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미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건설사가 '갑', 조합 시공사 찾기 동분서주

▲ 정부의 가로주택정비사업 당근책에도 불구하고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은 공사비 상승 영향으로 시공사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사업비 대출 확보와 시공사 선정에 애를 먹고 있는 조합이 많다.

시장 상황을 살펴보면 대형건설사들이 가로주택정비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급화 및 타운화 전략으로 선별수주에 나서고 있어 규모가 작은 대부분의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가파른 공사비 상승에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일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이미 시공단계에 들어서야 할 여러 곳의 가로주택정비 조합이 아직까지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사업에 진척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울산시 서울산 가로주택정비사업(216세대) 조합과 경북 포항시 두호 1056블록 가로주택정비 조합은 각각 13일과 17일에 2번째 현장설명회를 열었지만 참여한 건설사가 한 곳도 없었다. 

지방뿐만이 아니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구로구 홍진은성우정연립(160세대) 조합은 11일, 경기 안양시 명학시장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440세대) 조합은 17일에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재입찰 공고를 냈다. 

대형건설사들이 중소건설사들의 텃밭인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고급화나 타운화 전략을 펼쳐 어느 정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지의 수주에 집중하고 있고 중소건설사들도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며 이제는 철저히 사업성을 따지며 접근하고 있다. 

고급화 전략의 대표 사례로는 현대건설이 8월에 따낸 서울 방배삼호12·13동 가로주택정비사업(공사비 1210억 원)을 들 수 있다.

현대건설은 이 단지를 고급 단지로 만들겠다고 약속하면서 시공 방안을 내놨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3.3㎡당 공사비는 1150만 원 수준으로 책정됐고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도 적용됐다. 

대우건설은 9일 서울 창동1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수주했는데 인근에서 추진되고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창동2~10구역)을 추가로 따내 통합 개발을 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여러 단지를 각각 수주해 푸르지오 타운으로 묶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입지와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역의 가로주택정비 조합들은 시공사를 확보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일부 조합은 시공사뿐 아니라 사업시행을 대신할 신탁사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충남 아산시 대성연립 가로주택정비사업의 사업대행자 입찰이 2차례나 유찰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신탁방식 도시정비사업은 부동산신탁사가 주민들로부터 업무를 위임받아 재건축·재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조합은 신탁사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존 조합 주도 방식보다 사업기간을 단축하려 한다. 

하지만 공사비가 높아지면서 가로주택정비의 사업성은 계속 낮아지고 있어 시행을 맡으면 직접 사업비를 조달해야하는 신탁사로서는 금리가 치솟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는 이자부담으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로주택정비사업과 관련해 여러가지 당근책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정부에서는 추진 절차가 간편하고 사업속도가 빠른 장점을 지닌 가로주택정비사업의 규제를 풀어 주택공급의 속도가 높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월4일부터 시행된 ‘소규모주택정비법 시행령’ 등을 살펴보면 제2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시행하는 가로주택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 ‘15층 이하의 범위에서’라는 문구가 삭제됐고 5년 이상 주택을 소유하고 3년 이상 거주한 1세대 1주택자는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건설자재값이 올라 공사비가 상승하고 있고 여기에 금리까지 올라 정부의 당근책은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가로주택정비사업 추진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 미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건설사가 '갑', 조합 시공사 찾기 동분서주

▲  지난 5월31일 완공된 서울 관악구 관악효신연립 가로주택정비사업. <연합뉴스>


이에 더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주택도시기금 집행마저도 끊껴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 수 있다.  

주택도시기금의 용도에는 가로주택정비 조합에 사업비를 지원해주는 것도 포함된다. 기금은 조합운영비 등 초기사업비와 이주비·공사비 등 사업비를 저금리로 총사업비 50% 까지(공공 90%) 조합에 대출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가로주택정비 조합의 사업대출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지난해와 같은 2675억 원으로 편성했다. 

이마저도 모두 지난해 승인된 사업비 대출을 승인하는데 쓰여 올해 사업비 대출을 신청한 곳은 승인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가로주택정비는 지역의 주거환경을 정비하려는 좋은 취지지만 올해 신규대출이 모두 중단됐다”고 지적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기존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추진위원회 설립 단계가 없고 안전진단 및 정비구역 지정 등이 생략돼 관련 심의를 통합심의 한 번으로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8년 정도가 소요되는 기존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사업기간이 평균 2~3년으로 짧다. 또한 초과이익환수제도 적용받지 않는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가로주택정비사업 관련해 공사비가 지난해 말과 비교해 20%정도 가량 오른 것으로 파악되고 일반적 재개발·재건축보다 연면적 등이 작아 공사비 인상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며 “가로주택정비 조합들도 빠르게 사업을 추진할지 아니면 상황을 지켜보면서 기다릴지 복잡한 속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