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개 식용 종식을 위해 모처럼 뭉쳤다.

국회에서 개 식용 문제와 관련한 논의가 전개된 지 48년이 흘렀다. 여야가 힘을 모은 만큼 이번에 개 식용 문제에 종지부를 찍게 될지 주목된다. 
 
국회 개고기 논란 역사 반 세기, 여야 개 식용 종식 입법에 모처럼 뭉쳤다

▲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이 8월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모임’ 발족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이헌승 의원 블로그>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과 야당은 최근 개 식용을 실질적으로 막기 위해 손을 잡고 초당적 모임을 만드는 등 구체적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올해 10월까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뒤 올해 안으로 ‘개 식용 종식’ 관련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관련 부처 설득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정기국회 입법 여부 등 구체적 일정을 밝히기는 어렵다"면서도 "연내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가 매우 확고한 상태"라고 말했다.

동물복지국회포럼 소속 의원을 주축으로 한 여야 의원 44명은 24일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모임을 발족했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과 박홍근·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헌승 의원은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 식용 종식을 위한 노력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변화의 시작이자 개인의 선택권을 넘는 국격의 문제가 됐다”며 “초당적 의원모임은 사회적 논의기구의 재가동과 결실을 위해 정부에 힘을 보태면서 국회에서도 유리한 입법환경을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개 식용을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 모임은 발족 전날인 23일 박홍근 공동대표의 대표발의로 개 식용 종식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앞으로 △조속한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통한 정부의 개 식용 종식 로드맵 수립과 사회적 논의기구의 실질적인 운영 촉구 △여야 각 정당 지도부와의 간담회 등을 통한 입법 환경 조성 △정부차원의 사회적 논의가 답보상태를 거듭할 경우 국회의 주도적인 역할 모색 △공청회와 토론회 개최 등 국민적 동의 확대 활동 전개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려동물 인구 확대와 동물복지를 향한 관심 증대에 따라 개 식용 문제는 그동안 정치권에서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2022년 20대 대통령선거에선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이 개 식용 금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이번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종식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건희 여사는 지난해 서울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경제 규모가 있는 나라 가운데 개를 먹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뿐”이라며 “(윤석열 정부 기간에) 동물학대와 유기견 방치, 개 식용 문제 등에서 구체적 성과가 나오길 바란다”며 개 식용 종식과 관련한 관심을 밝혔다.

김건희 여사는 올해부턴 개 식용 금지를 위한 행보도 시작했다. 4월 청와대 상춘재에서 동물보호단체들과 비공개 오찬행사를 열고 “개 식용을 정부 임기 내에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그것이 저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7월7일 서울 용산어린이정원에 위치한 용산서가에서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이자 유엔평화대사인 제인 구달 박사를 만나 동물권 증진과 개 식용 문제와 관련해 논의하기도 했다.

김 여사와 구달 박사는 개 식용 과정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학대가 다른 동물들에게도 적용되고 인간의 존엄 또한 위협하는 상황과 관련한 우려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개고기 논란 역사 반 세기, 여야 개 식용 종식 입법에 모처럼 뭉쳤다

▲ 김건희 여사(오른쪽)와 제인 구달 박사가 7월7일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에서도 개 식용 금지를 위한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어 이들 법안을 중심으로 향후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헌승 의원이 8월 대표발의한 ‘개 식용 금지 및 폐업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 한정애 의원이 6월 대표발의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안’을 포함해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축산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 제출됐다.

이미 4월27일부터 동물의 임의도살을 막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다. 해당 법안을 둘러싸고 개 도축 행위를 사실상 금지한 것이라는 동물보호단체의 주장과 축산법상 ‘가축’인 개의 식용 목적 도축이 불법이라는 것은 지나친 확장해석이라는 육견협회의 주장이 대립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개 식용 논의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국회에서 개고기 관련 법제화가 최초로 진행된 것은 1975년이다. 다만 이때 법제화는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는 방향이 아니라 개고기 식용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넣기 위한 것이었다. 국회는 지금의 축산물 위생관리법인 축산물 가공처리법을 개정해 정부 차원에서 개 도살과 위생 점검을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동물단체와 국제 여론 반발이 심해지자 국회는 1978년 개고기를 축산물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개를 가축으로 규정한 축산법은 그대로 둬 식용 개 농장 근거 및 논쟁의 불씨를 남겼다. 

1980년대는 개 식용 금지에 힘이 실렸다. 서울시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1984년 보신탕을 ‘혐오식품’으로 규정하고 서울시내에서 개고기를 파는 것은 금지하는 고시를 내렸다.

반면 사법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민사지방법원은 1991년 개고기는 식품위생법시행규칙의 입법취지에 어긋나지 않아 국민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인정되는 식품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판례를 남기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개 식용 논란이 다시 한 번 불붙었다.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2001년 11월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를 겨냥해 “한국인은 야만인”이라고 비판한 것이 역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에 따라 문화상대주의의 사례로 대한민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가 언급되기도 하며 개고기 식용 옹호에 힘이 쏠렸다.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01년 이른바 ‘개고기 합법화 법안’으로 불렸던 축산물 가공처리법 개정안을 발의해 축산물 가공처리법에도 개를 가축으로 추가하고 도축과 유통을 양성화하려고 시도했다. 다만 해당 법안은 반대 의견을 설득하지 못해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개 식용 문제는 그 뒤로도 옹호와 반대로 의견이 나뉘어 갈등을 계속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개 식용을 종식하겠다며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위원회 출범을 시도했다. 하지만 육견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개 식용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며 한걸음 물러났다.

활동 기간을 6개월로 둔 채 시작된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는 윤석열 정부 들어 활동 기한을 무기한 연장했다. 현재에도 사회적 합의를 위해 회의를 열고 있다. 

다만 2년 가까운 활동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원회 성과가 아쉽다는 평가도 들린다.

정황근 농림축신식품부 장관은 5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개 식용 위원회에서 식용금지 결론을 내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위원회가 진행되는 걸 보면 답보 상태”라며 “위원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