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소신인 '재정준칙' 도입을 두고 국회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재정준칙은 정부의 재정정책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재정준칙이 경기침체 상황에서 서민들을 지원할 정부 재정정책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찮다. 야당인 민주당은 확장재정 기조를 뚜렷이 보이는 만큼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소신 '재정준칙' 국회로, 민주당 반응 미적지근해 도입 미지수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진하는 재정준칙 도입이 국회 논의과정에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3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21일 열리는 국회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에서 정부가 내놓을 재정준칙 수정안을 두고 논의를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재정적자 등 국가 재정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정부여당은 국가 부채가 1천조 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재정건전성 관리를 위해 재정준칙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기재부)의 제안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할 때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와 관련해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 재정준칙 공청회에서 "코로나19와 공급망 위기 때문에 지난 5년간 국가채무가 416조원이 늘었다"며 “가정에서도 소비 지출액에 실링(상한)을 두는데 국가에서조차 안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경기침체 국면에서 정부가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계를 지원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사실상 재정준칙 도입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양기대 의원은 14일 공청회에서 “정부 재정건전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양호한 편이지만 가계부채는 하위권"이라며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분들을 위해 재정을 더 풀어서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태호 의원도 “복합적 경제위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재정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재정준칙을 지금 논의하는 것 자체가 적합하지 않고 경제를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설득하기 위해 정부에 재정준칙 수정안을 요구했으나 민주당은 급하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기재위 간사를 맡고 있는 류성걸 의원은 15일 국회 기재위 회의 도중 기자들과 만나 “(정부에) 다음에는 의결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안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기재위 간사를 맡고 있는 신동근 의원은 같은 날 “(재정준칙 도입이)당장 급한 것도 아니다”라며 유보적 입장을 고수했다. 

재정준칙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재정준칙 도입에 엇갈린 견해를 내놓고 있어 여야 의견을 모으기는 쉽지 않은 상황으로 여겨진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 별로 없다”며 “재정준칙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에 대부분 (나라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한국의 GDP 대비 순채무비율은 다른 선진 경제권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낮다”며 “엄격하게 60%, 3% 룰을 지키는 과정에서 소극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면 인구구조 문제 등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재정 지속가능성에 적신호가 올 수 있다”고 반박했다.

재정준칙은 기재부 관료 출신인 추 부총리의 오래된 소신이다. 추 부총리는 기재부 장관에 취임하기 전부터 '재정준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추 부총리는 초선 의원이었던 2018년 7월 재정준칙 도입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선에 성공한 뒤 2020년 제21대 국회에서는 자신의 ‘1호 법안’으로 재정준칙 설정을 법제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내놨다.

그는 기재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에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재정운영이 필요하다”며 “재정준칙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2월22일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재정준칙 법안이 빠르게 처리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라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재정준칙 법안 처리에 협조를 요청했다.

기재부가 재정준칙 도입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다가 빈축을 사는 일도 발생했다.

2월12일 기재부가 발표한 '영국 예산책임청 의장, OECD 전문가 한국의 재정준칙 법제화 필요성 한 목소리' 보도자료에는 리차드 휴스 영국 예산책임청(OBR) 의장이 한국의 재정준칙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영국 예산책임청에 직접 확인해본 결과 '휴스 의장은 한국의 재정준칙에 대해 코멘트한 적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혀왔다"며 추 부총리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