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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중진 험지 출마 요구에 손사레, 국민 여론 찬성 높지만 '죽을 자리' 두려움

이준희 기자 swaggy@businesspost.co.kr 2023-11-1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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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중진 험지 출마 요구에 손사레, 국민 여론 찬성 높지만 '죽을 자리' 두려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경남 함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식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장제원 페이스북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영남 중진 의원들을 향해 수도권 험지 출마를 강하게 종용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여전히 부정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중진 의원들이 험지 출마를 기피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과거 험지 출마에 도전한 선배들의 성적표가 처참했기 때문이다.

19일 정치권에서는 중진 의원들에 대한 험지 출마 압박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험지 출마 대상으로 꼽히는 인사들은 여전히 요지부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요한 위원장은 중진들을 향한 발언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13일 JTBC 장르만 여의도 인터뷰에서 특단의 대책을 예고하는가 하면 15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소신껏 맡은 임무를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영남 중진·당 지도부·친윤석열계(친윤) 의원들은 불출마 선언이나 수도권 험지 출마 권고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 친윤계로 꼽히던 장제원 의원은 11일 여원산악회가 경남 함양에서 개최한 15주년 기념식에서 “알량한 정치 인생 연장하면서 서울 가지 않겠다”라며 “사상 발전의 꿈을 완성하는 업적 하나면 족하다”고 수도권 출마에 선을 그었다.

5선 주호영 의원은 8일 대구 수성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의정 보고회에서 “대구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면 대구에서 마치는 것”이라며 “서울로 가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주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40년째 미국 상원의원을 했는데 지역구를 옮겼나.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지역구를 옮겼나”고 반문하며 “우리나라만 이상한 발상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지역에서 지지받고 잘하는 사람이 (지역구를) 뭐 하러 옮기나”며 “절대 (수도권) 갈 일 없다”고 강조했다. 

김기현 대표 역시 16일 "당 대표 처신은 당 대표가 알아서 결단할 것"이라며 험지 출마 등 요구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중진 의원의 험지 출마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원욱 의원은 8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이재명 당 대표가 먼저 험지 출마를 결정해야 하고 이 대표 주변 조정식 사무총장, 안민석·우원식·정성호 의원(4선) 등 친명 의원부터 결단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14일에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 대표를 향해 "안동 출마가 최적격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친명 성향인 김두관 의원도 16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재명 대표가 (험지 출마를) 결심하는 것 자체가 총선 승리의 최대전략"이라고 주장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저에게도 (험지 출마 등) 구체적인 요구가 있다면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며 “지도부는 그럴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야당 내에서도 험지출마론이 힘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16일 기자들과 만나 "아무런 전략이나 구도도 없이 누가 어디로 가라고 얘기하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계 좌장 격인 정성호 의원은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당대표가 안동에 가게 되면 거기서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당대표를 안동에 가둬두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중진 의원들이 험지 출마를 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과거 선배들의 험지 출마가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험지에 출마해 살아 돌아오는데 성공한 인물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사실상 유일하다. 정 전 총리는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에서 4선을 내리 역임한 뒤 2012년 종로로 지역구를 옮겨 친박 후보였던 홍사덕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2016년에도 종로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2012년 19대 총선에서 정 전 총리처럼 지역구를 옮겼던 정진석 새누리당 의원(서울 중구),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서울 강남 을), 천정배 민주통합당 의원(서울 송파 을) 등은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후에도 지역과 밀착해 충분한 호흡을 하지 않은 채 뛰어들어 선거 참패로 이어진 사례가 많다. 지역 기반을 충분히 닦지 않은 의원의 험지 출마가 사실상 사지로 몰아넣는 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21대 총선에는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의 뜻에 따라 험지에 출마했던 유정복 전 인천시장(인천 남동갑)·이혜훈 의원(서울 동대문을), 이종구 의원(경기 광주갑) 등 다선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당시 선거에선 서울 종로에 출마한 황교안 대표와 세종을에 출마한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역시 상대 후보에게 패배했다.
 
여야 중진 험지 출마 요구에 손사레, 국민 여론 찬성 높지만 '죽을 자리' 두려움
▲ 2020년 미국 지방·주·하원의원 경선을 앞두고 각 후보자의 선거 표지판이 전시된 모습이다. < Bookings.edu >

여기에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정치권 사례를 봐도 같은 지역구에서 장기간 의원 활동을 하는 일이 많다.

한국이 정치 시스템을 모방한 미국에서는 미시간주 연방하원의원이었던 존 딘젤(John Dingell Jr.)이 30선(한국 기준 15선)을 하기도 한 곳이다. 주호영 의원이 언급했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델라웨어주 상원의원 6선(36년)으로 오랜 의정활동 기간을 거쳐 대통령이 됐을 정도로 한 선거구 혹은 주에서 다선을 하는 것은 보편적이다.

미국 의원들이 선거구를 바꿔서 출마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설령 그러한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선거구 지형 변화로 근처 선거구에 출마하는 배리 무어(Barry Moore) 미국 공화당 의원과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에서 중앙당이 중진의원들에게 험지에 출마하라는 요구하는 사례도 없다. 미국은 정당공천제도가 아닌 완전국민경선제(Open Primary)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각 후보자들이 공천권을 두고 각개전투를 펼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가 없는 미국 선거제도에서 중앙당은 후보 공천권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 의원은 중앙당보다는 지역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의정활동을 할 뿐만 아니라 지역구민의 요구가 당론보다 우선시 될 정도로 지역중심주의적 성격을 보인다. 이와 같은 이유로 중진 의원의 험지 출마와 같은 사안이 테이블에 오를 일이 없는 것이다.

일본은 미국보다 한술 더 떠서 지역구 세습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현재 일본 자민당 의원의 대략 30%가 세습 정치인으로 구성돼 있다. 2022년 8월 제2차 기시다 내각이 출범했을 때 친족으로부터 직접 지역구를 물려받은 세습 국회의원은 각료 20명 가운데 거의 절반인 9명이나 된다. 또 1989년 이후 역대 총리의 70%가 세습의원이다.

일본 내에서 가미쿠보 마사토 리쓰메이칸대 정책과학부 교수 같이 학계에서도 세습정치에 대한 비판 의견을 개진하고는 있지만 일본 국민이 전반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크지 않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하고 있다.

다만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과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은 중앙당에서 지역구 후보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면 출마 자체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지역세를 등에 업은 후보자가 중앙당과 기싸움을 펼친 뒤 손익계산에서 승리한 쪽이 공천권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 차원에서 손익계산을 한 뒤 특정 지역구에 전략공천을 하더라도 공천을 받지 못한 기존 국회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20대와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이다.

여야를 떠나 중진의 험지 출마에 호의적인 국민 여론은 변수가 될 수 있다.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가 12~13일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1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남권 중진 의원들에게 험지 출마나 불출마를 요구한 국민의힘 혁신위를 두고 응답자의 53%가 ‘적절한 요구’라고 의견을 나타냈고 27%만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바라봤다. 같은 조사에서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 의원들을 향한 혐지 출마 요구에도 47%가 '적절한 요구'라고 응답해 적절하지 못하다(35%)라는 응답을 앞섰다.

미디어토마토가 11~12일 전국 성인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1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험지 출마 요구에 각각 56.9%, 54.1%가 찬성 의견을 나타내 절반 이상이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용된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미 험지 출마를 결심한 의원들도 없지 않아 내년 총선에서 이들의 선거 결과도 주목받는다.

서울 중구·성동갑에서 3선을 지낸 홍익표 원내대표는 지난해 일찌감치 민주당에서 험지로 손꼽히는 서초을 출마를 발표하며 서초을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부산 해운대갑에서 세 번 연속 당선된 하태경 의원은 지난달 초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적 기득권을 내려놓고 서울에서 도전해 승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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