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토론회'에 참석한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의장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노동계의 숙원사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민주당이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과 함께 연 토론회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김성주 정책위 수석부의장, 우원식 의원, 김영진 의원, 노웅래 의원, 윤건영 의원, 진성준 의원, 양정숙 무소속 의원 등이 참석했다.
여당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도 노동조합(노조)와 전문가를 불러 관련 입법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관계자는 물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노조대응이나 여당의 입법의도와 관계없이 법안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자들은 민주당이 논의를 통해 입법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현실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정착될 수 있도록 ‘산별노조(산업별 노동조합)’ 확대 등 제도적 보완을 하는데 주력할 것을 요구했다.
이재명 대표는 사회 통합을 이루고 노동의욕을 높이기 위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같은 현장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음에도 비정규직 또는 다른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옳지 못한 일”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정규직보다 추가 임금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이 정규직 노동자의 54%에 불과한 참혹한 현실을 고쳐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발제를 맡은 권오성 성신여자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최근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두고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자 노동개혁의 과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번 국민의힘의 법안발의도 윤 대통령의 노동개혁 과제를 추진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올해 1월 전·현직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들과 간담회에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이 크게 차이 나고 차별을 받는다면 이는 현대 문명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런 것들을 바로 잡는 게 노동개혁”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5월31일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현행 근로기준법 제6조를 보완해 차별 금지 기준에 ‘고용형태’를 추가한 것이 핵심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차별금지 기준으로 성별과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을 명시하고 있다.
김 의원은 개정안에서 ‘사용자는 근로자의 근로계약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제6조 2항을 신설하고 제6조의2도 새로 만들어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보장’에 관한 규정을 명문화했다.
권 교수는 “만약 법안 대표발의자가 민주당 의원이었다면 환영받았을 것”이라며 “야권의 노란봉투법에 대응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지만 내용만 보면 반대할 법안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김 의원이 법안 발의 전 한국노총에 자료를 요구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김 의원은 2020년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으로 근무한 바 있다.
유 본부장은 “작년 말쯤 한국노총에 연락이 와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관련 자료를 요구해 2003년 민주노총 등과 세미나를 했던 자료를 제공했다”며 “(제공한) 자료 내용이 김 의원의 법안에 반영된 만큼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 바라봤다.
다만 토론자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법 조항에 명문화시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대표적으로 현재 개별 기업노조가 사용자와 협상하는 상황을 넘어서 동일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결성한 산업별 노조(산별노조)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산별노조 체계·직무급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은 따로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라며 “지금처럼 개별 기업노조가 아니라 산업별, 지역별, 업종별 노조가 조직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별노조와 대화를 통한) 사회적으로 결정된 직무급이 없는 상태에서 회사 마음대로 직무급을 결정하게 된다면 사용자의 임금결정 재량권을 강화하는 것에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유 본부장도 개별기업 노조협상만 활성화 돼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가 이뤄지더라도 같은 사업장 안에서 직무를 비교할 대상이 있을 때만 적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별노조의 정착 외에 △임금정보 공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한 명확한 고용형태 규정 등도 보완해야 할 점으로 제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점도 확인됐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도구가 아니라 비정규직 임금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됐을 때 전경련, 경총 등 사용자 단체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우려했다.
대기업들이 산별노조의 제도적 정착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낼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대기업을 포함한 주류 사용자들은 기업별 노사관계를 원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임금) 지불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노조의 요구에 어느 정도 보상을 하면서 기업별 노조를 유지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대기업들에게 기업을 넘어선 초기업들 사이의 조율기제에 포함될 것을 요구한다면 굉장한 거부감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반대할 때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한정된 노동비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폭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총선을 앞둔 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는 데 부담을 느낄 가능성도 떠오른다. 특히 MZ세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새로고침협의회’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부정적 태도를 보일 때 대응할 수 있을지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를 두고 민주노총은 내부의 사례를 들어 MZ세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란 견해를 보였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민주노총 소속 다음·카카오·네이버 노조는 MZ노조라 할 수 있는데 이 MZ 노조들은 회사가 창출한 모든 이익은 구성원 모두가 나눠가져야 된다고 먼저 선포했다”고 설명했다.
우원식 의원은 토론을 마무리하며 “동일임금 동일노동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단계별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입법에 잘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