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이 용퇴를 결정하고 44년 LG맨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권 부회장은 LG그룹에서 구광모 회장 체제를 안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전문 경영인으로 꼽힌다. 또 LG에너지솔루션을 맡아 북미시장 선점을 위한 기반을 닦으며 배터리사업을 그룹의 확실한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용퇴하는 LG맨 권영수 ‘구광모체제’ 다지고 배터리 반석에, 향후 거취도 눈길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이 용퇴 뒤 거취가 주목된다. 


재계에서 능력과 관록을 겸비한 전문 경영인으로 꼽히는 만큼 퇴임 뒤 새 출발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2일 이사회를 열고 2024년 정기 임원인사와 관련된 안건을 의결했다. 권영수 부회장이 맡고 있던 최고경영자 자리는 김동명 자동차전지사업부장이 이어받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권 부회장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아름다운 용퇴’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권 부회장은 44년 동안 LG그룹에서 전자, 디스플레이, 화학, 통신, 배터리 등 주력 사업들을 이끌어왔는데 LG에너지솔루션을 끝으로 LG그룹 울타리를 떠나게 됐다.

이번 인사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세대교체에 방점을 찍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용퇴라는 형식을 빌지만 실질적으로 경영부진의 책임을 물어 물러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권 부회장은 LG에너지솔루션에서 상당한 경영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권 부회장이 수장을 맡은 뒤 북미시장 선점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고 2차전지 업황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도 양호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권 부회장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넘겨받기 전부터 부회장으로 있었던 최고위급 전문 경영인이다. 

구광모 회장의 선친인 구본무 회장체제에서 부회장을 맡았던 인물들은 권 부회장을 제외하면 이미 모두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다. 권 부회장까지 용퇴하기로 하며 LG그룹 세대교체도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구본무 회장의 사람이었던 권영수 부회장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다는 점에서 구광모 회장이 경영 멘토로서 권 부회장을 남달리 신뢰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구광모 회장은 2018년 구본무 선대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그룹 경영권을 넘겨 받는 과정에서 권 부회장을 자신과 함께 지주사 LG의 각자대표체제를 꾸릴 조력자로 선택하기도 했다. 

권 부회장은 구광모 회장의 경영수업을 책임질 멘토이자 1978년 출생인 젊은 오너 경영인의 부족한 경영 경험을 채워줄 보좌역이었던 셈이다. 

LG그룹에 구광모체제가 안착된 데는 권 부회장의 공헌이 작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을 맡아 북미시장 선점 기반을 마련하고 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확실히 자리 잡게 한 공로도 상당 부분이 권 부회장의 몫으로 여겨진다.

권 부회장이 2011년 수장을 맡은 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자체 공장과 완성차기업과 합작공장을 운영하며 현재 미국 내 연간 60GWh 생산체제를 구축해 놓았다. 미시간주 단독공장이 연산 20GWh, 오하이오주 GM과 합작공장이 연산 40Wh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조만간 테네시주에 GM과 합작공장을 가동해 생산능력 50GWh를 추가할 예정이다. 게다가 최근 토요타와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으며 미시간주 단독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을 추가로 20GWh 확대해 연산 40GWh 생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밖에 애리조나주 단독공장(연산 43GWh), 테네시주 GM 합작공장(50GWh), 오하이오주 혼다 합작공장(40GWh),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합작공장(30GWh), 캐나다 온타리오주 스텔란티스 합작공장(49GWh) 등의 증설계획을 고려하면 LG에너지솔루션은 2025~2026년에 북미에서만 연산 342GWh 생산체제가 완성된다.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게 북미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는 SK온조차도 2025년 연간 185.5GWh의 생산체제로 LG에너지솔루션과 견주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올해 들어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생산시설을 통해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을 1~3분기 누적 4267억 원 거둬들였다. 4분기까지 합산하면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에서 세제혜택만으로 7천억 원 넘는 이익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권 부회장이 추진했던 공격적 북미 증설 효과가 천문학적 규모의 세제혜택으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증설 계획이 앞으로 더 공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인 만큼 북미에서 거둬들이는 영업이익과 세제혜택 규모도 계혹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공개(IPO)를 통한 주식시장 상장도 권 부회장이 매듭 지은 일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권 부회장 합류 전에도 기업공개를 추진하려 했지만 고객사인 GM의 볼트EV 리콜사태가 발생하며 상장 일정을 미룬 적이 있다.
 
[Who Is ?] <a href='https://m.businesspost.co.kr/BP?command=mobile_view&num=330173' class='human_link' style='text-decoration:underline' target='_blank' data-attr='MO_Article^EditorChoice^권영수'>권영수</a>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이 2022년 1월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LG에너지솔루션 신규 상장 기념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LG에너지솔루션 >

권 부회장은 배터리 화재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해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작업을 마무리한 뒤 10조2천억 원의 투자금을 확보했고 이는 대부분 북미를 비롯한 국내외 증설을 위해 활용됐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의 시가총액은 100조 원 안팎으로 시가총액 400조 원을 넘는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권 부회장이 44년 동안 입었던 LG맨의 옷을 벗고 야인이 됐지만 그의 오랜 경험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물밑에서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권 부회장에 앞서 지난해 용퇴를 결정했던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도 지금 바이오기업 휴젤 회장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권 부회장은 포스코그룹 차기 회장 후보군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명되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임기 만료를 앞둔 만큼 재계 안팎에서는 능력과 관록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권 부회장이 최정우 회장의 후임으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포스코그룹의 사업구조에서 무게 중심이 기존 철강에서 배터리 소재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글로벌 배터리 사업 경험이 있는 경영자가 차기 회장에 적합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권 부회장은 1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회 배터리산업의 날’에서 취재진이 포스코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느냐고 묻자 “말도 안 된다”고 대답한 바 있다. 

당시 권 부회장은 LG에너지솔루션 대표 연임 여부와 관련해서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주주들이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금은 거취에 변화가 생긴 만큼 권 부회장 스스로도 포스코그룹 차기 회장에 도전할 생각을 보다 진지하게 고민할 여지가 커졌다.

권 부회장은 1957년 출생으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금성전자(현 LG전자) 기획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해외투자실 부장, 미주 법인 부장, M&A추진팀장과 금융담당을 거쳤다.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등을 거치며 그룹 내 주요 계열사 경영자를 두루 거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