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이노텍이 PC와 서버용 CPU, 자율주행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고성능 FC-BGA 반도체기판 신사업 진출을 공식화하고 관련 조직을 신설하며 투자계획과 사업화시기 등을 검토하고 있다.

정철동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은 애플 등 고객사에서 차세대 반도체기판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을 보고 삼성전기 등 경쟁사에 맞서 기술력 강화와 생산능력 확대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이노텍 차세대 반도체기판 진출 공식화, 정철동 삼성전기와 기술경쟁

정철동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


26일 LG이노텍에 따르면 FC-BGA사업담당 보직 신설을 통해 신사업 진출 계획이 공식화됐다.

LG이노텍이 FC-BGA 기판사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그동안 증권가에서만 나오고 있었는데 25일 임원인사에서 이광태 FC-BGA사업담당 상무를 선임하며 사실상 진출을 본격화한 셈이다.

다만 LG이노텍 관계자는 “이제 사업조직을 구성한 단계라 구체적 시장 진출시기와 투자계획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FC-BGA는 PC와 서버용 CPU 등에 쓰이는 첨단 반도체기판인데 앞으로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모바일 컴퓨팅, 자율주행 등 신산업 발전 가속화에 따라 공급부족 사태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대형 IT기업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공급능력을 갖춘 기업은 세계에 삼성전기와 일부 대만 및 일본기업 등에 불과해 장기간 호황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기는 FC-BGA기판 수요 증가 전망에 맞춰 현재 부산사업장에 운영하고 있는 생산라인을 대규모로 확대하는 신공장 투자 등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철동 사장이 이런 상황에서 LG이노텍의 FC-BGA 반도체기판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는 것은 기술력과 고객사 확보 등 측면에서 모두 충분히 경쟁력을 키워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LG이노텍은 그동안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여러 종류의 기판을 생산해 공급하며 기술력과 사업 경험을 쌓았고 최근 기판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조직 효율화작업도 마쳤다.

카메라모듈과 3D센싱모듈 등 스마트폰 부품에서 애플을 든든한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정 사장이 LG이노텍의 신사업 추진에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애플이 자체개발한 PC용 ‘M1’ 프로세서에 FC-BGA기판을 사용하는데 최근 맥북과 아이맥, 아이패드 등 다양한 제품으로 M1 탑재를 확대하면서 기판 수요 증가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애플이 개발하는 자율주행 자동차용 반도체에도 FC-BGA기판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FC-BGA기판은 인텔과 AMD 등 대형 시스템반도체기업과 서버업체도 주로 활용하는 부품이기 때문에 LG이노텍이 스마트폰 이외 시장으로 고객사 기반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LG이노텍이 부품업계 최대 라이벌인 삼성전기와 카메라모듈에 이어 차세대 반도체기판사업까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는 만큼 정 사장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증권가 분석을 종합하면 삼성전기 역시 애플에 FC-BGA 반도체기판 공급을 염두에 두고 투자 확대를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애플이 일반적으로 부품 수급처를 여러 기업으로 다변화하는 사례가 많고 LG이노텍에 카메라모듈 등 부품 수급을 갈수록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LG이노텍이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LG이노텍이 카메라모듈 공급을 대부분 책임진 애플 아이폰13 시리즈는 아이폰 사상 최대 판매량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LG이노텍은 부품 공급을 통해 대량의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FC-BGA 반도체기판 연구개발 및 생산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출 수 있다.

정 사장은 최근까지 LG이노텍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강화하며 PCB기판 등 저수익성 사업을 정리하고 시장 전망이 밝은 고부가부품 기술 개발과 생산 확대에 집중해 왔다.

이런 노력을 통해 신사업분야에 인력을 투입하고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유연한 사업체질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

LG이노텍은 그동안 아이폰용 카메라모듈 공급에 실적을 대부분 의존하고 있어 아이폰 판매량 증감에 따라 실적도 큰 변동성을 보인다는 단점을 지적받아 왔다.

하지만 김록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현재 LG이노텍 카메라모듈사업부의 가치가 3조8600억 원, 기판소재사업부 가치가 3조5700억 원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추정했다.

LG이노텍이 차세대 기판사업을 통해 카메라모듈 의존을 효과적으로 낮추는 안정적 이익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길현 유안타증권 연구원도 “LG이노텍은 FC-BGA 반도체기판으로 기판 라인업 확대를 통해 고객사 기반 및 사업구조를 다변화하며 중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