인 갭(GAP)과 거래한 지 20년이 넘었다.

한세실업은 최근 전 세계 하청업체를 수백개에서 25개로 줄인 갭의 파트너로 여전히 남게 됐다. 옷의 품질과 디자인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밖에도 나이키, 유니클로, 자라, 랄프로렌 등 내로라 하는 의류브랜드의 옷들이 모두 한세실업 해외공장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동녕 회장은 30여년 동안 한세실업을 이끌어왔다. 그는 2012년 한세실업을 매출 1조 원 클럽에 올렸다.

김 회장은 앞으로 5년 안에 한세실업의 매출을 2조 원으로 키우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게다가 이제 주문제작에 머물지 않고 자체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야심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의류OEM업체로 한우물만 파던 데에서 벗어나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은 어떻게 흑자경영 신화를 만들었을까? 자체 브랜드는 흑자경영에 날개를 달아줄까?

◆ “앞서가지 말라”는 역설적 경영철학

“매출 1조 원을 달성하는 데 꼬박 40년이 걸렸네요. 1972년 처음 창업했던 회사가 실패했지만 1982년부터 한세실업으로 한 우물을 팠고 결국 지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빠르면 2017년쯤에 매출 2조 원 달성이 가능하리라 자신합니다.”

김 회장은 지난 1일 한국표준협회 하계 CEO포럼에서 ‘글로벌기업의 성장 스토리’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회장은 ‘한걸음 늦게 가자’는 독특한 경영철학을 고수한다. “꾹 참아둔다”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이는 남보다 늦게 가자는 뜻이 아니라 내 실력보다 늦게 가자는 뜻이다. 자신의 실력보다 앞서 가려고 조급증을 내다 보면 무너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회장은 의류OEM업체로서 ‘한 우물 파기’를 한 성과를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 한세실업은 창업 30주년을 맞은 2012년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올해 매출 1조6500억 원, 영업이익 660억 원을 낼 것으로 보인다.

한세실업은 올해 1분기에 매출과 영업이익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2.6%, 57.1% 늘렸다. 2분기에도 매출 2907억 원, 영업이익 134억 원으로 전년동기보다 각각 3.3%, 90.5% 증가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런 견조한 성장으로 올해 들어 주가가 지난해 말보다 60%나 뛰었다.

김 회장은 오로지 의류OEM사업에만 집중했다. 사업이 순조로울 때도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하지 않고 내부역량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기업보다 빨리 패션시장의 흐름에 대응하는 순발력을 갖추게 됐다.

  김동녕의 한세실업 32년 흑자 비결  
▲ 김동녕 한세실업 회장 <출처=한세실업 홈페이지>

◆ 자체 브랜드를 향한 도전은 성공할까

의류OEM업체의 약점은 매출이 고객사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세실업도 그동안 고객사 발주에 따라 수익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여러 차례 겪었다.

김 회장은 자체 브랜드를 내 독립성을 확보할 것인지 의류OEM업체로서 전문성을 더 키울 것인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자체 브랜드를 낼 경우 기존 고객사와 사업영역이 겹쳐 앞으로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자니 의류OEM업체의 한계를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세실업의 최고 강점이자 전체 직원의 10%에 이르는 디자이너 역량도 마음껏 발휘할 수 없다.

김 회장은 결국 자체 브랜드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한세실업은 지난 6월 출산용품 유아 브랜드인 ‘모이몰른’ 매장을 한국과 중국에 동시에 열었다. 독자 브랜드를 처음 내놓을 때부터 중국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에서 내년까지 고급 백화점에 5개를 비롯해 모두 30개 매장을 열 계획이다.

이용백 한세실업 부회장은 “독자 브랜드는 한세실업의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한국과 중국시장은 물론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까지 내다볼 수 있는 우수한 브랜드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독자 브랜드 출시는 2011년 ‘컬리수’로 잘 알려진 드림스코를 인수할 때부터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컬리수는 홈플러스 아동복 전체 매출 2위로 ‘국민 아동복’ 반열에 올랐다. 국내 180개 매장에서 5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중국에도 고급백화점을 포함해 90개 매장을 냈다. 중국시장은 한류열풍을 타고 올해 매출 200억 원을 달성할 것으로 점쳐진다.

김 회장이 유아나 아동 브랜드를 통해 독자진출한 것은 한세실업이 주로 성인용 의류 OEM업체인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고객사와 직접 충돌을 피하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한세실업은 성인의류도 브랜드 인수합병 등을 통해 독자진출하는 방안을 깊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OEM업체의 꿈은 자체 브랜드를 내놓는 것”이라며 “성공하면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기존 OEM 매출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 0.01% 확률을 놓치지 않으려는 치밀함

김 회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마치고 와튼스쿨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27세 젊은 나이에 의류무역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오일쇼크’가 터지는 등 세계시장 상황이 안 좋아 7년 만에 부도를 냈다.

이 부도 경험은 김 회장에게 보약이 됐다. 김 회장은 “사업할 때 무리한 목표치를 빨리 달성하라고 직원들을 몰아세우지 말고 조직의 시스템 개선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김 회장이 무작정 "천천히"만 외친 것은 아니다. 의욕만 앞세우기보다 무엇이든 치밀하게 살펴본 뒤 행동하는 것을 중시했다. 장기간 흑자를 내려면 일단 불확실한 시장환경에서도 ‘한 치 앞’이라도 먼저 내다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바둑 매니아라고 한다. 그의 경영은 바둑과 많이 닮았다. 김 회장은 “바둑에서 초반 포석이 나쁘면 중반에도 악전고투할 가능성이 크다”며 “바둑도 사업도 0.01% 확률을 놓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부하직원이 99% 확실하다는 내용을 가져와도 나머지 1%는 뭐냐고 묻는다.

미래를 꼼꼼하게 내다보고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은 국내 최대 온라인서점인 ‘예스24’를 인수하는 데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시장에서 한세실업은 의류OEM업체기 때문에 고객사 사정에 따라 매출이 요동칠 수 있다고 보고 기업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김 사장은 한세실업의 태생적 한계를 느꼈다.

김 회장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3년 예스24를 인수했다. 김 회장은 예스24의 성장성도 높이 봤지만 예스24의 IT기술 노하우와 유통능력도 주목했다. 김 회장은 그 결과 2010년 의류 인터넷쇼핑몰 ‘아이스타일24’를 열었다.

김 회장은 2009년 지주회사인 한세예스24홀딩스를 세웠다. 그 아래에 한세실업과 예스24를 두고 있다. 지금은 한세실업 밑에 12개의 자회사, 예스24 아래에 2개의 자회사를 각각 두고 있다.

  김동녕의 한세실업 32년 흑자 비결  
▲ 한세실업 신입사원들이 직접 만든 옷을 선보이고 있다. <출처=한세실업 홈페이지>

◆ OEM업체의 자부심, 삼성보다 연봉 더 준다

김 회장은 OEM업체로 ‘을’의 입장에 있는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해외연수를 보내고 업계 최고수준 연봉을 보장한다.

지난해 신입사원 초봉을 1천만 원 가량 더 올려 ‘삼성보다 15% 더 준다’고 홍보해 화제가 됐다. 한세실업의 직원 초봉은 4천만 원 수준이다. 이렇게 연봉이 높다보니 지난해 인턴 70명 모집에 8천여 명이 지원했다.

김 회장은 직원들과 3개월에 한 번씩 조깅한다. 직원들 사이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평소 “상호소통을 통한 열린 문화만이 직원간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이는 회사이익 창출로 직결된다”고 강조한다.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 의사결정권한을 줘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었다. 한세실업은 한 팀이 5~20명으로 구성돼 있다. 팀당 연매출이 평균 200억 원이나 된다. 한 팀이 거의 중소기업 수준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팀장들에게 많은 권한이 위임돼 있다. 팀장 스스로 미리 예측하고 결정하면서 일의 완성도도 높아졌다. 한세실업은 ‘내일의 최선 결정보다 오늘의 차선 결정이 낫다’는 원칙 아래 움직인다. 이는 결과적으로 빠른 의사결정을 낳았다. 이것은 시간이 금인 OEM업체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김상률 한세실업 기획팀장은 “한세실업에서 과장급만 해도 원자재 구매부터 제품 생산, 납품까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모든 직원이 오너십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디자이너 역량을 가장 중시한다. 전체 직원 가운데 10%는 해외명문 패션스쿨을 나온 디자이너나 연구인력이다. 한세실업의 최대 강점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외국 유명패션회사에 다니다 한세실업으로 옮긴 디자이너도 많다. 브랜드 업체의 다지이너가 OEM업체로 옮기는 것은 흔하지 않다.

이런 디자인 역랑 때문에 고객사가 주문하지 않아도 먼저 디자인을 내놓아 감동시킨 사례도 많다.

채묵호 한세실업 경영지원본부장은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면서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했다”며 “과거에 고객사가 제품 컨셉을 정해주면 그대로 디자인했지만 최근에 아예 먼저 디자인을 보여주면 그대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많다”고 말했다.

  김동녕의 한세실업 32년 흑자 비결  
▲ 한세실업 베트남 호치민 공장에서 종업원들이 24시간 교대로 작업하고 있다.

◆ 현지화 성공의 비결, 겸손함

한세실업의 또다른 힘은 해외 현지공장이다. OEM의류업체로서 원가절감을 위해 해외공장을 돌려야 한다. 한세실업의 현지공장은 상당히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이름높다.

한세실업은 현재 해외법인에 근무하는 직원 수가 2만8천여 명에 이른다. 베트남 4개, 인도네시아 2개, 과테말라 2개, 미얀마 1개 등의 현지공장 법인을 비롯해 미국 뉴욕 중심에 디자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런 현지공장 체제를 갖추기 위해 톡톡히 수업료를 냈다.

김 회장은 사업초기인 1980년대 중반 해외공장 설립에 들어갔다. 동남아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다 사이판을 최적의 장소로 꼽았다. 그러나 사이판 공장설립은 인고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공장 설립허가를 받고 건설자재까지 쌓아놓았는데 현지주민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주민들은 “이곳에 죽어도 공장을 지을 수 없다”고 맞섰다.

시간은 흐르고 건설자재들은 녹슬어 갔다. 김 회장은 고민하다 그 지역에 하수도가 없어 주민들이 크게 고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김 회장이 직접 삽을 들고 직원들과 함께 하수도를 만들어주기 위해 땅을 팠다. 그러자 주민들이 마음을 열었다.

사이판 공장설립은 계획보다 3년이나 늦어졌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동남아지역에 더 많은 공장을 순조롭게 설립할 수 있는 교훈이 됐다.

김 회장은 “부도도 맞아봤고 백수생활도 해봤지만 사이판에서 일생일대 가장 힘들었다”며 “현지화는 현지인 시각에서 절실한 문제를 찾을 때 비로소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뒤 해외공장 설립 때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결과 한세실업은 차질없이 현지공장을 세워나갈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사이판 경험’ 덕에 지금의 한세실업이 이룩됐다고 얘기한다.

김 회장은 해외공장이 있는 곳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김 회장은 올해 70의 나이에도 두 달에 한 번 이상 해외출장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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