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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effect] 키르기스스탄에 '화장실'을, 우리 기업들 고민 좀 해보시라

마녀체력 withbutton@icloud.com 2023-07-20 09: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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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effect] 키르기스스탄에 '화장실'을, 우리 기업들 고민 좀 해보시라
▲ 먹는 공간은 꽤 깨끗하게 꾸며 놓은 식당마저 와이파이는 버젓이 되면서도, ‘싸는 공간’은 험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연이 아름답고 음식도 맛있기 그지없는 키르기스스탄에 화장실이 들어선다면, 또 다시 가고 싶은 ‘완벽하고 멋진’ 여행지로 뜨지 않을까.  <사진 필자 제공>
[비즈니스포스트] 할아버지와 아버지 뒤를 이어, 나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0년대에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다.(내가 다니던 시절엔 성동구의 국민학교였다만.) 그때는 용변하는 곳을 가리켜 다들 ‘변소’라고 불렀다.

학교 변소는 당연하게도 ‘푸세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 2학년 조그만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그 안에서 일을 보고 뒤처리를 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명절 때면, 전날부터 식구들이 성동구 화양동에 있던 할머니 댁에 가서 잤다. 허름한 한옥이었는데, 본채와 멀리 떨어져 있는 ‘뒷간’을 써야만 했다. 어쩌다 낮에는 한두 번 갔지만, 밤에는 겁이 나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요강’을 슬쩍 밀어 주셨다. 무서움보다 부끄러움을 감수하기가 훨씬 쉬웠다.

당시 우리 가족은 번듯한 양옥 1층에 세 들어 살았다. 확실히 기억나는데, 무릎을 굽히고 쭈그려 앉는 ‘화변기’였다. 하얀 색 변기였고, 바닥도 타일로 되어 있었다.

다만 다른 세대와도 공유했기에, 엄마가 늘 깨끗이 청소하셨다. 휴지는 따로 없었다. 얇은 습자지 같은 일력을 찢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구긴 다음 썼던 것 같다. 아니면 신문지나 누런 갱지를 쓰기도 했고.

1980년대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때도 여전히 변소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화장실 청소 같은 벌을 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가.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아마도 수세식 화변기를 썼던 것 같다. 대학 때 지방으로 농활을 떠난 여자 선배가 막걸리에 취해 변소에 빠졌다는, 차마 웃지 못 할 실화가 한동안 떠돌기도 했다.

신혼 때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시고모님 댁에 인사를 드리러 간 적이 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변소에 들어갔는데, 밑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엄마야!” 소리와 함께, 빨간 휴지를 쥔 손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 제대로 옷을 추스르지도 못 한 채 튀어나왔다. 알고 보니 집에서 키우는 흑돼지, 아니 그야말로 인간의 변을 먹는 똥돼지였다.

내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이 글을 쓰면서 남편과 아들에게도 물어봤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남편 또한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까지도 ‘푸세식’이었단다. 2000년대에 서울에서, 그것도 나름 사립 초등학교를 다녔던 아들은 ‘화변기’를 썼다고 증언한다.

되짚어 보니 저학년 때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지를 홀랑 벗어던지며 화장실로 직행했던 기억이 난다. 쭉 서울에 살아온 우리 가족도 이 정도였으면, 대체 지역 사정은 어땠을지 짐작을 못 하겠다.  

2004년에 도쿄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두 번째 방문이라, 황궁이라든가 아름다운 공원, 복잡한 거리 풍경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내가 가장 감동을 먹은 곳은 따로 있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성지로 불리던 롯폰기 힐즈를 구경하러 갔는데, 말 그대로 ‘화장실’을 만났다. 넓고 깨끗한 공간에 향기가 풀풀 나고, 칸마다 비데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길 누구나 공짜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니! 과연 문명국은 이래서 다르구나 싶었다.

지금은 대한민국도 (화장실만큼은) 어디에 뒤지지 않는 문명국이 되었다. 예전에는 고속도로 휴게실이나 관광지를 가면 냄새가 나고 불결했다.

이젠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지하철 화장실마저 깨끗하게 관리되어서, 더 이상 불쾌해질 염려가 없다. 백화점이나 큰 빌딩 화장실이 대중에게 열려 있기에, 어디서든 걱정할 필요조차 사라졌다.
 
[마녀체력 effect] 키르기스스탄에 '화장실'을, 우리 기업들 고민 좀 해보시라
▲ 얼마 전 카자흐스탄을 거쳐 키르기스스탄에 다녀왔다. 만년설이 쌓인 톈산 산맥을 북에서 남으로 빙 둘러가면서, 장장 2700킬로미터를 차로 달렸다. 창밖으로 내내 펼쳐지던 원시의 광활한 풍경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사진 필자 제공>
신성한 매체 칼럼에서, 갑자기 웬 화장실 타령이냐고? 정말 오래간만에, 여행을 가서 ‘변소’ 갈 걱정에 맘 편히 먹지 못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카자흐스탄을 거쳐 키르기스스탄에 다녀왔다. 만년설이 쌓인 톈산 산맥을 북에서 남으로 빙 둘러가면서, 장장 2700킬로미터를 차로 달렸다. 창밖으로 내내 펼쳐지던 원시의 광활한 풍경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뿐인가. 사막 사이로 끝도 없이 뻗은 차도를 지나는 동안 신비한 낙타며 염소, 양, 말, 소 할 것 없이, 목동이 모는 모든 유목 짐승 떼를 마주쳤다.

해발 3400미터까지 까마득한 산맥을 굽이굽이 오르내리는 비포장도로에다, 하루에도 날씨가 오락가락 변덕을 부렸다. 덕분에 무지개를 세 번이나 보는 행운을 누리면서, 평생 한 번 해볼까말까 한 천혜의 자연을 만끽했다.

다만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변소’가 문제였다. 아예 문명이 없는 황량한 시골이라면 그러려니 했겠다. 하지만 먹는 공간은 꽤 깨끗하게 꾸며 놓은 식당마저 와이파이는 버젓이 되면서도, ‘싸는 공간’은 험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미 문명의 화장실에 20년 이상 길들여진 중년 ‘여성’이 쩔쩔 매는 모습을, 식당 점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같이 여행을 간 친구들은 음식 맛보다, 변소 상태로 식당을 평가하기로 했다.  

비슷한 환경을 지닌 히말라야나 몽블랑, 노르웨이 트래킹을 해봤지만, 화장실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 자연이 아름답고 음식도 맛있기 그지없는 키르기스스탄에 화장실이 들어선다면, 또 다시 가고 싶은 ‘완벽하고 멋진’ 여행지로 뜨지 않을까.

비단 여행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 차원이나 경제적 효과 면에서 가능성이 없을지 궁금하다. 사람들이 한번 ‘화장실’ 맛을 보면 다시 ‘변소’로 돌아가긴 힘들 테니, 불티나게 수요가 늘 것 같다.

'인사이드 빌 게이츠' 다큐멘터리를 보면, 빌 게이츠가 아프리카의 비위생적인 변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해결 방식을 제안한다. 변을 태워 그 에너지로 깨끗한 물을 만드는 방식도 탄생했다. 그것이 수많은 질병을 없애는 원초적 해결법이기 때문이다.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를 나가 보면, 비누거품으로 냄새를 제거하는 깨끗한 임시 화장실도 괜찮은 대안 같다. 빌 게이츠처럼은 아니더라도, 이미 문명국의 대열에 올라선 우리나라 기업들이 고민 좀 해보시라. 

하긴 변소 문제가 해결되면, 이 원시의 자연에도 금세 세상 사람들이 달려와 들끓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변소가 무섭고 더러워서 아예 가지 못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처럼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소수의 사람들만 경험하기엔 황송하리만치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사랑하다 보면 아끼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마녀체력
 
작가 이영미는 이제 ‘마녀체력’이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27년간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살았다. 한국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대편집자란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책상에 앉아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지만, 갈수록 몸은 저질체력이 되어 갔다.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15년간 트라이애슬론으로 꾸준히 체력을 키워 나갔다. 그 경험담을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주제로 묶어 내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출판 에디터에서 작가로 변신했으며 <마녀체력> <마녀엄마> <걷기의 말들>을 썼다. 유튜브 지식강연 '세바시'를 비롯해 온오프라인에서 대중 강연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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