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는 것이고 그 이외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2월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서 그가 맡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에 대해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기자의눈] 금융사 인사에 말 보탠 이복현, '검사는 공소장으로' 잊었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이 최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사퇴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과거 검사 인생 20여 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윤 대통령의 말에는 당시 토론 과정에서 민감한 정치적 발언을 피하기 위한 의도도 들어있었겠지만 법조계에서 격언처럼 내려오는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한다’는 말의 원론적 의미도 그대로 담겼다고 볼 수 있다.
 
검사가 피고인을 기소하기 위해 법원에다 범죄사실을 담은 공소장을 제출한 이상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다른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당시 윤 대통령도 “제가 처리한 사건과 관련해 이러쿵저러쿵 정치적 평가를 하는 것은 직업 윤리상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검사로 살아왔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요즘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공소장으로만 말해왔던 검사 시절과 달리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다른 말을 많이 보태고 있다. 

이 원장은 21일 기자들과 만나 자리에서 물러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놓고 “역대 최대 성과를 거둔 신한지주의 성과에 대한 공과 외적 팽창 과정에서 초래된 라임사태 등 소비자보호 실패에 대한 종합적 자평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양보했다”고 치켜세웠다.

금융업계는 이 원장이 라임펀드 사태를 언급하며 조 회장의 ‘용퇴’를 언급한 것은 비슷한 펀드 문제가 있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사퇴 압박을 우회적으로 가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바라본다. 불필요한 오해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손 회장은 우리은행에서 라임펀드를 고객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했다는 이유로 금융위원회로부터 중징계인 문책경고 제재를 받았었다. 

물론 이 원장이 금융감독기관 수장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와 관련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직무범위를 놓고 볼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다만 금융회사의 인사가 임박한 시점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발언을 계속 내놓는다면 사안은 달라진다.

이 원장이 손 회장을 향해 사퇴 압박성 발언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원장은 한 달 전인 11월에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 생각한다”며 라임펀드 사태로 금융위원회의 문책경고를 받은 손 회장을 향해 압박을 가했다.

금융업계 일각에서는 이 원장의 발언에 초조함이 묻어있다고도 본다.

이 원장이 취임 이후 금융시장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내보여왔는데 금융당국의 제재에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가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다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과 관련해 조급한 마음에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손 회장이 최근 대법원에서 파생결합상품(DLF) 판매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은 징계에 대한 취소를 받아냈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라임펀드 징계 건도 법원에 판단에 따라 뒤집혀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손 회장에 대한 징계를 내린 이상 행정행위는 이미 끝이 난 것이다.

실제로 잘못이 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정부로부터 징계를 받은 사람은 법원에 얼마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정부가 법원의 판단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했다면 그 행정행위가 내려진 법적 근거나 절차의 미흡했던 부분을 철저하게 보강하고 향후 그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면밀히 감독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미 공소장에 해당하는 행정행위로 말을 다 한 다음 사법부의 판단까지 나왔는데 계속해서 발언의 강도를 높여가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의 차원을 넘어서 부당한 외압으로 비춰지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원장의 최근 발언들은 불과 한 달 전에 “이해관계의 외압에 맞서는 것은 (검사로) 20년간 전문성을 가지고 해왔던 분야다”며 “어떤 움직임이 있다면 무조건 막겠다”고 했던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당장 금융노조도 22일 성명서를 내고 “이 원장의 행보는 관치금융을 의심케 한다”며 “민간금융회사 인사에 대한 이 같은 ‘관’의 개입이 ‘관치’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꼬집었다.

이 원장이 과거 검사 인생 20여 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봐야하지 않을까 한다.

금융회사가 문제가 있다면 압박성으로 보일 수 있는 발언을 내놓기보다는 해당 금융회사의 시스템이나 구조적 문제를 명확하게 밝히고 확실하게 잘못된 점을 적발해내는 것이 금융감독기관 수장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오히려 "금융당국이 논의를 거쳐 제재 결정을 내린 것이 명확한 정부의 뜻이다"며 "그거면 됐지 더 이상 추가로 얘기할 것이 없다"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발언은 명쾌하다.

공소장에 해당하는 행정행위 제재가 나왔고 불필요한 오해를 가져올 다른 말은 보탤 필요가 없다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재무관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당당한 검사 출신다워 보인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