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애플 전기차에 전장부품을 공급할 수 있을까?
LG전자는 전기차부품사업부문의 일부를 분할해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구광모 회장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전장사업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고객 충성도가 높은 애플의 애플카 공급망 안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 대변신 시작하는 LG그룹, 구광모에게 애플과 협력 더 중요해졌다
LG그룹이 대변화의 시작점에 서 있다.
LG전자는 스마트폰사업에서 7월31일을 끝으로 완전히 손을 뗀다. LG전자 사업의 한 축이었던 스마트폰사업을 접음으로써 LG그룹은 ‘버릴 것은 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신 미래 성장동력을 육성하는 데 더욱 힘을 싣는다.
LG전자는 1일 이사회를 열고 전기차부품사업부문(그린사업) 가운데 모터와 파워트레인, 배터리히터, 차내 충전기 등의 사업을 물적분할해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LG마그나)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캐나다의 자동차부품기업 마그나가 LG마그나의 지분 49%를 인수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LG전자가 전기차부품사업을 놓고 글로벌기업의 투자를 받으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그만큼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은
구광모 회장시대의 LG그룹을 상징하는 말이다.
구 회장은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LG전자의 MC사업부문이 2015년 2분기 이후 스물세 분기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내자 더 이상 스마트폰사업에서 미래를 찾기 어렵다고 보고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기로 결단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LG전자는 많은 매출을 포기했다. MC사업부문의 매출은 2020년 5조2천억 원 수준으로 다른 사업부문과 비교해 입지가 매우 좁아졌지만 2015년만 하더라도 매출 14조4천억 원가량을 냈을 만큼 덩치가 컸다.
구 회장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선택한 만큼 스마트폰사업 철수로 포기한 매출을 전장사업에서 올리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LG마그나의 성장성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에서는 LG마그나가 올해 매출 5천억 원을 내고 연평균 성장률이 50%에 이를 것으로 바라본다. 산술적으로 보면 LG마그나 매출이 2023년에는 1조1천억 원을, 2025년에는 2조5천억 원을 넘는다.
하지만 스마트폰사업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LG마그나가 더 빠른 성장을 하려면 전장사업에서 애플과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이유다.
애플은 현재 자율주행 전기차, 통상 ‘애플카’로 불리는 차를 2024년 목표로 시장에 내놓기 위해 준비에 한창이다. BMW에서 전기차를 개발했으며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카누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한 울리히 크란츠를 영입하기도 했다.
애플의 바람대로 애플카가 시장에 나온다면 시장의 판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애플은 고객들의 브랜드 충성도가 유독 높은 전자기기기업이다. 시장조사업체 쉘쉘에 따르면 아이폰을 한 번 사용한 고객들의 92%가 다음 스마트폰으로 다시 아이폰을 구매하겠다고 응답했다.
아이폰과 아이맥, 아이패드 등 이른바 애플 생태계를 고수하는 사용자들도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 기기와 연동할 수 있는 형태의 애플카가 출시된다면 테슬라로 상징되는 현재의 전기차시장 주도권이 단번에 애플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구 회장이 LG마그나와 애플의 협력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LG그룹의 미래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과제다.
LG마그나가 애플카의 주요 부품 생산을 맡게 되면 단숨에 글로벌 대표 전기차부품 전문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스마트폰사업 철수로 생겨난 매출 공백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 LG와 애플의 협력설이 힘받는 이유, 동맹관계 위한 포석 움직임
LG마그나와 애플의 협력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하다.
하지만 LG그룹 계열사와 마그나가 그동안 애플과 협력했던 역사를 살펴보면 LG마그나와 애플의 협력 기대감이 높은 이유에 분명한 근거가 있다.
스와미 코타기리 마그나 최고경영자(CEO)는 3월 말에 자동차 애널리스트 간담회에서 “애플카를 제작할 준비가 돼있고 북미 지역에도 전기차 제조 시설을 증설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마그나는 이미 5년 전에 애플카 프로젝트인 ‘타이탄’과 관련해 초기부터 협력했던 회사라는 점에서 적극적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애플인사이더 등 미국 IT매체들은 이미 LG마그나가 애플과 애플카의 초기 생산 물량을 놓고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도 “마그나는 과거 애플카 프로젝트에 참여할 만큼 애플과 우호적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며 “최근 CEO가 공식 언급을 했기 때문에 LG마그나 합작법인에서 주요 부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애플카 위탁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플과 협력 측면에서 LG그룹도 마그나에 뒤지지 않는다.
LG이노텍의 주요 고객기업 가운데 하나는 애플이다. LG이노텍은 아이폰에 사용되는 트리플카메라와 3D센싱모듈 등을 납품한다. LG디스플레이는 아이폰에 LCD패널 공급하면서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LG그룹이 직접 자동차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애플과 협력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올해 초 현대차기아와 애플의 협력 논의가 중단된 배경에는 보안이 새어 나간 이유도 있지만 단순한 하청기업을 원하는 애플 입장에서 전기차시장의 중요 참여자인 현대차기아와 협력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비교해 LG그룹은 LG마그나를 통해 단순히 전기차 부품만 하겠다는 위치에 서 있어 애플의 협력상대로 매력이 높다.
LG그룹의 최근 움직임을 놓고 애플과 관계 확대를 고려하는 모습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LG전자는 자체 유통매장인 LG베스트샵을 통해 8월부터 전국 400여 개의 매장에서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을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애초 LG전자의 스마트폰사업 철수로 가장 많은 수혜를 볼 기업으로 삼성전자가 꼽혔다. 같은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 사용자가 갤럭시 시리즈로 기기를 변경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LG베스트샵에서 애플 제품이 판매되면 LG전자의 스마트폰사업 철수가 애플의 이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LG전자는 이런 검토를 잠정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의미 있는 행보로 시장은 바라보고 있다.
물론 LG전자의 전략이 애플과 동맹관계를 다지기 위한 행위는 아니다.
LG전자는 애플 제품을 보기 위해 LG베스트샵에 방문하는 고객들을 자연스럽게 다른 제품으로 유인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인지도 상승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LG전자의 행보가 애플에 유리한 입지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두 회사의 밀월관계가 향후 비즈니스 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LG그룹 시각에서 보면 애플에 수혜주는 방식으로 사업 벌이면 중장기적으로 애플과 협력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LG그룹은 이 밖에도 몇 계열사를 통해 애플 기획전을 개최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애플과 협력을 위한 물밑 작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 구광모의 신임 받는 정원석, LG마그나 초기 성과 만들기 주력
하지만 애플카 협력이 구체화하려면 오랜 기간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갓 출범한 LG마그나로서는 초기 사업의 기반을 닦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다.
구광모 회장은 LG마그나의 초대 대표이사에 '믿을맨'을 배치했다. 바로 정원석 상무다.
정 대표는 구 회장과 과거 LG시너지팀에서 일한 인연이 있다. LG시너지팀은 구 회장이 총수에 오르기 전에 경영수업을 받았던 곳이다.
LG시너지팀에서 일한 사람들은 구 회장의 경영수업을 맡았던 일종의 ‘선생님’이라는 말하기도 한다.
정 대표는 실제로 구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 대표는 LG전자 시너지팀에서 일하다가 LG전자 전장사업 아시아 고객 담당부서, LG 기획팀 등을 거쳤는데 구 회장이 그룹 총수에 취임한 뒤인 2018년 말에 LG전자의 VS사업부(전장사업본부)로 이동했다.
VS사업본부는 크게 전기차용 부품을 만드는 그린사업담당과 텔레매틱스와 오디오, 디스플레이, 내비게이션 등을 담당하는 스마트사업부로 나뉘는데 정 대표는 그동안 그린사업담당 임원으로 일했다.
구 회장이 꼽은 미래 성장동력인 전기차용 부품을 담당하는데 정 대표를 적임자로 낙점한 것만 놓고 봐도 구 회장의 정 대표를 향한 신뢰가 두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 대표는 LG마그나의 글로벌사업 역량을 강화하는데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는 그동안 전장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지만 아직은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마그나와 손잡으면서 마그나가 지닌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마그나는 수십년의 업력을 쌓으면서 글로벌 자동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와 BMW, 포드, 크라이슬러, 폴크스바겐, 혼다 등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채널Who 남희헌 기자]