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가운데), 최수현 금융감독원 원장 |
실세 경제부총리의 위력은 과연 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에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기관장들이 일제히 코드 맞추기에 나섰다.
애초 최 후보자가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고되면서 경제 및 금융정책 등을 놓고 상당한 진통이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최 후보자가 정식으로 취임하기도 전에 최 후보자와 코드를 맞추며 기존 방침에서 한발짝 물러서는 모양새다.
이를 놓고 정책 혼선을 막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실세 경제수장에 대한 몸낮추기로 정책의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이주열의 약해지는 금리인상 소신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내수진작과 경제성장 정책을 예고했다.
최 후보자는 지명 이후 “세월호 때문에 경기가 주춤하다”며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게 경제팀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 최 후보자가 금리인하를 한국은행에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단기간에 경기를 부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금리인하이기 때문이다.
최 후보자는 지난해 4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한국은행의 금리동결에 대해 “경제가 나빠지는데 금리 동결이 말이 되냐”며 반대의견을 냈다. 당시 최 후보자는 “금리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부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는 것”이라며 경제부총리의 역할을 촉구하기도 했다.
최 후보자의 입장을 뒷받침하듯 OECD도 17일 한국에 대한 경제보고서에서 경기 하락시 금리인하 등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고 권고했다.
최 후보자 지명 이후 변화하는 시장 분위기를 감지해서인지 이주열 한은 총재의 태도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총재는 취임 후 꾸준히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해 왔다. 이 총재는 실질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넘어서는 회복세를 보인다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한 발 물러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 총재는 6월 들어 “4% 성장이 가능했던 4월과 경제여건이 달라졌다”며 “앞으로 정책방향은 더 살펴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기존의 금리인상 기조와 다른 발언을 했다.
이 총재는 최 후보자 지명 이후 “기재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이 다르다”며 “서로의 역할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한국은행에 대한 지나친 개입은 경계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자주 만나서 대화하고 경제 흐름에 대한 인식차를 줄일 것”이라고 말해 최 후보자와 정책공조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총재의 태도변화와 함께 최 후보자의 발언에 대한 한국은행의 반응도 관심사다. 한국은행은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규제에 대해 가계부채 증가를 막고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는데 일정 영향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최 후보자가 DTI와 LTV 규제 완화에 대해 발언을 했을 때 한은이 반대입장에 설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은은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원석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DTI·LTV 규제 폐지시 가계부채 등 국민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폐지에 대한 한은의 입장’에서 “두 규제의 조정은 신중하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실상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20일 새로 제출한 답변에서 두 규제의 역할로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제약하는 측면이 있다”는 부분을 추가하고 “신중하게 추진” 부분은 삭제했다. 반대기조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최 후보자는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문이다. 이 총재는 경영학과 70학번이고 최 후보자는 경제학과 75학번이다.
그러나 이 총재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최 후보자와 개인적 관계는 전혀 없다”며 “최 후보자가 기재위원일 때 국회 업무보고하러 가서 잠깐 본 것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 신제윤과 최수현의 입장 급선회
최 후보자는 부총리 후보자 지명 직후인 15일 DTI와 LTV 규제완화 필요성을 주장했다.
최 후보자는 지금 부동산 규제가 시장상황과 맞지 않는다며 “과거에 부동산시장이 뜨거운 한여름이었지만 지금은 한겨울”이라며 “옷은 계절이 바뀌는대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DTI·LTV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DTI와 LTV는 은행감독규정에 명시된 것으로 개정권한을 보유한 금융위원회가 주무부서이며 금융감독원이 실무검토에 관여한다. 이 때문에 최 후보자가 DTI와 LTV 규제완화에 나서려면 양 기관의 협력이 필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규제완화에 부정적이었다. 올해 초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관련해 DTI·LTV 규제완화 방침을 내비치자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DTI·LTV의 큰 틀을 유지할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도 “가계대출 증가속도를 관리할 것이며 LTV가 높은 대출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겠다”며 부동산 경기 활성화보다 가계대출 관리에 더욱 방점을 뒀다.
그러나 최 후보자의 DTI·LTV 규제완화 발언 이후 두 금융기관장의 말이 달라졌다.
최 원장은 17일 규제완화를 두고 “관계기관과 협의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 방안을 찾겠다”며 “합리적 개선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풀기 어려운 난제를 일컫는 말이다. 또 최 원장은 “DTI와 LTV 세부적용 내용이 지역별로 복잡하고 경직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며 규제에 손을 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신 위원장은 19일 국회에서 “금융 안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금융위가 실무지원을 할 수 있을지 관계부처와 검토할 것”이라며 규제완화에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 특히 신 위원장은 “2기 경제팀이 출범하면 모든 부분에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며 최 후보자와 경제 2기내각에 발맞춰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 외에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도 19일 국회에서 “DTI와 LTV 규제완화가 주택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라며 규제완화에 무게를 실었다. 최 후보자가 부동산 규제완화 발언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계 기관과 주무부처 수장들이 모두 동조하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 부총리에 비해 최 후보자는 정권과 더욱 가깝고 추진력도 탁월하다”며 “최 후보자가 경제 관련 부처들을 장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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