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노동시간 늘리겠다는 정부와 저출산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모순

▲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떨어졌다. 사진은 2019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까지 떨어졌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인구 소멸 수준의 출산율이라 한다. 

골드만삭스는 2075년 한국 경제규모가 필리핀에게 뒤쳐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인구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자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열리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정부도 이달 중 저출산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육아 관련 재택근무 활성화와 출산휴가·육아휴직 연장 등의 방안들이 거론된다.

기존 백화점식 대책에서 벗어나 효과가 있는 것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계획이지만 실효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공무원이나 일부 대기업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의 제도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제도가 부족하다기보다 있는 제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의 청년층에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학창시절부터 무한경쟁을 경험한 뒤 어렵사리 취업시장을 통과해도 근로소득으로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후대비는 언감생심이다. 

낮은 수준의 남성 가사 분담 및 육아 참여, 수도권의 높은 집값, 공공 보육 및 돌봄 사각지대, 비싼 교육비 등을 고려하면 임신과 출산, 육아는 '있는 집 자식'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기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청년층이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는 결심을 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16년 동안 280조 원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산율이 곤두박질 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정부가 내놓을 저출산 대책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엔 다를까?

윤석열 대통령이 주로 비상근 장관급인 부위원장이 주재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직접 챙기겠다며 의지를 내보이는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청년층이 갖고 있는 미래의 불안감을 불식시킬 만한 파격적 현금지원 등이 나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올해 초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출산 시 대출 이자와 원금을 탕감해주는 헝가리의 출산 지원정책을 언급하자 대통령실은 '개인의견'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정색하며 선을 그었다. 현금성 지원이 아닌 사회서비스를 지원하는 현 정부 정책 기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랬던 대통령실이, 정부가 이제 와서 직접지원을 선택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더욱이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최대 현안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나오는 저출산 대책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며 현 주 52시간 근무제를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또는 11시간 연속 휴식 없는 64시간 근무제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육아와 관련해 제도적으로 근로부담을 덜어주는 방향과 상충되는 대목이다.

청년층이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 가운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어렵게 하는 노동 환경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저출산 대책은 청년 근로자의 노동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외신도 한국의 노동시간을 저출산의 한 요인으로 진단하는 형편이다. 이러한 목소리를 간과해선 안 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한국의 합계출산률이 발표된 뒤 "장시간 노동, 치열한 경쟁 사회의 교육 환경 등 가족 자원을 고갈시키는 보다 근본적 문제를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 정부 정책 기조대로라면 노동조건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게 된다. 청년들이 아이를 낳고 기를 환경을 조성하려면 이러한 모순부터 해소해야 한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