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Who] 이상민 이태원 참사 뒤늦은 사과, 책임론은 여전히 부글부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희근 경찰청장, 이 장관,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 겸 차장.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안전대비가 미흡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주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자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국가애도기간에 이번 사고의 정치적 이용 역풍을 고려해 몸을 사리고 있는 상황이라 정치권에서 책임공방이 이뤄질 때 이 장관을 향한 문책론이 고개를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이 장관은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 자리에서 “국가는 국민 안전에 무한책임이 있음에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최근 언론 브리핑 과정에서 논란이 된 자신의 발언과 관련해 “적지 않은 분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찰의 사고원인 조사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섣부른 추측이나 예단을 삼가야한다는 취지였지만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슬픔에 빠진 국민들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이날까지 이 장관의 발언을 질타하는 여야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앞서 “이태원 참사는 경찰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며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재난관리 주무장관이 사고 책임을 회피하기만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의 구조 책임이 분명했던 세월호 사고 등과 달리 이번 사고는 아직 어떤 주체에 책임을 물을지 분명하지 않다. 이 때문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최고위원회의 발언에서 정부 책임론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는 등 세월호 사고 때와 비교해 정치권의 공세는 온도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 장관 발언이 나오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참사를 책임 있게 수습해야 할 정부 인사들의 부적절한 말들이 국민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며 “연일 무책임한 면피용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이 장관은 이미 여당 안에서도 파면 목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직격했다.

전날 유승민 전 의원이 페이스북에 “며칠 애도와 수습만 하고 지나간다면 또 다른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이 장관부터 당장 파면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온 국민이 애도하는 기간이 끝나고 난 뒤 야권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책임에 대해 파상공세가 예상된다. 

지난 세월호 사고 발생 직후에도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민현주 대변인은 “지금 이 순간부터 여야 사이 모든 정쟁을 중단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이에 응답해 정치적 공격을 삼갔다.

그러나 사고 9일 뒤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이 세월호 침몰 상황에서 선거운동을 했다는 논란이 나오면서 정치적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적이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재난 상황 수습과 원인 분석, 대책 마련 등이 대통령의 중요 역할로 여겨지면서 이번 사고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 행보 하나하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 이 장관을 향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일 국회 원내대책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이 장관의 발언이 적절한 발언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애도 기간에는 정쟁을 지양하고 사고 원인이나 책임 문제는 그 이후 논의될 것이기 때문에 5일까지는 그 점에 대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사고 현장 대응이 미흡했음을 인정한 점도 변수다. 이 장관의 태도 논란을 넘어 안전대비가 소홀하지 않았다는 주장과도 대치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윤 청장은 1일 ‘이태원 사고 관련 언론 브리핑’을 열어 참사 직전 다수의 112 신고가 있었다는 점을 공개한 뒤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판단했다”고 시인하면서 “사전에 위험성을 알리는 112 신고를 받고 제대로 조치했는지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신속한 수사를 약속했다.

이와 관련해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참사 발생 1시간 전쯤 한 인터넷 방송인이 파출소에 가서 ‘이거 사고 날 것 같다, 사람들 너무 뒤엉키고 밀리고 큰일났다’ 했더니 경찰관이 했다는 얘기가 ‘저희들도 거기 못 들어간다, 너무 혼잡해서’였다”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밝혀야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측이 이번 핼러윈 행사를 ‘주최자 없는 행사’로 줄곧 규정하면서 관련 대응 제도가 애초에 미비했다고 주장한 점 역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석 전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같은 라디오 방송에서 “주최 측이 없는 행사에서는 시민들이 안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인가”라며 “길거리에서 우리가 위험에 닥치면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가 도움을 호소하지 그럼 누구한테 역할을 기대할 수 있나”고 꼬집었다.

이어 “경찰관 집무집행법에 따르면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그렇게 인파가 몰려 위험이 인지됐을 때 즉각적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돼있는데 법적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 전 정책위의장은 “시스템 개선은 나중 문제고 이런 일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안전관리책임자들이 책임지고 사퇴하는 게 먼저다”며 “그래야 재발 방지책이 마련되지 자꾸 시스템 핑계를 대고 현장에서 누군가 밀어서 사고가 났다는 문제해결 방향으로는 재발 방지를 장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장관이 이번 사고 발생 전에도 야당의 표적이 됐던 점은 이 장관의 향후 입지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소다.

민주당은 7월 정부가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을 신설하는 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강행 의결하자 이 장관을 향해 탄핵소추안과 해임건의안,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 조치를 검토하겠다며 공세를 펼쳤다.

이 장관이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을 보인 것 역시 처음은 아니다.

이 장관은 7월 경찰국 신설에 반발하는 대규모 경찰서장 회의를 ‘하나회의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표현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일 정책의원총회 이후 "국민 분노가 계속된다면 행안부 장관이란 공직자의 자리가 무겁다는 것을 스스로 고민해봐야 한다"고 이 장관을 재차 겨냥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이 장관 경질 요구 등과 관련해 "책임이나 이후 문제는 진상 확인 결과를 지켜본 후에 해야할 이야기"라며 선을 그었다. 임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