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서 금융권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논의에도 불이 붙고 있다.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뿐만 아니라 시중은행인 KB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등도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금융권에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확산될까, 재계와 주주 설득이 관건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왼쪽)과 윤종원 IBK기업은행 행장.


다만 민간 금융사는 재계의 반발을 넘고 주주도 설득해야 하는 등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뼈대로 한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우선 국책은행 등 기타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융권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는 공공기관은 서민금융진흥원,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5곳이다.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예탁결제원, 한국투자공사 등 기타공공기관은 제외됐다.

노조추천이사제란 노동조합이 외부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추천해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다.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경영활동에 반영하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노조 대표가 직접 이사회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보다는 다소 완화된 노동자 경영참여 제도로 꼽힌다.

국책은행은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만큼 노동조합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은 2021년 9월17일 노조가 추천한 이재민 해양금융연구소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며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했다. 이는 민관을 통틀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노조추천 이사선임이었다.

올해 3월에는 기업은행의 사외이사 2명과 산업은행의 손교덕 사외이사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노조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시도했다가 번번히 실패했는데 올해는 정치권에서 긍정적 여론이 조성되고 있어 도입여부가 주목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에 이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 입장을 내놓으면서 국책은행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은 더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민간 금융사에도 노조추천이사제가 확산될 수 있다.

KB금융지주는 올해 3월 사외이사 7명의 임기가 모두 종료되는데다 최소 1명 이상이 교체돼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민영화 숙원을 이룬 우리금융지주도 우리사주조합이 최대주주(지분 9.80%)로 올라서면서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민간 금융사에 노조추천이사가 선임되는 것은 국책은행과 달리 장애물이 많다.

우선 재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노동이사제가 국회를 통과하자 일제히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특히 제도가 민간기업으로 확산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경제단체들은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이사진에 들어오면 노사갈등이 이사회까지 번져 경영상 주요 의사결정이 마비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재근 대한상의 산업조사본부장은 11일 입장문을 통해 “경제계는 특히 공공부문의 노동이사제 의무화를 시작으로 향후 민간기업까지 이를 의무화하는 데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회와 정부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에 따른 영향을 정확히 살피는 한편 민간기업까지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중은행의 주요 주주들이 노조추천이사제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금융권에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확산될까, 재계와 주주 설득이 관건

▲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특히 국내 대형 금융지주사는 외국인주주 비중이 높은데 이들은 노조추천 이사가 이사진에 들어오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진하는 데 방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의 외국인지분율은 각각 70.59%, 61.15%. 68.69%에 이른다. 우리금융지주의 외국인지분율은 30.88%다.

2020년에도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KB금융지주의 우리사주조합이 추천한 2명의 사외이사 안건에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ISS의 의견은 외국인주주의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국내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나 4대 금융지주사의 주요 주주로 있는 국민연금공단도 그동안 노조추천이사회에 소극적 모습을 보여 왔다.

국민연금은 2018년, 2020년 KB금융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에 반대표를 던졌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는 결국 주주들이 있는 민간 기업인데 주주들을 대상으로 노조추천이사제가 실효성이 있음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