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상황에서 여야 갈등이 심화하면서 야당이 밀어붙인 쟁점법안에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은 국회 문턱을 넘는 법안에 반대 명분을 쌓기 위해 전략적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5월30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과 관련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쟁점법안 강행처리를 놓고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을 연달아 청구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5월30일 노란봉투법안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의 본회의 직회부 절차를 앞두고 헌법 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요청하고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다.
국민의힘은 법제사법위원회가 쟁점법안을 놓고 논의를 한창 진행하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법안을 직회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국회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권한쟁의심판 청구 뒤 기자들과 만나 “지난 2월 노란봉투법안이 법사위로 넘어오고 정상적으로 심사를 두 차례 진행했다”며 “야당들의 법사위 ‘패싱’은 국회법을 뛰어넘는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60일이 넘도록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기에 정당한 절차라고 보고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에 회부된 법률안을 이유 없이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심사대상 법률안의 소관 위원회 위원장은 간사와 협의해 법률안의 본회의 부의를 서면으로 요구할 수 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월24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사위에서 60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니 환노위에서 (직회부 요구의 건을) 처리하는 게 원칙에 맞는다”며 “수차례 토론도 하고 공청회까지 했는데 왜 안 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입법 권한쟁의심판 청구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이른바 '검수완박'법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 법률이 적법절차원칙 및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다투는 두 개의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올해 4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방송법 개정안)'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과 관련해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본회의 직회부 정도를 문제 삼은 방송법안과 노랑봉투법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다. 앞서 3월 헌법재판소가 검수완박법의 입법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법을 유지하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주도한 검수완박법 권한쟁의심판은 일부 인용되긴 했으나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으나 입법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삼권분립원칙에 따라 입법부의 입법권을 존중한 것으로 읽힌다.
▲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왼쪽)이 5월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 상정에 대해 전해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목적이 승소가 아니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쟁점법안 입법강행이 국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여론전을 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방송법안과 노란봉투법안의 본회의 표결 때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한쟁의심판 청구 역시 여론전의 일환으로 풀이가 된다.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그 절차를 검증 받는 과정을 밟는 것만으로도 여론전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국민의힘 권한쟁의심판 청구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본회의 직회부 등 쟁점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것을 두고 민주당이 협치를 포기하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유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편다.
민주당의 목적이 법안 통과가 아니라 윤 대통령이 민생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5월30일 “노란봉투법안이 민생법안이라면 왜 민주당 정권 때 처리하지 않았느냐”며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도록 해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을 지우고 민주당은 노동계 표를 얻겠다는 심산”이라며 민주당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