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이 제약유통으로 연 매출 1조시대  
▲ 김윤섭 유한양행 사장


유한양행이 국내 제약회사 최초로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려고 한다. 매출 1조 원 달성은 제약업계의 오랜 숙원이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매출 9436억 원으로 1조 원 문턱에서 멈춰야 했다.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은 복제약 중심의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신약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매출 1조 원은 그 첫걸음이다. 자본력을 갖추고 규모의 경제가 이뤄져야 연구개발이 활성화돼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을 6년째 이끌고 있는 김윤섭 사장은 올해 초 “업계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하고, 1위 자리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새 역사를 창조하자”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올해 매출 목표를 1조400억 원으로 잡았다.

이 목표는 점점 현실이 돼가고 있다. 제약업계는 유한양행이 매출 1조 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본다.

6일 유한양행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상반기 매출 4803억 원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제약회사는 대체로 상반기보다 하반기 매출이 더 많다. 지난해 유한양행은 하반기에 매출 4919억 원을 올려 상반기 매출 4517억 원보다 400억 원 가까이 더 많았다.

유한양행이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면 그 일등공신은 김윤섭 사장이다. 그는 유한양행에서 37년을 보낸 영업통이다. 그는 영업능력이 제약회사의 또 다른 성장동력이라 믿는다.

유한양행이 매출 1조 원의 숙원에 성큼 다가가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이 직접 만들어 판 약보다 다른 제약회사가 만든 약을 들여와 팔아 거둔 매출이 더 많기 때문이다.

신약개발은 제약회사의 필수적 과제다. 그렇기에 유한양행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매출 1조 원을 달성하더라도 제약회사가 아니라 '제약유통회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제약회사 유한양행은 ‘진짜’ 매출 1조 원을 언제쯤 달성할 수 있을까?

◆ ‘남이 만든 제품’이 전체 매출의 68.5%

유한양행이 지난해 판매한 제품 100개 중 70 개는 다른 회사가 만든 제품이다. 유한양행은 중간에서 유통회사 역할을 했다.

유한양행의 지난해 매출에서 ‘상품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매출의 68.5%다. 상품매출이란 직접 만든 제품을 팔아 거둔 매출이 아니라 남이 만든 제품을 팔아 거둔 매출을 뜻한다.

상품매출은 직접 만들어 팔아 거둔 매출을 가리키는 ‘제품매출’의 반대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의 경우 제품매출, 도소매업의 경우 상품매출, 서비스업의 경우 용역매출이라 말한다.

즉 지난해 유한양행이 다른 제약회사가 만든 약을 가져와 팔아 번 돈이 전체의 70%에 육박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매출 기준 상위 10대 제약회사들의 평균 상품매출이 39.3%인 것과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제약업계에서 유한양행을 두고 ‘다국적 제약사 도소매업’이라 부르거나 심지어 ‘보따리상’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한양행의 상품매출 비중이 높아진 것은 김윤섭 사장이 다국적 제약회사가 만든 유명약의 판권을 공격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2010년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고혈압 치료제 ‘트윈스타’를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타’와 B형간염 치료제인 ‘비리어드’, 폐렴구균 백신 ‘프리베나13’ 등을 들여왔다.

김 사장은 올해 들어서도 ‘아스트라제네카’와 연매출 800억 원대인 고지혈증치료제 ‘크레스토’ 판매계약을 맺었다.

이 상품들은 모두 대박을 터트려 각 치료시장 영역에서 1, 2위를 차지하고 있고 유한양행 상위매출 제품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단일제품 비리어드의 지난 1분기 매출은 202억 원으로 유한양행 1분기 총매출의 8.9%를 차지했다.

유한양행의 상품매출 비중은 2010년 45.9%에서 지난해 68.5%로 빠르게 늘어났다. 전체매출도 급속도로 올랐고 업계순위도 올랐다. 2011년 매출 6676억 원으로 4위였던 유한양행은 2012년 3위를 거쳐 지난해 드디어 1위에 올랐다.


  유한양행이 제약유통으로 연 매출 1조시대  
▲ 김윤섭 유한양행 사장이 지난해 4월 더크 밴 니커크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사장, 폴 헨리 휴버스 한국릴리 사장과 당뇨병 치료 복합제 ‘트라젠타듀오’ 국내 출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유한양행 제공>

◆ 1천 원 팔아 56원 남겨, 신약은 단 1개 개발

유한양행은 지난해 1천 원을 팔아 56원을 남겼다. 영업이익률이 5.63%다.

매출액 기준 상위 5개 제약회사 중 가장 낮고 전체 제약회사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유한양행, 녹십자, 한미약품, 대웅제약, 동아ST 등 경쟁사들의 지난해 평균 영업이익률은 8.3%다. 유한양행을 제외한 나머지 4개사는 모두 8%를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유한양행의 영업이익률이 낮은 이유는 상품매출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상품판매 비중이 높다는 것은 연구개발이나 생산보다 영업망을 이용해 글로벌 제약사들의 약을 들여다 파는 데 주력했다는 의미다.

다국적 제약사에서 들여오는 약은 원가가 비싸고 로열티나 운송비 등 많은 비용이 들어 수익성이 낮다.

상품매출 비중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영업이익률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제품매출 비중이 더 컸던 2010년 14.18%였던 영업이익률은 상품매출이 제품매출을 역전한 2011년부터 한자리 수로 떨어졌고 지금은 5%대다.

게보린을 만드는 삼진제약의 경우 상품매출 비중이 2% 이하로 국내 제약회사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15%를 넘는다.

유한양행의 매출이 크게 늘어나는 동안 연구개발비는 크게 줄었다. 유한양행의 1분기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는 5.4%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9%보다 더 떨어졌다. 업계 2위 녹십자의 11%, 3위 한미약품의 15.8%에 비해서도 훨씬 낮다.

신약개발로 제품매출 비중을 올리는 일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수익률이 떨어지면 자연히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도 줄어든다. 이는 다시 수입의약품 의존도를 높이는 악순환을 낳는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등록된 신약 20개 중 유한양행이 개발한 신약은 2005년 개발한 '레바넥스'가 유일하다. 덩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만한 부분이다.


  유한양행이 제약유통으로 연 매출 1조시대  
▲ 김윤섭 유한양행 사장이 지난 3월 한국아스트라제네카와 고지혈증 치료제인 ‘크레스토’의 국내 공동판매에 대한 전략적 제휴협약을 체결했다.<사진=유한양행 제공>

◆ 김윤섭 사장은 왜 수입의약품에 매달리나

상품매출 비중의 확대는 제약업계의 전반적 추세다. 대부분 막대한 시간과 비용 때문에 연구개발을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한양행의 이런 변화는 더 갑작스럽다.

유한양행에서 이런 변화는 영업통 김윤섭 사장이 취임한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김 사장은 “제약회사에게 영업능력도 성장의 중요한 요소”라며 “키울 수 있는 것은 다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한양행의 경쟁력을 공격적 영업으로 보고 외형확장이 장기적으로도 유한양행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 믿는다.

유한양행이 공격적으로 수입의약품의 판권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같은 시기 유한양행은 최상후 김윤섭의 각자대표체제에서 김윤섭 단독대표체제로 전환했다.

김윤섭 사장이 단독대표체제를 맡기 전 최상우 사장이 사업지원본부, 중앙연구소, 연구개발팀 등 생산분야를 맡고 김윤섭 사장은 약품사업본부, 유통사업부, 해외사업부 등 영업분야를 맡았다.

그러나 유한양행은 3년 만에 김윤섭 단독대표체제로 돌아왔다. 당시 업계는 각자대표체제가 생각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김윤섭 사장의 영업정책이 거둔 성과가 매우 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회사의 성장동력을 영업에서 찾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1976년 유한양행에 공채로 입사해 37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영업과 마케팅 분야에서 철저한 거래처 관리와 눈부신 실적을 보여 2000년 약품마케팅 담당 상무 자리에 올랐다.

김 사장이 단독대표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4월 정부는 일괄적으로 약값을 인하하고 리베이트를 규제했다. 이 때문에 제약업계가 전반적으로 위축됐다. 유한양행도 약값 인하로 300억 원 매출감소가 예상됐다.

김 사장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공격적 영업에 들어갔다. 그는 당시 “유한양행의 강력한 영업력은 단기적 성장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 뒤 김 사장이 계약을 맺은 수입의약품은 정부 약값인하로 예상됐던 매출 감소분 3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매출을 올리며 유한양행의 성장을 이끌었다.

김 사장도 유한양행이 제약회사가 아니라 제약유통회사라고 비판받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비판에 대해 “자기제품을 파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면 다국적 제약사의 우수한 제품을 파는 것이 또 하나의 방법”이라며 “두 가지 모두 중요하지 이 중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말한다.

김 사장은 자신감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외국회사의 것을 많이 가져다 판다고 따지는 것은 시비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유한양행의 영업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6년 만에 유한양행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래서 그가 더 공격적으로 영업에 힘을 쏟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한양행은 사장임기를 최장 6년으로 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평소 “혼신의 힘을 다해 회사를 성장시킨 뒤 미련없이 떠나겠다”며 “한 가지 희망사항이 있다면 자신의 재임시절 유한양행이 제약업계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달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유한양행이 제약유통으로 연 매출 1조시대  
▲ 김윤섭 유한양행 사장

◆ 유한양행은 ‘진짜’ 매출 1조 달성할 수 있을까

김 사장도 결국 회사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 신약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회사의 외형성장에 큰 신경을 쓰는 이유에 대해 “우선 외형이 커야 이익도 좋아진다”며 “이 이익금은 중장기적으로 회사발전에 필요한 신약개발의 재원으로 쓰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김 사장은 그러기 위해서라도 다국적 제약사와 돈독한 협력관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신약을 개발하더라도 이것을 잘 팔려면 다국적 제약사와 협력은 필수요소”라며 “지금 하고 있는 공동마케팅은 다국적 제약사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른바 ‘사다리론’을 펼친다. 그는 “아직 선진국과 기술격차가 크고 자체 노력만으로 단기간에 이들을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라며 “그 격차를 따라잡기 위한 사다리가 필요하고 그 사다리가 바로 해외기업으로부터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도 제약회사가 도태되지 않으려면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신약개발이 제약회사의 생존을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다.

스위스는 세계적 제약강국으로 꼽힌다. 2013년 매출액 기준 다국적 제약사 1위인 노바티스와 2위 로슈가  인구 800만의 스위스에서 나왔다. 전문가들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한 지속적 혁신이 세계적 신약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2012년 로슈는 70억 유로, 노바티스는 69억 유로를 연구개발에 투자해 세계 제약회사 중 가장 많은 돈을 연구개발에 쏟았다.

김 사장은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매출액 1위뿐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업계 1위를 할 수 있도록 새롭게 변화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임기를 반 년 남겨두고 있다. 매출을 제외하고 연구개발 부문 등에서 1위에 오르기에 시간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